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이 고질적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이유는 '영남당'이기 때문"

    사학법 처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너무 무기력했다는 당 안팎의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초선 의원들이 잇따라 당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퍼붓고 있다.

    전여옥 의원(초선 .비례대표)이 "한나라당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다"며 소속 의원들을 신랄하게 비판한 데 이어 정두언 의원(초선. 서울 서대문을)도 14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비난을 쏟아냈다.

    정 의원은 "이 당에서 의원생활을 하면서 보니 한나라당이 고질적인 무기력증에 빠져있는데 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바로 '영남당'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년반 동안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 원인을 고민한 결과"라며 한나라당은 어려운 곳에서 당선된 경쟁력 있는 인사를 우대하지 않고 당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언제나 영남 출신들"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죄송한 말씀이지만 영남에서는 대부분 국회의원에 쉽게 당선이 된다. 이는 긴장과 도전에 약하다는 것"이라며 "그 결과 영남 의원들은 필연적으로 현상유지의 경향을 보이기 쉽지만 늘 긴장과 도전에 시달리는 수도권 의원들은 쉴 새 없이 암중모색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04년 총선 이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영남 출신 의원들이 인사말을 하면서 '자갈밭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들을 했는데 나는 그때 그 분들을 내 지역구로 초대하고 싶었다"며 "수도권 의원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한가하고 배부른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는 "내가 이렇게 욕먹을 얘기는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집권을 해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기 때문"이라며 "수도권 의원들을 당의 얼굴로 내세우고 스타급 의원들이 지역구를 서울의 강북으로 대거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정두언 의원 글 전문]

    지난 8월 말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 초청된 어느 연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나는 한나라당이 시장경제를 얘기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한나라당 자체가 시장경제의 핵심인 경쟁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어려운 곳에서 당선된 경쟁력 있는 인사를 우대하지 않는다. 봐라 당을 움직인다고 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거의가 영남출신들 아니냐?

    나는 그가 한나라당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한나라당 소속 국회의원으로서 한나라당의 무기력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그 원인이 무엇일까 고민해왔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답은 한나라당은 영남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의원 대다수가 영남출신이다. 그리고 죄송한 말씀이지만 영남에서는 대부분 국회의원에 쉽게 당선이 된다. 누구는 본고사가 쉬운 대신에 예비고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수도권 의원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한가하고 배부른 얘기다. 쉽게 당선된다는 것은 긴장과 도전에 약하다는 것이다. 긴장과 도전에 약하면 필연적으로 현상유지의 경향을 보이기 쉽다. 이에 반해 늘 긴장과 도전에 시달리는 수도권 의원에게 현상유지는 항상 불안하다. 그래서 쉴 새 없이 암중모색하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영남권 의원은 안 그런다는 얘기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점을 이해해 주기 바람) 긴 얘기 할 것 없이 토인비가 이미 가르쳐 주었다. 도전이야말로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일년 내내 먹을 것이 풍성한 열대지방 보다 척박한 기후와 토양을 지닌 지역에서 문명이 발달했다고.

    당명개정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이런 문제가 확연이 드러난다. 대부분의 영남 의원들은 당명개정에 반대다. 이래저래 손해라는 것이다. 그쪽에서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손해를 보아도 당락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손해를 보는 것은 싫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 같다. 하지만 수도권 의원에게 당명개정은 이익이다. 큰 이익은 아니더라도 당락을 결정하는 이익이다. 논리를 단순화시킨 감이 없지 않으나 이렇다면 영남권 의원들이 양보하는 게 맞다. 그런데 문제는 앞서의 연사가 지적했듯이 한나라당의 의사결정권은 영남 의원들에게 있다. 이것이 당명개정이 지금까지 지지부진한 이유중의 하나라고 본다. 그런데 당명개정은 한 예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의사결정이 이런 구조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때, 한나라당은 전체적으로 현상유지에 급급한 모습으로 가기가 쉬운 것이다.

    수도이전도 그렇고 수도분할도 그렇고, 한나라당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잃는 것부터 따지는 못된 습관이 있다. 얻는 것은 불확실하고 잃는 것은 분명한 것 같으니 안 잃는 쪽으로만 간다. 그것도 애매모호한 태도로 질질 끌다가 말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볼 때 마음에 안드는 것이다. 만년 여당이니, 기득권 정당이니, 웰빙정당이니 하는 말을 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이렇게 욕먹을 얘기를 하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우리는 반드시 집권을 해야하는 데, 이런 식으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혹시 일부의 지적대로 집권은 안 해도 국회의원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 또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또 다시 집권에 실패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민주당과 자민련의 신세로 전락할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2004년 총선이 끝나고 처음 갖는 의원총회에서 영남출신 의원들이 인사말을 하며 자갈밭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말들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 때 그 분들을 나의 지역구로 초대하고 싶었다. 나의 지역구인 서대문을 지역은 서울인데도 아파트를 빼놓고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건물이 열개가 될똥 말똥한 동네다. 믿거나 말거나이다. 나는 선거가 끝난 후 지지자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받았다. 당선돼 주어서 너무 고맙다는 것이었다. 구여권 출신으로는 이 지역에서 해방이후 내가 처음 당선되었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탄핵폭풍을 뚫고 자기가 찍은 사람이 당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연찬회 때의 그 연사는 이런 얘기도 했다. 고대시대 때부터 우리나라는 한강을 지배하는 자가 전국을 제패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한강을 포기했고 지금도 포기하고 있다. 경쟁력 있는 인사가 영남으로 강남으로 가버리면 어떻게 한강을 먹겠다는 말인가?

    결론적으로 한나라당이 고질적인 무기력증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의 하나. 수도권 의원들을 당의 얼굴로 내세우고 (물론 나 자신은 절대 사양하겠다), 스타급 의원들이 지역구를 서울의 강북으로 대거 옮기는 것.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2005년 12월 14일  정  두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