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7년 어느날 미국 공화당 소속 제40대 로널드 레이건(1911∼2004) 대통령이 무덤 속에서 눈물을 흘렸다. 왜? “민주당의 아이디어는 파산했다. 민주당은 지적 자산을 완전히 소진했다”고 호언한 자신의 연설이 완전히 뻥인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연설은 1985년 3월 레이건 당시 대통령이 미국 보수파의 최대 잔치인 보수주의정치행동회의(CPAC) 연례회의에서 한 것이다. 압도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레이건의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 공화당 핵심 지지자 1700여명은 이 연설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지금 이 보수파 축제의 분위기는 어떻게 바뀌었나. 이 달 첫번째 주에 열린 34회 연례회의는 그야말로 ‘암울하고 불확실한 분위기가 지배했다’고 미국 타임지가 보도했다. 15일자 타임지는 ‘우파는 어떻게 잘못돼 왔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면서 표지에 눈물방울을 떨구는 레이건의 사진을 실었다. 지금 아이디어가 파산한 쪽은 민주당이 아니라 바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당인 것이다!

    미국 언론들이 각종 여론조사를 근거로 전망하는 2008년 11월 미국 대선의 향방은 진보 민주당 쪽에 유리하다. 미국 공화당원 10명 중 6명이 내년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공화당 의원들에 대해 ‘만족스럽지 않다’고 답변했다. 민주당원들은 그 반대로 ‘민주당 후보들에 만족한다’가 60%에 이르고 있다. ‘내년에 우리가 패할 것’이라고 예상한 공화당원은 40%에 이르고, 민주당원은 12%에 머물렀다.

    보수 본류 공화당의 조락(凋落)을 비통해하는 대표적 인물로 레이건이 선정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레이건은 2006년 11월호 애틀랜틱 먼슬리지가 역사학자들에 의뢰해 선정한 ‘미국 역사 형성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100인’ 가운데 당당히 17위로 뽑혔다. 그 선정 이유로 ‘보수세의 재결집과 냉전 종식 양면에서 호감을 얻은 설계자’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레이건의 업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보면 1위 평가를 받은 링컨대통령조차 “당신이 1위라도 나는 환영할 것이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오늘의 미국 보수 진영을 이 꼴로 만든 현 부시 대통령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가. 2006년 12월3일자 워싱턴포스트지는 ‘역사상 최악(the worst) 대통령 5걸 또는 그 가운데 1위’일 것이라는 평가를 내렸다. 북핵 문제는 김정일에게 질질 끌려다녀 언제 해결될지 막막하고, 이라크전의 수렁에 점점 깊이 빠져들면서 자꾸 이란으로의 전역 확대를 생각하는 것 같아 미국민조차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미국 보수가 결딴나고 있을 때 태평양 건너 한국에선 ‘이른바 진보’가 지리멸렬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시대 역행 정책은 수구 좌파라고 부르기에 적당하지만 자신들은 진보라고 우긴다. 하여튼 그런 진보가 지금 내홍(內訌)과 탈당으로 사분오열 난파선이 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토대로 한 ‘오늘의 형세’에서 보면 그들은 오는 12월 보수 우파의 한나라당에 정권을 넘기게 돼 있다.

    이럴 때 한국 쪽에서 ‘눈물 흘리는 레이건’의 역할을 할 사람은 김대중 전 대통령뿐이겠지만 노령의 그를 대신해서 문희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한숨을 쏟아내고 있다. 그는 김대중 대통령 아래서 청와대 정무수석, 노 대통령 아래서 초대 비서실장을 지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10년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현장을 보고 있다”는 게 그의 울분이다.

    미국 보수와 한국 진보의 동반 몰락의 진정한 원인은 무엇일까. 역사와 전통적 가치관을 보전하자는 보수는 고매한 사상이다. 미국 민주당도 이런 생각에는 찬성한다. 변화와 개혁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진보는 발전지향적이다. 한국 보수도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 몰락의 원인은? 부시 정권의 무능, 노무현 정권의 무능 때문이 아닐까.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가 노 대통령으로부터 ‘보따리 장수는 안된다’고 공격을 받자 “노 대통령이야말로 무능 좌파의 표본”이라고 반격했다. 탈당은 패착이지만 반격은 제대로 짚은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