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북한인권대회 공동대회장인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가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북한을 생각하기만 하면 우리는 항상 괴롭습니다. 불안과 분노, 수치심과 안타까움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아 때로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생각도 하기 싫다는 심리적 기피증에 빠져 들게도 합니다.

    평화적 관계 구축과 궁극적 통일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민족적 대의입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온 세계가 심각한 관심을 표명하며 유엔 총회에서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어도 우리는 정부 차원에서도, 민간 차원에서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공포나 통일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염원이 냉정한 이성적 사고나 도덕적 용기를 압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엔인권선언 57주년 기념일인 10일을 앞두고 각국의 비정부기구(NGO)들이 참여하는 ‘북한 인권 국제대회’(8∼10일)가 서울에서 열립니다. 이는 북한 인권 상황이 이제는 같은 인간이면 누구도 묵과할 수 없는 열악한 지경에 이르렀고 그 사실을 우리보다 앞서 남들이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은 핏줄로 얽혀 있고 밖의 세계에서 ‘코리안’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정치수용소에서뿐 아니라 일상적 삶에서도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사람으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있다 함이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데, 우리만 그것을 외면한다는 것은 민주사회 시민으로서나 민족으로서나 자의식과 자긍심을 포기하는 일입니다.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해 우리가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가 죄 없는 죄인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회의의 근본적 취지는 북한 동포들의 삶의 실상을 북한 돕기 운동에 오래 종사해 온 사람들, 국제적 인권 전문가들, 그리고 탈북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종합적으로 파악하고 불쌍한 동포들을 돕기 위한 대책 마련에 국민의 지혜와 용기를 모으자는 데 있지 어느 누구를 규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북핵 문제 해결에 장애가 될 뿐 아니라 통일 논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군사력을 가진 독재정권에 대항해서는 민주화 투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가 될 것이며, 통일의 궁극적 목적은 겨레가 인간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자는 데 있지 통일이라는 형식적 성과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님을 잊어버린 이야기입니다. 북핵이 걱정되어 국민 모두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면 우리가 이미 북한의 포로가 되어 있음을 인정하는 꼴일 것이며 통일 논의 자체가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이번 북한 인권 국제대회는 사실 국제사회에서 이미 시작된 논의를 우리 NGO들이 이어받아 주관한다는 면에서 뒤늦은 감이 없지 않고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북한 인권에 관한 세계의 논의는 우리의 참여 없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이 문제에 관해 우리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정서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대응책이 마련되도록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북한에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는 북한의 주민들뿐 아니라 우리 국군 포로나 그 자손들, 그리고 납북된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포함되어 있음을 상기한다면 북한 인권 문제는 남에게 맡겨 놓을 일이 결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상황이 어떤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이처럼 여와 야, 보수와 진보, 기득권층과 소외계층, 노년층과 청년층을 가리지 않고 양심과 양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나 국회의 따뜻한 배려와 국민의 폭넓은 동참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