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란에 이 신문 김두우 논설위원이 쓴 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서울에서는 야당, 지역에서는 여당'."한나라당은 도대체 왜 이런가"라는 질문에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의원의 자조 섞인 답변이다. 국회에서만 야당일 뿐, 지역에 가면 시도지사와 시장 군수 구청장의 다수가 한나라당 소속이니 불편할 게 없다. 민원도 잘 통하고 지역 행사에서 개밥에 도토리 신세의 서러움을 겪지 않아도 된다.

    자산가도 적지 않다. 의원들의 평균재산은 한나라당 17억8200만원, 열린우리당 10억2900만원이다. 지난해에 비해 1억원 이상 늘어난 의원은 한나라당 48명에 열린우리당 30명이다. 부동산과 주식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재산이 많은 것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 '지역 여당'이다 보니 정치적으로 아쉬울 게 없고 여기에 등 따습고 배부른 게 더해져 절박감은 찾을 길 없다는 말이다.

    최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추행 파문'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하고 위기의식 없는 한나라당의 고질병이 재발한 것이다. 최 의원의 평소 성품은 그렇지 않다느니, 박근혜 대표가 술을 잘 안 마시는 데다 조용한 성격이어서 최 의원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과음한 탓에 실수했다느니 하는 얘기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일반 기업에서도 술자리 회식 때 최고경영자(CEO)의 옆에 여직원을 앉히지 않고, 여자 기사가 대리 운전을 할 때에는 옆자리에 앉지 않으며, 교수가 여학생을 면담할 때에도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놓는 게 상식인 세상이다.

    기가 막힌 것은 이런 종류의 사건이 잊힐 만 하면 재발한다는 점이다. 김태환 의원의 골프장 경비원 폭행사건, 곽성문 의원의 맥주병 투척 사건, 주성영 의원의 술자리 폭언 논란에 최근에는 전여옥 의원의 'DJ 치매 발언' 등이 꼬리를 물었다. 당사자들로서는 억울하거나 와전됐다고 항변할 대목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진실 여부는 논외로 치자. 문제는 그렇게 지적받고도 오해를 살 만한 언행을 조심하지 않는 그 둔감성이다.

    한나라당의 이런 모습은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다. 두 차례 대선에 실패한 직후에는 패배감에 젖어 쩔쩔매다가 몇 달만 지나면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설마 이제는 바뀌겠지"하는 기대는 실망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2004년 17대 총선 때에는 얼마나 절박했는가. 그러나 초선 의원이 절반 가까이 당선됐지만 이들도 곧 한나라당의 고질에 묻혀 버렸다.

    5.31 지방선거를 맞는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는 다르다.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면 당이 공중분해될 가능성이 작지 않고, 현재 거론되는 대선주자들은 흔적조차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두 결사적이다. 그 과정에서 선거를 조기에 과열시키고 관권선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국민의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있다. 경쟁력 있는 후보를 영입하기 위해 당 전체가 나서고 있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은 어떤가. 이번 지방선거는 무조건 이기게 돼 있으니 이 기회에 내 식구를 챙기고 내 사람을 심겠다는 안이함에 빠져 있지 않은가. 집권을 꿈꾸지 않는 정당은 죽은 정당이다. 집권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 철학과 정책을 실현하고, 그래서 국민과 국가를 행복하고 부강하게 만들 의지가 없다면 정치를 할 이유가 없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는 것보다는 나의 재선과 잘먹고 잘사는 게 우선"이라는 의원들로 넘쳐난다면 정권은 결코 오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초선 의원들이다. 60명 가까운 초선들이 당 개혁에 나서는 것만이 해법이다. 그게 가능할지 미지수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