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5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논의에서 알맹이는 빠지고 찬반의 감정적인 아우성만 무성하니 2010년대 이후 우리 안보가 참으로 걱정이다. 정부는 전작권이 우리에게 넘어와도 한반도 유사시 한국을 지켜내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줄 임무를 게을리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전작권 환수 반대를 보수언론을 포함한 수구세력의 시대착오적 망동과 한나라당의 내년 대선전략으로 몰아붙이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 보인다. 전작권 환수를 주권 회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구상유취(口尙乳臭)다.

    전작권 환수 반대세력도 미군의 자동개입을 보장한 인계철선이 사라지고, 전작권이 넘어오고, 한미연합사령부가 해체된 뒤 미군의 북한 핵.미사일 시설 선제 공격 또는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이 전작권 단독 행사로 어떻게 북한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묻고 따져야 한다. 전작권 환수 반대투쟁에 나선 전직 국방장관들과 군 수뇌들, 고위 외교관들, 경찰 총수들은 이 방면의 최고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한국이 최장 2012년까지 예산이나 군사기술상으로 지금의 한미연합사령부 체제와 같은 수준의 전력을 갖출 수 있는지, 다음 세대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빚폭탄을 안기는 전력 증강은 아닌지 문서로 발표하고 정부를 추궁해야 한다.

    내년부터 2011년까지 시행하는 국방중기계획에는 1조6000억원으로 공중조기경보기(AWACS) 4대와 3조원으로 이지스(Aegis)함 4척의 구입이 들어 있다. 그리고 1500억원을 들여 글로벌 호크도 도입할 계획이다. 공중조기경보기는 적 항공기의 움직임을 탐지한다. 글로벌 호크는 20㎞의 고공에서 적군의 지상에서의 움직임을 탐지하는 무인 정찰기다. 북한 전체를 조감하는 군사용 인공위성도 필요하다. 인공위성에서 중요한 것은 '보는 장비'인데 미국에서 구입하는 것이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C4I(지휘.통제.통신.컴퓨터.정보) 체계다. C4I는 전시에 공중조기경보기나 글로벌 호크나 그 밖의 방법으로 탐지한 적군의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작전사령부에 보내고, 작전사령부는 그 정보를 통합.분석해 공격부대에 작전지시를 내리는 통합 정보.작전체계를 말한다. 적정(敵情) 탐지에서 작전지시를 내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몇 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브루스 벡톨 박사는 작전권이 한국에 넘어가면 미군은 C4I체계를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사령부로 가져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군에는 컴퓨터와 정보가 빠진 C3(지휘.통제.통신)만 남는다. 두뇌 없는 몸통이다. 벡톨 박사는 C4I 없는 군대를 가상으로 몸집은 큰데 머리(두뇌)가 없는 미식축구의 수비수인 라인배커에 비유한다. 평균 신장 2m 체중 110㎏의 거구에 머리가 없는 라인배커 같은 한국군은 상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정부가 한.미군 간 정보 공유의 유지를 전작권 환수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자면 미국이 계속 한국에 대한 방위공약을 지킬 마음을 갖게 해야 한다. 미국의 인공위성도 수입하고 C4I체계의 정보를 공유하는 체제를 유지하려면 대미 교섭도 세련돼야 한다. 얻는 것 없이 미국의 비위를 긁는 386식 협상 방식으로는 인공위성도 못 사고 C4I도 잃는다. 자주니 주권 회복이니 하는 유치하고 감정적인 표현은 도움이 안 된다. 전작권을 환수하든 안 하든 한국군 전력 증강의 비전은 북한을 넘어서 2020년 이후의 중국과 일본을 시야에 둔 높은 수준의 것일 필요가 있다. 우리 고대사까지 넘보는 중국의 무한 팽창주의와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본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것을 보면 우리는 최소한의 거부적 억제력(Deniability)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 정세가 엄혹한 지금 정부, 특히 청와대는 민족 자주의 환상을 털고 한.미 교섭과 국군의 전력 증강에 성심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