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 경선후보가 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후보로 선출됐다. 자신의 기대와 달리 박빙의 신승을 거둔 이 후보는 당원들의 표심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경선은 끝났지만 이 후보와 한나라당이 풀어야 할 난제는 하나 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박 경선’ 과정에서 심화된 대립과 갈등의 상처를 슬기롭게 해소하는 일이다. 경선 ‘공신(功臣)’들이 당내 권력을 독점하거나 경선과정의 ‘살생부 논란’ 등이 재현한다면 한나라당은 ‘제2차 내전’이 발발할 가능성도 있다.

    경선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내 비주류의 지분을 인정하고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 대선 승리는 경선에 패배한 후보들의 지원을 얼마나 끌어내느냐에 달렸다. 또한 검증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부터 이 후보는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당의 염원인 정권 교체를 위해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힌 박근혜 후보에게는 경선에 지고도 인생에 이긴 국민적 찬사가 뒤따를 것이다. 박 후보는 경선 불복의 전례를 불식하고 정당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금자탑을 세웠기 때문이다.

    1년 2개월간의 한나라당 경선 대장정을 투표율 70.8%의 흥행 대박으로 성공시킨 강재섭 대표도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 쪽의 경선 후유증 치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1년이 넘는 경선레이스로 양쪽이 사생결단식 검증공방과 치열한 경쟁을 한 탓에 이들 사이에 팬 감정의 골이 깊기 때문에 이대로는 대선을 치르기 어렵다.

    강재섭 대표는 20일 전당대회에서 “이긴 사람이 진 사람 붕대 감아주고, 병기를 닦아 더 큰 전쟁, 연말 전쟁에 힘을 합쳐 앞으로 나가자”고 화합을 당부했다. 승자는 포용력을 발휘하고, 패자는 깨끗한 승복을 해야 한다는 게 국민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강 대표는 21일 네 후보와 박관용 선거관리위원장 등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화합’의 첫 단추를 끼우기로 했다. 또한 국회의원과 당협위원장 모두가 참석하는 ‘화합 워크숍’을 열기로 했다.

    강 대표가 “경선 과정의 과오보다, 본선 승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더 보상이 이뤄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각 지역의 대선 득표 활동을 통한 공천 반영 등을 과감히 구상하겠다”고 밝힌 내년 총선 공천방침은 앞날에 대해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비주류 의원들과 당협위원장들이 대선승리를 위해 일로매진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강대표의 바람대로 양쪽 진영이 쉽게 손을 잡을 지는 미지수다. 이르면 오는 24일 치러질 원내대표 선거와 향후 예정되어 있는 도당위원장 선거에서 양쪽 다 당내 입지를 강화하려고 양보 없는 ‘2라운드’를 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대의원, 당원, 국민선거인단 등이 합쳐진 전체 선거인단 투표에서 서울·경기도와 호남(광주·전남·전북)을 제외하고 모두 박 후보에 졌다. 전체 선거인단 투표에서 박 후보가 이 후보를 432표 앞선 당심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선의 표심에 대한 겸허한 마음에서 본선준비를 해야 한다. 벌써부터 강재섭 대표를 포함한 당 지도부를 흔들겠다는 징후가 곳곳에 보인다. 완장을 차고 거들먹거리는 당내 야심가(?)들의 보이지 않은 경쟁이 한나라당의 전도(前途)에 암운을 드리우고 있다.

    승자가 독식하는 구도로는 한나라당이 정권쟁취를 할 수 없다. 한나라당은 대선후보의 당이 아니다. 당헌·당규에 엄연히 당권·대권이 분리되어 있고 2위 후보와의 지지도 격차가 1.5%밖에 안 된다는 정치현실을 이 후보는 깊이 새겨야 한다.

    “대선 성패 요인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도 금과옥조로 삼아야 한다. 이 후보가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이 후보 스스로 주변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초심으로 돌아가 모든 기득권을 버릴 때 크게 승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