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중앙포럼'란에 에 이 신문 이연홍 논설위원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 여러분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정치는 왜 할까요. 권력을 잡기 위해서지요. 그게 전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은 수단일 뿐입니다. 목표는 무엇을 남기느냐입니다. 그래서 어떤 세상을 만드느냐입니다. 그걸 위해 권력이 필요한 거죠.

    그렇다면 정치인의 명예는 뭘까요. 권력을 잡는 걸까요. 물론 아니지요. 목표에 도달하는 겁니다. 어떤 권력을 창출했느냐지요. 어떤 결과를 도출했느냐입니다.

    묻겠습니다. 만약 권력을 잡지 못했다면요. 정치인의 명예는 없는 걸까요. 권력이 없었으니까요. 결과도 없는 거 아닙니까. 세상을 바꾸지 못한 거지요. 그러니 명예도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이 없어도 명예는 있습니다.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요. 명예를 얻으려면요. 다시 도전할까요. 권력을 잡을 때까지 말입니다. 한 번 정도는 더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이상은 곤란합니다. 세상의 변화를 막는 겁니다. 명예를 더 잃는 거지요. 세상의 장애물이니까요. 물론 특별한 경우도 있었지요. 네 번 만에 권력을 쥐었습니다. 김대중(DJ) 대통령입니다.

    그렇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나도 그럴 거라 생각하면 안 되지요. DJ와 총재님은 다릅니다. 정치 기반이 다릅니다. 환경도 다릅니다. 다시는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명예을 얻으려면요. 세상을 바꾼 명예 말입니다. 권력 없이요. 결국 내가 세상이 되는 겁니다. 변화의 대상이 되는 거지요. 떠나는 겁니다. 아니 떠나주는 겁니다. 그 자체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정계은퇴란 그래야 합니다. 그래서 은퇴도 명예입니다. 고도의 정치행위입니다. 거기서 그쳐선 안 됩니다. 혼자 가지 말아야지요. 데리고 가야 합니다. 변화의 대상들을 말입니다.

    더 있습니다. 다시 오지 않아야지요. 돌아오라 해도 말입니다. 잡아끌어도 버텨야 합니다. 그것이 명예의 완성입니다. 권력을 잡지 못한 정치인의 그것입니다. 실패했지만 성공한 겁니다. 그 명예는 훗날 영향력이 됩니다. 또 다른 정치가 되는 겁니다. 차원이 다른 정치 말이죠. 권력 이상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애석합니다. 그런 분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엔 말입니다. 저는 총재님을 기대했지요. 그럴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실망했습니다. 솔직한 심정입니다. 지난 3년을 돌이켜 보세요. 떠나신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가지 않았습니다. 늘 그 경계선에 계셨습니다. 이쪽만 쳐다보면서요. 불러주길 기다리는 것 같았죠. 최근엔 발을 담가 보시더군요. 뜨거운지 차가운지 알아 보려고요. 어떻습니까. 뜨겁던가요. 아닐 겁니다.

    지금의 이 나라를 어떻게 보시나요. 아마 엉망이라 하실 겁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총재님을 원할까요.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그렇게 보신다면 착시입니다. 세상은 또 다른 변화를 원합니다. 스스로 변하기 때문이지요. 이미 저만치 가 있습니다. 돌아오지 않습니다. 쫓아가지 마십시오.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저 그대로 계십시오. 아니 더 멀리 가십시오. 세상과 반대로 말입니다. 가다 보면 언젠가 만납니다. 한 바퀴 돌아서요. 그때 세상이 주는 선물이 있을 겁니다. 바로 명예입니다. 그걸 택하십시오. 그것이 총재님께 남은 역할입니다. 세상에 주는 총재님의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