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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1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백화종 편집인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고 두 달 남짓 지난 2003년 5월 기자는 이 난에서 자동차 운전에 빗대 그의 국정 운영 스타일을 두 전직 대통령과 비교하여 내다본 일이 있다. 운전을 하다가 진행 방향을 180도 바꿔야 할 경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급제동 후 바로 후진 기어를 넣는 스타일이고,김대중 전 대통령이 천천히 U턴 하는 스타일이었다면 노 대통령은 타고오던 차에서 내려 반대 방향으로 서 있는 차에 오르는 스타일이지 싶다고 했었다.
“반미주의가 뭐 어떠냐”고 했던 노 대통령은 그 달 그의 생애 첫 미국 방문에서 “53년 전 (6·25 때)미국이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 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몇 달 사이에 180도 바뀐 대미(對美) 인식이었다. 북한 핵과 관련해서도 포용론을 주장하던 그가 강경론을 폈다.
노 대통령은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있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 대화만을 강조할 수 있는 입지가 없어진 것 아닌가” “… 포용정책만을 계속 주장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고 말했다. 대북(對北) 포용정책의 포기 내지는 재검토 입장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다음날 여야 지도부를 만나 “포용정책이 핵실험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인과관계를 따져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경 입장에서 선회,포용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 발언이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차 바꿔 타기 예를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 임기응변으로 대처해야 할 때가 있고 사정이 변경되거나 자신의 소신이 바뀌면 말을 고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 설명 없이 수시로 말을 바꾸는 건 시정의 필부들도 할 일이 아니다.
‘자공이 정치에 대해 여쭤봤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식량을 충족시키고,군비를 충족시키며,백성의 믿음을 얻는 것이다. 자공이 또 여쭤봤다. 부득이하여 버린다면 셋 중 뭘 먼저 버려야 합니까. 군비를 버려야 한다.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뭘 버려야 합니까. 식량을 버려야 한다. …백성의 믿음을 잃으면 국가의 정치는 설 수가 없다’(박일봉 편역 논어 안연편)
힘이 곧 정의요 군주가 절대 권력자였던 춘추전국시대에도 공자는 백성의 (군주에 대한)믿음이 없으면 국가도,정치도 설 수가 없다(民無信不立)고 갈파했다. 하물며 국민이 주인인 오늘날 지도자에 대한 국민의 믿음의 중요성이야 더 말해 뭐 하겠는가.
한자의 믿을 신(信)자가 사람 인(人)변에 말씀 언(言)자로 돼 있다는 걸 끌어다대지 않더라도 지도자에 대한 믿음은 그의 말에서부터 시작돼 말에서 끝난다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자신의 말을 천금같이 여기고 말에 일관성이 있어야만 국민도 그의 말을 무겁게 여기고 믿는다. 지도자가 자신의 말을 가볍게 여겨 쉽게 뒤집고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국민에게 자기를 믿고 따르라면 웃을 일 아닌가.
포용정책에 대해서는 기자 나름의 생각이 없지 않으나 여기서는 그에 대한 토론을 하자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이 지적했기에 피하고자 한다. 포용책이든 강경책이든 국가 민족의 명운과 관련된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말에 일관성이 있어야겠고 그 메시지 또한 모든 국민이 알아듣게 단순 명쾌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예컨대 포용정책을 찬성하는 사람도,반대하는 사람도 대통령이 못 미더워 불안해하고,정부·여당 내에서마저 국가 정책에 혼선이 생기며,며칠 가겠느냐는 식으로 대통령의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는 것이다.
대통령의 말에 국민의 믿음이 실리기 위해선 정부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철저히 대비함으로써 국민을 안심시키고 국민 앞에 소신을 뚜렷이 해야 할 것이다. 또 가능하면 말하기 전에 세 번 생각하고,과거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챙겨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대통령이 국민의 믿음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