• 중앙일보 10일자 종합면 '시시각각'란에 이 신문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가 쓴 '자유당 시절 뺨치는 여당 경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는 대통합민주신당(통합신당)의 경선이 가관이다. 대통합 뭐라고? 하는 독자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여당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열린우리당이 이름만 바꾼 당. 따지고 보면 어이없다. 노 대통령 지지도가 바닥을 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앞다퉈 탈당 쇼를 벌였던 게 오래전도 아니다. 그땐 죽어도 서로 같이 못할 듯 낯 붉히고 헤어지더니 슬금슬금 다시 모여 당 명칭만 바꾸고는 대통령 후보를 뽑고 있다. 그 이합집산이 거의 예술 수준이다.

    어느 나라건 정상적인 민주사회에서 정당의 대통령 경선은 축제고 드라마다. 어찌 보면 축구 경기 비슷하다. 우리 편 이기라고 고함지르고, 흥분한 선수들이 반칙도 하고, 심판의 편파 시비도 있지만 전체적으론 볼 만하다. 하지만 솔직히 통합신당 경선은 '아니올시다' 같다. 이 정도면 투·개표 관리 비용으로 세금에서 나가는 17억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좋게 봐줘도 엉터리다. 지금이 자유당 시절인가. 휴대전화 투표가 가능하다고 했는데, 8만 명 이상이 중복 등록된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당 때 악명 높던 대리투표의 2007년 버전인 셈이다. 노 대통령을 포함해 장·차관, 유명 연예인 팬클럽의 명의도 도용됐다. 선거인단의 '박스떼기' 대리접수 의혹도 있다. 자유당 때로 치면 아마 유권자 명부 바꿔치기쯤에 해당할 것이다.

    그뿐 아니다. 몇 번 지방 경선을 하다 말고 느닷없이 '원샷 경선'으로 룰이 바뀌었다. 공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해 국민에게 '저희 룰은 이겁니다' 하고 공표해 놓고 중간에 자기들 맘대로 쓱싹쓱싹 바꿔친 것이다. 한번 물어보자. 대한민국이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나라인 줄 아는가. 이러고서 무슨 염치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것인가.

    통합신당 경선에서 판치는 편법과 무리수를 보면서 적잖은 사람들이 '진보의 참모습이 이것이었나' 하는 탄식을 하고 있다.

    진보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걸까. 여러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권력의 달콤함'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쉽게 말해 진보 진영은 쇼든, 야바위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지금 잡고 있는 권력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정치적인 진보'들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 10년간 음으로 양으로 권력의 단맛을 보면서 이미 권력 기득권층으로 변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과거 군사정권과 보수정권도 똑같이 그랬었다.

    요즘 진보 후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희한하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하는 주장은 거의 없다. 대신 "보수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건 막아야 합니다"가 주종을 이룬다. 이른바 뺄셈의 정치다. 정치에서는 종종 긍정보다 부정이, 사랑보다 증오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기득권층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최대한 활용했던 노 대통령이야말로 좋은 사례다.

    하지만 유권자는 변했다. 집권 보수세력의 부패 정치도 경험했고, 진보 정권 아래에서 '깜'도 안 되는 아마추어들이 설치는 세상도 경험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우리 국민을 우습게 보다간 큰코다친다.

    진보는 남 탓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은 지겹다. 자기 잘못을 솔직히 사죄한 뒤 대안을 제시해야 진보에게는 그나마 살길이 열린다. 지금처럼 하면 결과는 뻔하다.

    미국은 역사는 짧지만 대통령제 경험은 우리보다 훨씬 길다. 링컨이 말했다. "모든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고, 일부를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두를 영원히 속이진 못한다". 대공황을 극복했던 루스벨트는 "국민적 감동이 생산하는 힘을 대항할 세력은 없다"고 했다. 쉽진 않겠지만 올해 대선에서 국민적 감동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내년이면 정부 수립 60년이다. 그럴 때도 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