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4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디터가 쓴 '대통령은 정말 아무나 하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트로트 가수 태진아는 이렇게 노래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눈이라도 마주쳐야지.’ 

    맞는 말이다. 사랑이 아무리 인류 보편 언어고, 국경이 없어도 그렇다. 최소한 서로 눈길이 오가고, 손이라도 잡아 보고 하면서 감정을 주고받아야 하는 법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혼자 떠들며 설치는 건 사랑이 아니다. 그냥 원맨쇼고 꼴불견이다.

    요즘 범여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태진아씨 노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반장 선거도 이보다 더 터무니없지는 않을 것이다. 이른바 범여권에서 대통령 후보 출마 의사를 표시한 사람이 20명 정도 된다. 이렇게 막말하긴 싫지만 한마디로 ‘△나 ×나’ 다 나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민 가슴에 못을 박는 언행을 서슴지 않던 분들이 온갖 근사한 명분을 대면서 나온다. 아마 유권자들을 집단 기억상실증 환자로 보는 모양이다. 어디서 뭘 하며 살았는지 기억에 가물가물한 분들도 느닷없이 “나도 대통령에…” 하며 나선다. 그때마다 물론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란다.  

    투표권자의 입장에서 적잖은 모욕감을 느낀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들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육군 상사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스물 몇 살짜리가 장관에 임명되고, 대통령선거 한 번 치르면 후보가 수십 명씩 난립하는 나라들 말이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지 곰곰이 따져봤다. 2002년 대선 당시를 복기(復棋)도 해봤다. 아무래도 ‘노무현 학습효과’의 영향이 큰 것 같다.

    2002년 봄 민주당이 경선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노 후보는 당내에 아무런 기반도, 지지세력도 없었다. 한마디로 맨땅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승리했다. 따라서 지지율 1% 남짓으로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범여권의 대통령 후보들은 아마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아니, 노 대통령은 뭐 처음부터 지지율 높아서 대통령 됐느냐고?”

    둘째로는 ‘깜짝쇼 신드롬’이다. 노 후보는 정몽준씨와의 ‘여론조사 후보 단일화’라는 기막힌 방법으로 추락하던 지지율을 일거에 끌어올렸다. 지금도 여권 인사들은 깜짝쇼만 하면 얼마든지 여론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을 대놓고 말한다. 국민을 맘대로 갖고 놀 수 있다는 교만한 태도다. 하지만 할 말은 별로 없다. 많은 유권자가 2002년 그 수법에 한 번 넘어간 적이 있다.

    셋째로는 좀 서글픈 얘기지만 “대통령 그게 별거냐”는 인식의 확산이다. 과거에는 그나마 ‘대통령’이라는 단어의 권위와 존엄성이 있었다. 국가 최고 지도자, 헌법 수호자, 군 통수권자… 그 얼마나 엄중한 자리인가. 하지만 노 대통령 집권 5년간 대통령이란 자리는 많이 우습게 됐다. 권위주의를 깨는 건 좋은데 꼭 지켜져야 할 권위마저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 지금 여권 후보들, 속으로는 “나라고 왜 대통령 못 해?”라고 코웃음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다. 누가 출마한다고 나서든 그걸 문제 삼을 순 없다. 하지만 여권이든, 야권이든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모든 분 정말 한번 생각해 봐 달라. 내 지지율이, 나의 경력과 삶이 과연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이름에 걸맞은지 말이다.

    세상 살면서 실수를 안 하고 살 수는 없다. 얼굴에 화장(化粧)하듯 인생에서도 어느 정도의 미화는 묵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분장이 되고 가장이 되고 지켜보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 된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라던 태진아씨 노래 마지막 구절이 생각난다. 대통령 직이 아무리 우습게 보여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나 하면 나라가 어지럽게 된다. 유권자도 너무 쉽게 보지 마라. 지켜보는 것조차 짜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