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란에 논란을 거듭해 온 사립학교법 개정안이 9일 힘과 수를 이용한 열린우리당의 강행처리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연말 정치권은 또 한번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됐다.

    특히 열린당과 과격한 몸싸움 끝에 밀린 한나라당이 이번 사학법 강행처리를 계기로 '상생의 정치' 기조에서 '대여 강경투쟁' 기조로 급선회함에 따라 예산안과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관련입법, 비정규직 법안, 이라크 파병 연장동의안 등을 처리해야 할 국회는 파행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을 통한 여야 관계 정립을 강조해 온 박근혜 대표가 사학법 강행처리로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점을 감안할 때 앞서 거론된 시급한 중요법안 처리 과정은 살얼음판을 걷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또 박 대표가 중시하는 '원칙과 기준'이 여권의 힘과 수의 정치에 하나 둘씩 무릎을 꿇고 있는 점은 박 대표를 더욱 강경하게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박 대표가 '원칙과 기준'을 내세우며 지켜온 4대 쟁점법안 중(국가보안법, 사립학교법, 신문법, 과거사법) 국보법을 제외한 모든 법안이 여권의 의도대로 처리됐기 때문.
     
    남은 국보법 마저 열린당의 힘과 수의 정치에 밀려 처리될 경우 박 대표는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을 뿐 아니라 자신의 대권 행보에도 큰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이 같은 정치 상황이 박 대표에게 '대여강경투쟁'이란 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사학법 개정안 가결 직후 '김원기 국회의장 사퇴촉구'와 '향후 국회 일정 전면 거부' '사학법 무효와 헌정 파괴 범국민 규탄대회 개최' 등 장외투쟁을 포함한 여권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박 대표는 9일 저녁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헌정사상 유례없는 날치기, 폭력적 행동에 의해 처리된 사학법은 원천무효"라며 "끝까지 법의 원칙과 헌법을 사수해야 할 국회의장은 이 모든 결과에 책임지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고 비판한 뒤 "지금부터 나와 한나라당 의원들은 사학법 반대 투쟁을 시작하겠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대표는 "노무현 정부와 여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법은 사학 투명성이 목표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반미·친북의 이념을 주입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때문에 박 대표가 사학법 문제를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연계시킬 개연성도 적지않다. 만일 박 대표가 사학법 논란을 국가 정체성 문제로 확산시킬 경우 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인 보수층으로 부터 광범위한 지원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대표는 또 "민주주의가 무너지는데 다른 법을 처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여당과는 의정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원내수장인 강재섭 원내대표는 가결 직후 "법안통과 저지 실패에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 의사까지 표명했다. 강 대표는 "오늘 있었던 일은 과거에 정말 볼 수 없었던 폭압적인 날치기" "여야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뒤통수를 치니 그런 상대방과는 일할 수 없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격앙된 감정을 감추지 않았다.

    강 대표는 "앞으로의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사학법 무효와 헌정파괴 범국민 규탄대회를 개최하는 등 국민들과 함께 장외투쟁을 포함한 모든 투쟁방안을 강구, 실천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는 사학법 개정안 처리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사학재단과 각종 종교단체, 시민단체 등과 연대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나라당은 10일 대응책 마련을 위한 전략회의를 갖고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정병국 홍보기획본부장과 엄호성 전략기획본부장, 유정복 대표 비서실장 등은 이날 오후 대책회의를 갖고 구체적인 대응책을 논의할 방침이다. 또 본회의 처리 과정에서 제기된 대리투표 논란에 대해서도 국회 사무처와 각 언론사 등의 사진과 비디오를 입수해 판독한 뒤 논란을 쟁점화 시킬 방침도 정했다.

    이계진 대변인은 "실무 당직자들이 모여 향후 대응방안과 프로그램 관련 전략을 짤 계획"이라며 "사학재단이나 종교단체 주최 집회 등에 당이 참여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사학법인이 종교계,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등과 연대해 당초 예고했던 대로 '헌법소원제기' '법률 불복종운동' '내년도 신입생 모집 중지' '학교폐쇄' 등 극단적인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 할 것을 밝힘에 따라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여야의 극한대립은 사회의 양극화를 더욱 부추길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