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0일자 오피니언면에 안종범 성균관대 교수가 슨 시론 '양극화 해소 세금으론 안된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또 세금을 내세우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세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아무리 재정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꿔도 소용없다고도 했다. 이 말은 결국 세금을 더 거두는 방법밖에 없다는 뜻 일게다. 하지만 세금을 양극화 해소에 동원하는 일은 제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금으로 양극화를 잡겠다는 것은 얼떨결에 7% 경제성장을 공약했던 것보다 더 무책임하다. 7% 성장은 못해도 하는 수 없지만, 세금을 동원했다 잘못되면 그 피해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에게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으로는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세금 인상은 효율성의 저하를 가져온다. 경제이론에는 사중손실(死重損失.Dead Weight Loss)이라는 개념이 있다. 세금을 더 거두면 소비자는 소비를 줄이고, 근로자는 일을 덜하고, 생산자는 생산을 줄이면서 대응한다. 경제주체들의 이런 행위 변화 때문에 더 거둔 세금을 모두 재정지출을 늘려 국민에게 돌려준다 해도 세금 인상 전의 사회후생 수준을 회복하지 못한다. 이렇게 세금 인상으로 사라져 버린 부분이 바로 사중손실이다. 우리의 경우 선진국에 비해 사중손실이 더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둘째 이유는 형평성이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둬 양극화 해소에 쓰겠다는 데 누가 나서서 반대하겠는가? 그런데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려 할 경우 그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세금이 부과되지 않거나 덜 부과되는 곳으로 소득원을 옮길 것이고 결국 정부는 기대한 세금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정부는 이미 양극화 해소를 위해 써버린 부분을 메우기 위해 소비세를 올리든지, 아니면 적자국채를 발행하게 될 것이다. 소비세든 적자국채든 그 피해는 저소득층이 더 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흔히 '유리지갑'이라는 근로자가 더 피해를 볼 것도 자명하다. 

    과거 노 대통령은 우리의 세부담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낮아 더 높여도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비교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큰일난다. 우리는 아직 고령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았고 또 세금 말고도 부담금과 같은 준조세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 두 요인만 봐도 우리의 조세부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 비해 낮다는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제 효율성이나 형평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세금을 잘 거둘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래도 남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세금으로 거둔 돈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등 대통령이 밝힌 여러 사업을 하면 과연 양극화가 해소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이들 사업은 모두 참여정부 출범 이후 계속해 왔는데 새삼 돈만 더 부으면 갑자기 양극화가 해소될까. 오히려 지금 시점에서는 양극화가 생긴 원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따져보는 게 더 중요하다. 일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양극화 현상은 모두 시장에서 일어난다. 그래서 시장에서 기업이 투자를 더 하고 근로자를 더 고용하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하루빨리 회복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등 경제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 간단히 말해 지금 우리 경제상황에서는 성장이 가장 확실한 양극화 해소책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임기 내 성과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성과에 더 연연해 세금이 아닌 시장으로 양극화를 해소한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그냥 자본주의 국가에서 양극화문제는 일단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야 경제에 활기가 생겨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외국으로 가던 기업도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