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명박․박근혜 두 한나라당 유력 대선 주자간 검증공세가 치열해지면서 이와 더불어 범여권의 머릿속도 복잡해지고 있다. 연말 대선에서 누구와 맞붙는 것이 유리한지 여부가 핵심인데, 그 기저엔 최근의 ‘검증정국’ 내지는 ‘의혹정국’에서 범여권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도 깔려 있는 모습이다.

    우선, 한나라당의 이․박 두 유력 대선 주자 중 누가 더 범여권의 ‘쉬운’(?) 상대인지 여부와 관련해선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박 전 대표를 좀 더 수월한 상대로 꼽는 의견은, 박 전 대표의 강한 보수성향을 그 이유로 내걸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박 전 대표를 상대로 한 대선 구도가 형성될 경우, 이념과 정책 측면에서 범여권과 선명한 전선 구도가 형성돼 확실한 차별화를 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수 대 민주평화개혁세력’으로 분명한 전선 구도가 형성돼 범여권의 지지층 결집과 함께 중도층의 지지세 흡수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또한 여성 대통령의 시기상조 분위기, 그리고 ‘독재자의 딸’이라는 식의 본격적인 대선정국의 이미지 전략이 맞물릴 경우 오히려 쉬운 상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박 대표의 바람, 소위 ‘박풍(朴風)’을 언급하며 ‘범여권의 상대로 더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주로 범여권의 충청권 의원 주변에서 이런 의견들이 나오는데, 지난 5․31 지방선거 당시 대전에 불어닥친 ‘박풍’을 이미 경험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충청권에 박풍이 불어올 경우, 범여권의 서부벨트(호남+충청+수도권) 한축이 무너지는 꼴이라는 설명이다. 범여권의 한 충청권 의원측은 “충청지역에선 박정희와 육영수 여사에 대한 향수가 유독 높다. 박풍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박 전 대표가 되면 범여권이 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이 전 시장이 의외로 범여권의 상대 후보로 수월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이 전 시장을 상대로 제기되고 있는 갖가지 의혹과 이 전 시장의 지지층이 견고하지 못하다는 점을 범여권에선 그 이유로 꼽고 있다. 특히 이 전 시장의 지지층 상당수가, 범여권의 전통적 지지층과 겹치고 있는 상황에서 범여권의 후보가 부각되는 순간 이 전 시장의 지지율 변동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 열린당의 전략기획통으로 꼽히는 민병두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시사프로에 출연, “솔직히 이명박 전 시장이 본선에 올라오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서 “박근혜 전 대표는 지지율이 탄탄하지만 이 전 시장 같은 경우에는 지지율이 탄탄하지 않다. 구성층이 다양하고 허약하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이는)범여권이, 열린우리당이 못하다 보니까 중간층이 일시적으로 이명박 전 시장 지지로 넘어갔다는 것”이라면서 “그래서 지지층의 구성 면에서 이명박 전 시장이 상대하기 쉽다는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민 의원은 이어 “재벌 회사 사장이 성직자는 아니라고 본다. 수많은 흠이 있을 것”이라면서 “지금 벌써 많은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 항간에서는 '부도덕 백화점'이라는 말까지 나오더라. 그렇다고 한다면 본선에서 이 전 시장이 올라온다고 한다면 우리 입장에서는 박 전 대표도 낙마하고, 이 전 시장도 낙마하고 이런 상황이 나쁠 리가 없죠"라고 말했다. 민 의원은 또 “대의원 충성도에서 굉장히 강한 게 박 전 대표 아니냐”면서 “일반 시민들 같은 경우에는 분위기를 많이 타기 때문에 충성도가 약한 이명박 전 시장 쪽이 무너지면서 영향을 받을 거라고 본다”고 했다.

    민 의원은 그러면서 “저희 입장으로서는 어쨌든 거기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든지 개입하려고 한다든지 하는 거 별로 없다"면서 "지난 번 대정부 질문 때 우리가 몇 건 얘기를 했는데 그건 간단한 지적이었다. (한나라당 내에서)검증하는 걸 지켜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전 시장이 최근의 ‘검증정국’ 내지는 ‘의혹정국’의 파고를 뚫고 한나라당 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오히려 범여권의 입장에선 어려운 선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이 전 시장과의 명확한 전선 구도 설정이 쉽지 않은데다가, 선거 이슈가 이념 문제보다는 현대건설 사장 출신의 최고경영자라는 이 전 시장의 경제적 이미지 등이 우선 부각돼 어우러지면서 일순간 중도성향 유권자의 ‘표 싹쓸이’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최근의 '검증정국' 내지는 '의혹정국'에 대한 스탠스 문제와 맞물려, 범여권의 계산이 고차방정식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