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박은주 엔터테인먼트부장이 쓴 'KTV와 KBS 누가 이길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돈 따윈 필요 없어’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 속으론 돈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남자 따윈 별거 아냐’라고 말하는 여자들도 남자 때문에 마음 아프다고 울고불고 하는 일이 잦다. 인터넷 세상이 되어 신문의 주도권은 사라졌다며 우호적 인터넷 매체를 싸고 돌면서도, 쉴 새 없이 대통령과 정부는 만날 ‘신문 탓’을 해 왔다.

    “뭘 해 보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정부가 부동산정책, 대북정책 등에 대해 뭔가를 하려 하면, 그에 따른 긍정과 부정 효과를 점검하는 게 언론이다. 우리 정부는 그걸 딴죽 건다고 생각한다.

    그 밑바탕에는 문제 있는 정책이라도 언론만 호응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대통령 스스로 ‘약자’라고 정의, 이걸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전략도 한몫한다. 언론과 국민을 분리하고 자신을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사태의 궁극적 책임을 모면하려는 방식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이 정부 인사들로부터 호응을 받는 신문의 태도와 제목이란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정부 부동산 보유세 대폭 인상, 불평 말고 납부해야’ ‘대통령 이번에도 코드 인사…변함없는 선택에 박수 보내야’ 등.

    그러나 도저히 이런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대통령이 이번에는 새로운 대안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14일 공무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항상 국민의 한 사람이라는 가정을 하면서 TV를 보는데 KTV는 참 잘한다”며 공무원들도 KTV를 많이 보고, 많이 활용하라는 취지로 발언을 했다. KTV는 정부가 운영하는 유선방송으로, 정부 정책을 홍보하는 채널이다. 이제 공무원들은 일할 시간에 KTV 보고 방송출연 궁리까지 해야겠다.

    개인적 바람으로는 제발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이 KTV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대통령이 생각하기에 ‘대통령 해먹을 수 있게 도와주는 언론’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KTV가 앞장서 정부가 보기에 ‘나쁜 신문’도 제어하고, 대통령의 ‘언론 탓’ 타령으로 신경쇠약 직전인 국민들이 좀 편안해지면 그야말로 ‘공익’ 채널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그건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일단 국민들이 그런 방송을 아까운 시간을 내서 볼 리 만무하다. 더 큰 변수는, KBS가 ‘바람직한 방송’의 자리를 KTV에게 양보할 리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KBS 스페셜은 ‘언론의 숨은 얼굴―기사 제목’을 방송했다. 프로그램 수준도 별것이 아닌 데다, 맞는 것도 버릇 된다고 “또 조선일보 때리기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KBS 시청자 게시판에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왜 노무현 대통령이 정연주 사장을 연임시켰는지 알 수 있었네요” “이처럼 편향된 방송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반대편 언론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프로그램의 논리에 따르면 신문은 ‘북한 퍼주기’ ‘세금폭탄’이라는 표현을 쓰면 좋지 않다. 정부 당국자조차 ‘세금폭탄’이란 말을 했는데도 신문은 그렇게 쓰면 안 된다. 프로그램의 결론은 ‘정부 정책에 토 달지 말자’는 것 같다. KBS ‘미디어 포커스’, KBS2 ‘시사 투나잇’도 이런 측면에선 밀리지 않는다.

    얼마 전 KBS의 한 인사가 심각하게 물어 왔다. “TV 수신료를 올려야 KBS가 살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했다. “BBC를 봐라. 방송이 정부로부터 확실히 독립해 비판하는 모습을 보여라.”

    그러나 이제 강력한 적수, KTV를 만나게 된 KBS가 이런 전략을 펴기는 힘들어 보인다. 그보다는 ‘정연주 사장의 KBS’가 대통령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문제를 놓고 KTV와 얼마나 뜨거운 싸움을 벌일까 지켜보는 게 훨씬 흥미로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