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데스크 시각'란에 이 신문 조용 편집국 부국장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권은 흔히 ‘운동권 정권’ 또는 ‘386 정권’으로 불 린다. 하지만 현 시점에선 엄밀히 말해 이 같은 두 갈래 규정은 다소 어폐가 있다. 386 중에서 비운동권 출신이 이미 지지를 철회한 데 이어 ‘5·31 참패’이후에는 운동권 출신 가운데 비 386도 속속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이 정권 핵심엔 한 줌의 ‘운동권 386’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년여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그때 운동권 출신과 386은 다같이 정권 주체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총선 대승으로 행정부에 이어 입법부까지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 당 386 의원들이 청와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놓아 부 르며 감격에 겨워했던 게 당시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화 였다.

    도대체 지난 2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정권의 기반이 운동권과 386의 합집합에서 운동권 386이란 교집합으로 급격히 오그라든 것인가. 현 정권 청와대에서 11개월간 교육문화비서관 으로 일했던 김진경(53)씨가 최근 전교조 현 지도부와 386을 신 랄히 비판한 데서 그 해답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 1985년 ‘민 중교 육지 사건’으로 1년2개월간 복역한 뒤 전교조 결성을 주도했던 김씨는 운동권 386의 바로 윗세대다.

    김씨는 “386들이 개혁을 표방하지만 그 속내는 중산층에 편입되 기 위해 기존 중산층 이상 계층과 치열한 자리다툼을 벌이는 것 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여권내 386들이 전매특허처럼 내세우 는 개혁 주장의 동기부터 불순하다고 꿰뚫어본 것이다. 그는 특 히 “현재 사교육시장은 80년대 학생운동을 했던 386들이 장악하 고 있으며 이중 상당수는 떼돈을 벌었다”면서 “이제 이들이 거 대한 세력을 형성, 정치권에 로비도 하고 압력도 가하고 있다” 고 ‘폭로’했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386이 주축인 전교조가 왜 그토록 집요하게 ‘방과후 학교’정책에 반대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전인교육’주장을 한꺼풀 벗겨보면 학원사업 으로 돈벼락을 맞은 ‘386 친구’들과의 암묵적 커넥션이 의심스러 운 대목이다.

    이 정권 들어 ‘시대정신’을 내세우며 권부 중심에 진입한 운동 권 386이 재력까지 움켜쥔다는 건 명분방석, 권력방석에 이어 돈 방석까지 방석 3개를 깔고 앉는 격이다. 능력 본위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3대 가치를 한꺼번에 추구하는 노력 자체를 나무랄 일 은 아니라고 본다. 문제는 여권내 386들이 과연 그럴 자격이 있 느냐는 점이다. 운동권 386이 대학시절 이후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국정의 단순한 비판자라면 몰라도 주요 담당자로선 실력이 크게 부족하다. 그럼에도 남 탓, 시류 탓만 할 뿐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은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스캔들 식의 이중적 행태도 이들의 고질이다.

    노 대통령이 여권내 386과 각별한 관계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 5공 시절 평범한 변호사였던 노 대통령이 ‘현장’에 눈을 뜨 고 민주화 투사로 변신한 것도 이들의 ‘의식화’덕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노 대통령과 386이 결별할 때가 됐다. 노 대통령은 386 과잉의존에서 벗어나고 386은 노 대통령을 총애독점 상태에 서 풀어줘야 한다. 그 다음에 할 일은 자명하다. 노 대통령의 최 우선 과제는 운동권 386 대신 각분야 최고 전문가들과 함께 그간 의 국정 파행을 수습하는 것이다. 여권내 386도 자리 욕심, 돈 욕심은 그만 부리고 ‘진정한 개혁’을 위해 언행일치를 보이는 게 옳다. 이게 길게 보면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