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이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말했다. 박근혜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그것은 박근혜를 지칭한 것임에 틀림없다. “해외 다니면서, 외교하면서 제가 받은 느낌인데요, 한국이 국제무대의 당당한 일원으로 등장한 때는 국민의 정부부터입니다. 지도자의 정통성이 국가위신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실감하고 다닙니다. 혹시 해외신문에서 한국의 지도자가 다시 무슨 독재자의 딸이니 하는 얘기가 나오면 곤란하다, 그런 얘기입니다.” 이것이 노무현의 발언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을 굳이 ‘독재자’로 호칭하는 사람은 친북좌파반역세력이다. 자신들을 민주화운동 공로자로 표현해야 하니 반드시 그 상대인 독재자가 논리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자유애국세력의 입장에서 박 대통령은 권위주의적 통치를 한 사람이다. 독재란 말과 다른 뜻은 없지만 그러나 단순히 독재로 몰아붙이기에는 그의 공적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리고 사실을 말하자면 박 대통령이 독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정권과 한국의 친북좌파반역세력의 존재 때문이다. 만약에 북한에 김일성 군사독재정권이 존재하지 않고 또 한국에 친북좌파반역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도 독재를 할 구실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박 대통령이 독재를 하게 된 직접적인 배경은 바로 북한의 공산군사독재자와 한국의 친북좌파세력의 존재다.

    질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유지된다. 하나는 자율이다. 국민의 민도가 높아지면 자율적으로 법을 지키고 따라서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민도가 낮아 아직 자율로 질서를 유지할 수 없다면 불가불 타율로 질서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박 대통령 시절 우리는 아직 타율적 질서가 필요했을 것이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렇다고 하여 독재를 독재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노무현의 요즘 언론탄압은 그야말로 불필요한 독재다. 이미 사회가 성숙하여 자율적으로 질서유지가 가능한 이 때에 국가권력을 동원하여 언론을 탄압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독재의 표본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러면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다. 답부터 말하면 틀린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이 책임을 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개인의 행위에 대한 것이지 가문에 대한 것은 아니다. 사회의 구성단위가 개인이고 개인책임의 원칙이 적용된다. 소위 말하는 연좌제는 옳지 않다. 설사 아버지가 도둑이라고 하여도 그 자식은 스스로 도둑질을 하지 않는 이상 도둑의 누명을 쓰도 안 되고 또 그 처벌을 받아서도 안 된다. 이것이 민주사회의 기본원칙이다.

    박근혜를 독재자의 딸이라고 부른 노무현의 경우를 보자. 이런 말을 하기도 민망하고 또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러나 노무현이 먼저 “독재자의 딸”이란 발언을 하였기에 우리도 그와 같은 논리에서 말을 하자면, 노무현은 공산주의자의 사위가 아닌가? 그것도 끝까지 전향하기를 거부하였고 직접적으로 양민의 학살에 관여한 골수 공산주의자의 사위가 아니든가? 그러면, 노무현의 논리를 빌어, 그가 해외여행을 할 때 그를 공산주의자, 그것도 악질 공산주의자의 사위라고 누가 비난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만약에 대한민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면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주국가이므로, 그 장인의 행적에 대해 그가 책임질 이유가 없으므로, 우리는 그 전력을 묻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를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이 자기 입으로 독재자의 딸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대통령의 기본자질의 기본도 갖추지 못한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밖에 비취지지 않는다.

    사실 노무현의 행동을 보면 골목대장 수준이다. 국가의 업무를 골목대장 수준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렇게 처리하고서도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스스로 대단하게 평가하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그저, 자신이 한 일을 자신이 알지 못하므로 용서하라는 말일뿐이다. 다만 그의 행위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그가 정신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그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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