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일자 오피니어면에 이 신문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가 쓴 칼럼 '정치인들 정신연령은 몇 살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인간은 언어능력(Speech)을 타고났다. 케케묵은 소리 같지만 이것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내린 인간에 대한 두 가지 정의(定義)다. 대통령.총리.국회의원이 아니라도 인간은 다소간의 정치적인 성향을 갖고 정치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 그러나 누구 누구 해도 정치인, 그중에서도 국회의원이 "언어능력을 타고난 정치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의 정의에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다.

    인간의 언어(능력)는 단순히 발성을 통한 의사표시가 아니다. 그 정도는 다른 동물들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능력에는 윤리·도덕관과 가치판단·상징성이 들어 있다.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을수록 더욱 그래야 한다. 말이 정치의 주류를 이루던 로마시대 변론술(辯論術)의 라틴어 원어인 오라치오(Oratio)의 어간(語幹) 라치오(Ratio)가 이성(理性)을 뜻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시대 최고의 웅변가·정치가·철학자 마르쿠스 키케로는 정치를 하는 데 웅변 없는 영지(英知.Intelligence)는 정치적으로 무력하지만 영지 없는 웅변은 모든 의미에서 해롭다고 말했다.

    이해찬 총리와 야당 의원들이 벌인 대정부 질의는 '영지 없는 웅변'의 적나라한 모습이었다. 그것은 격조 높은 이성적 성찰과 판단인 라치오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알맹이와, 그 질의를 지켜보는 국민에 대한 예의와는 거리가 먼 천박한 아우성의 경연(競演)이었다. 경연이라기보다 막말과 욕설을 주고받는 반(反)정치의 추태였다.

    야당 의원은 총리를 상대로 "희대의 브로커와 놀아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천박한 용어를 쓰는 대신 총리가 문제의 브로커와 몇 번 만나서 얼마나 많은 정치후원금을 받았는지 밝히라고 조목조목 따졌어야 했다. 그는 한심하게도 총리에게 브로커에게서 받은 후원금 액수를 밝히는 대신 선거법 어겨서 의원직까지 박탈당했던 주제에…라는 염치없는 반격의 빌미만 제공했다. 이해찬 총리가 누구인가. 구제불능의 싸움닭 같은 그는 논쟁할 때 험한 인상과 얼음장 같은 냉소로 노회하게 예봉 피해가기로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수위를 다투는 인물이 아닌가. 결국 야당 의원과 이해찬 총리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수준에서 라치오(이성적 판단)는 빠지고 잡소리만 요란한 오라치오(웅변)를 교환하고 발언대를 내려왔다. 그들은 그렇게 금쪽같은 공적(公的) 시간을 네 시간이나 낭비하면서 한국 정치의 퇴보와 왜곡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해찬 총리와 홍준표 의원만이 예외적으로 거칠고 사려(思慮) 깊지 못한 언행을 하는 국회의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들이 말도 안 되는 말을 주고받을 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의석에서는 이 나라 의회민주주의를 조롱하는 것과 다름없는 아우성이 터져나왔다. 다음 질의에 나선 야당 의원은 "총리가 눈을 부라리고 말마다 쫑쫑 토를 단다"고 공격했다. 언어의 쓰레기통에서도 찾기 힘든 저질 용어다. 어느 야당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치매 걸린 노인으로 묘사해 말썽을 빚었다. 총리와 국회의원, 당신들의 정신연령은 몇 살인가.

    낡은 정치 청산하고 새 정치를 하겠다면서 출범한 국회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과거사 청산에 열중한 탓인지 정치판의 자정(自淨)에는 무관심하다. 국회에 진지하게 건의한다. 의원들은 연수원에라도 며칠 들어가서 정치의 ABC부터 다시 공부하라. 언어감각을 익히고 윤리교육을 받으라. 고려대 최상룡 교수 같은 키케로 전문가를 초빙해 강의도 듣고 윈스턴 처칠의 의회 발언록을 구해다 벤치마킹하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언행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라. 술김에 여기자를 성추행하고, 술집에서 폭력 쓰고, 국회 토론을 학생들의 모의국회보다도 못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반정치의 행태를 언제까지 계속할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