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 '시시각각'에 이 신문 김종혁 사회부문 부에티터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은 압승하고 열린우리당은 참패했다. 그때 '386 잔치는 끝났다'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5.31 선거는 시대적 징후를 보여 줬다. 유권자들은 더 이상 386의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386의 잔치는 끝난 것이다"는 내용이었다.

    그로부터 11개월이 흘렀고 이번엔 4.25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대통령 선거만 빼고는 '선거불패'라며 희희낙락하던 한나라당은 패배했다. "한나라당이라고 무조건 찍지는 않는다"며 처음으로 유권자가 등을 돌렸다. 더 재미있는 건 한나라당 지지자들조차 상당수가 "자~알 됐다"며 비판한다는 점이다. 아쉽겠지만 이젠 인정할 때가 됐다. 한나라당, 봄날은 갔다.

    얼핏 보기엔 불가사의하다.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도는 약 40%다. 열린우리당은 10%대에서 왔다갔다 한다. 한나라당 대선 예비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도 합계는 한창때는 70%까지 됐었다. 반면 여권후보는? 미안하지만 다 고만고만한 '도토리 키재기'다. 이런 조건인데도 어떻게 한나라당은 패배한 것일까.

    이 미스터리를 풀려면 우선 솔직해지는 게 필요하다. 용기를 내 한번 물어 보자. 도대체 한나라당이 그처럼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가 뭐라고 보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공격하는 것 말고 한나라당 스스로 잘한 게 뭐가 있느냐는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청년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고, 양극화는 갈수록 심각한데 제대로 된 고민 한번 해 봤는가? 기업들은 "중국과 일본에 치여 한국은 샌드위치"라며 아우성인데 대책이라도 한번 세워 봤는가? 국민연금·공무원연금 개혁도 표 계산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지 않은가. 혹시 북한 핵 문제를 풀어갈 당 차원의 대안은 있는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도 지지 여론이 더 높다는 게 확인될 때까지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지 않았는가. 허울 좋은 평준화에 아이들 골병들고 부모는 허리가 휘지만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해 본 적이 있는가. 신도 부러워한다는 방만한 공기업 문제 해결책은 찾아봤는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버겁다. 하지만 질문을 할수록 뚜렷해진다. 대한민국의 명운이 걸린 이런 문제들에 대해 한나라당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기 위해 애쓰는 걸 본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웰빙 정당' 소릴 듣는 게 아닌가.

    한나라당과 이명박 박근혜 후보의 지지도가 높은 건 스스로 잘한 게 많아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이 미워서' 그 반대편 쪽으로 쏠린 측면이 강하다. 노 대통령에 대한 '절망'이 깊어질수록 국민은 '희망'이 필요했고 그래서 한나라당 이·박 후보에게 매달렸다는 말이다.

    그런 노 대통령의 임기가 이젠 열 달도 안 남았다. 국민은 레임덕(lame duck)이 된 대통령을 미워하는 데도 지쳤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더 이상 '절망'도 아닌 것 같다. 한미 FTA를 뚝심으로 밀어붙였고, 여론이 반대하자 개헌도 슬그머니 접었다. 가끔 막말이 나오지만 그것도 이젠 견딜 만하다.

    이 마당에 유권자들이 궁금한 건 "우리가 꼭 한나라당을 지지해야 할 이유가 뭐냐"는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답을 주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4.25 선거에서 참패했다.

    이제 와서 "그럼 우리 말고 지지할 당, 찍을 후보 있어?"라고 대답하진 말길 바란다. 그런 교만 때문에 한나라당은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무참히 깨졌다. 국민은 더 이상 한나라당과 이·박 후보에게 어쩔 수 없이 매달리지는 않는다. 반대급부만으로도 재미를 보던 '봄날'은 갔다고 하질 않는가. 대선이 치러질 12월까지 시간은 많다. 유권자는 변덕스럽고 언제든 등 돌릴 수 있으며, 그게 유권자의 권리라는 걸 한나라당과 이·박 후보는 결코 잊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