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경제초점'란에 이 신문 박정훈 경제부장이 쓴 '고교생도 아는데 정부만 모르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작은 정부가 효율적이라고 배웠는데요….”

    고교 1년생의 돌연한 질문을 받고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진땀깨나 뺐을 성싶다. 엊그제 경제경시대회 수상자들이 한 부총리 등과 점심 먹는 자리에서, 임규리(경기고1년·동상) 학생이 던졌다는 질문이 하도 신통해 전화를 걸어 추가 취재를 해보았다.

    ―‘작은 정부’ 문제는 어디서?(기자)

    “책에서 읽었어요. 이준구·이창용의 ‘경제학 원론’이던가? 스태그플레이션(물가상승 속 경기침체)이 시작되면서 재정지출을 늘리는 큰 정부 정책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고요.”(임군)

    ―지금 정부는 어떤데요?

    “공무원 늘리고, 세금을 더 거둬 빈곤층에 나눠주려는 정책 같아요. 그런데 이건 일시적 효과만 있지 오래 못 가잖아요.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들 수도 있다고 하던데요.”

    똑 부러지는 해설에 무릎을 치고 말았다. 약자(弱者)를 위하려는 정책이 도리어 약자에 해가 될 수 있다는 ‘복지의 역설(逆說)’은 이미 입증이 끝난 명제인데, 고교생도 아는 진리를 정부와 몇몇 분배 지상주의자들만 모르는 척 한다.

    경제란 본래 선택이라지만, 지금 벌어지는 경제 논쟁엔 어느 게 사실이고 거짓이냐의 ‘진실게임’으로 판가름내야 마땅한 것들이 많다. 허구로 판정났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도그마, 정치적 복선이 깔린 구호 등이 마치 선택 가능한 대안인 것처럼 호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큰 정부냐, 작은 정부냐는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다. 정부가 마음에 안 들면 기업도 자본도 손쉽게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글로벌 경쟁의 시대에서 ‘큰 정부’의 생명력이 다 했음은 이미 논쟁이 끝난 ‘사실’의 영역에 속한다.

    약자의 생계보장을 위해 사회 안전망을 충실하게 까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저 세금을 많이 거둬 배분하는 ‘돈 쓰는 복지’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 유럽 복지국가에서 너무도 충분히 확인됐다. 소모성 복지가 경제활력을 떨어뜨려 결국 빈곤층에도 손해임이 드러난 것이다.

    대안이 뭐냐고? 영국·덴마크 등은 시행착오 끝에 ‘생산적 복지’의 해답을 찾아냈다. 물고기(소득분배) 대신 낚싯대(빈곤탈출 능력)를 주는 복지다.

    경제 활력을 유지하면서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작은 정부의 생산적 복지’ 외엔 답이 안 나온다. 그런데도 정부는 20%에게서 더 거둬 80%에 나눠주면 양극화가 해결된다는 식의,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논리를 내밀고 있다.

    하기야 정부·여당의 양극화 담론엔 사실오인(誤認)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를테면 청와대 브리핑은 “언론이 양극화 문제에 침묵해왔다”고 썼는데 기가 막힐 지경이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갑자기 양극화를 외치기 오래 전부터 조선일보엔 ‘우리이웃’ 캠페인이며, 소외받는 사람들의 기사가 수없이 실렸다.

    또한 정부는 양극화에 대해 과거 정권 핑계를 대나, 양극화 심화의 직접적 이유가 현 정권 들어 이어진 저(低)성장과 일자리 감소, 서민경기 위축 때문임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다.

    정부·여당의 포퓰리즘 정책은 ‘사실의 힘’을 깨달은 국민 여론에 의해 속속 허구라는 판정을 받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80%를 위하는 양 포장한 정책들에 대해 80%에 속하는 사람들마저 ‘No’ 하고 딱지놓고 있는 것이다.

    다시 임규리군과의 대화. 공무원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 한 부총리는 “극빈자 파악과 치안·교육 인력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는데, 임군 반응이 궁금했다.

    ―부총리 대답에 납득이 가나요?(기자)

    “제가 확인할 길이 없으니 말씀하신 대로 받아들여야죠.”(임군)

    아아, 똑똑하지만 순진한 임군. 정부가 거짓말이야 하겠느냐고 믿는 모양인데, 정부가 극구 감추려는 사실 한 가지만 알려주고 싶다. 한 부총리가 인사권을 쥔 재경부만 해도, 할 일 없이 떠도는 이른바 ‘인공위성(무보직 유휴인력)’이 수십 명에 달하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