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절차 중 행정부 선행 조사… 무죄추정 원칙 흔들사법 확정 전 단죄 논란… 사법독립·권력분립 위배 우려헌정질서 근간 흔들… 헌법상 기본권 침해 논란 확산국방·외교부처까지 조사… 외교 신뢰도 흔들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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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이재명 정부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공직자들의 '내란 가담'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헌법존중 정부혁신 태스크포스(TF)'를 가동했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을 비롯한 비상계엄 관계자들의 내란 혐의가 사법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부가 자체 조사로 단죄하는 것은 헌정 질서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49개 부처 동시 조사… 법정 감독기구 우회·총리실 직접 지휘논란의 중심에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TF'의 권한 구조와 운영 방식이 있다. 국무총리실 주도로 구성된 TF는 대통령 직속기관과 독립기관을 제외한 49개 전체 중앙행정기관을 조사 대상으로 지정했고 군(합동참모본부)과 검찰·경찰, 국무총리실과 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국방부·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 소방청·해경청 등 12개 부처를 집중점검 대상으로 선정했다.총리실 산하 TF가 49개 부처를 직접 점검하고 인사 조치까지 총괄하게 되면, 감사원·인사혁신처·공직자윤리위원회 등 기존 견제 장치가 사실상 무력화된다. 법정 감독기구를 우회한 채 총리실이 직접 조사권을 행사하는 구조는 행정부 내 권력 집중을 넘어, 사법적 절차의 일부를 대체할 소지가 있으며 정권의 정치적 영향력이 행정조사에 직접 투입될 여지를 만든다.◆정부 '내란 청산으로 국정동력 회복' … 李 대통령 "정치보복 안 해"→"특검으론 부족"정부는 이를 질서 있는 내란 청산을 통한 국정동력 회복 차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전날 국무회의에서 TF 제안 배경과 관련해 "현재 내란혐의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내란 극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며 "그 사이에 내란에 가담한 사람이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고, 이런 일들이 결과적으로 공직사회 내부의 반목을 일으키면서 국정 동력을 저하한다는 지적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년 1월까지 신속하고 질서 있게 조사를 마치고, 설 연휴 전에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이 과정에서 공직사회의 동요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고 밝혔다.이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내란에 관한 문제는 특검에만 의존할 일이 아니고, 독자적으로 (조사할) 일"이라며 김 총리의 제안에 공감을 표했다. 또 "특검이 수사를 통해 형사처벌을 하고는 있지만, 내란에 대한 관여 정도에 따라 행정책임을 묻거나 문책이나 인사 조치를 하는 등 낮은 수준의 대응을 해야 할 사안도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번 입장은 제21대 대선 후보 시절 자신이 강조했던 메시지와 상반된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취임 당시 전임 시장 비위와 관련된 공무원들에게 "당신들은 구체제의 피해자"라며 "특별히 일부러 문제 삼지는 않겠다"고 말했다고 대선 유세 과정에서 소개한 바 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일하기에도 시간이 없는데 쓸데없는 정치 보복으로 시간 낭비하면 안 된다"며 전 정부의 주요 공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
- ▲ 헌법재판소. ⓒ뉴데일리 DB
◆무죄추정·사법독립 원칙 흔들 … 영장주의·기본권 침해 논란 확산이 같은 모순은 헌정 질서의 절차적 문제로 이어진다.내란죄의 성립 여부에 대한 특검과 법원의 심리 절차가 진행 중인데 행정부가 '내란가담 공직자'를 자체 조사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사실은 헌정 질서의 절차적 위계를 뒤흔드는 문제이자 '무죄추정의 원칙'(헌법 제27조 제4항)을 행정 편의로 사실상 배제한 선례가 될 수 있다. 즉, TF의 활동은 사법적 판단 이전의 단죄로 비칠 수 있으며, 이는 헌법 제101조가 규정한 사법권 독립과 권력분립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더욱이 TF가 업무용 PC와 서류뿐 아니라 개인 휴대전화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시킨 사실도 논란이 되고 있다. TF는 조사 과정에서 개인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면 직위해제나 수사 의뢰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는데, 이는 행정조사가 사실상 형사절차적 압박 수단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TF가 개인의 통신 내용, 사적 메시지, 위치기록까지 확인한다면 이는 사생활의 비밀과 통신의 자유(제17조·제18조) 등 명백한 기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한편 총리실은 해당 조치가 강제수사에 준하는 포렌식 절차가 아니라 제출된 휴대전화의 통화 기록이나 메시지를 확인하는 수준의 점검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총리실은 12일 밤 보도자료를 내고 "49개 중앙행정기관 감사관실은 감사·감찰 목적의 디지털 포렌식 전문 장비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며 "상기 지침의 디지털 포렌식은 수사기관이 전문장비를 활용하는 엄밀한 의미의 포렌식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상당한 의혹에도 불구 비협조적인 경우 대기발령 또는 직위해제 후 수사의뢰 등도 고려'한다는 지침과 관련해 "수사기관이 수사할 정도의 상당한 의혹이 있음에도 협조하지 않을 경우, 수사의뢰 하고 대기발령이나 직위해제도 고려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이번 조사 대상기관의 TF는 본인의 동의가 없는 경우 어떤 경우에도 조사 대상자의 휴대폰을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그러나 행정조사기본법은 '조사는 행정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총리실이 행정조사 명목으로 전 부처의 전자기기 열람권을 행사한다면, 감사원이나 검찰의 수사보다 폭넓은 조사권이 발생한다. 특히 외교·국방 분야처럼 기밀자료가 포함된 부처의 경우, 정보유출이나 외교적 파장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헌법 전문가인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공무원들도 인권을 가진 국민인데, 이들을 모두 내란 동조자인 것처럼 전제하고 스스로 무죄를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헌정 질서의 기본 원리를 뒤집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휴대전화 자진 제출을 거부하면 징계하겠다는 건 영장도 없이 압수수색을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헌법 제17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헌법 18조가 보장하는 통신의 자유, 제12조 제3항의 영장주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조치"라고 꼬집었다.◆특검 수사·행정조사 중첩 … "명확한 기준 없는 '적폐청산 시즌 2'"특검이 수사 중인 사안을 행정부가 중복 조사하면서, 형사 절차와 행정 조치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내란에 적극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관련이 있으면 모두 정리하겠다는 취지라면, 그것은 특검의 수사와 사법 절차를 거쳐야 처벌받아야 할 문제이지 행정조사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특검이 이미 수사 중인데, 행정부가 별도로 공무원을 조사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며 "결국 '적폐청산 시즌 2'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내란 혐의의 범위가 명확히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가담 행위'를 판단해야 하는 구조는, 공직 내부의 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 정책 결정이나 문서 결재, 보고 행위까지 '가담'으로 오인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어떤 기준으로 '내란에 소극 가담했다'는 식의 판정을 내릴지 '소극 가담'이라는 개념 자체도 불명확하다. 가담했다면 경중을 불문하고 처벌받는 것이 원칙인데, 명확한 기준 없이 이런 식으로 구분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외교·안보 라인까지 조사 대상… 외교 리스크로 이어질수도특히 국방·외교·법무 등 안보 핵심 부처가 조사 대상에 포함된 점은 대외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외교·안보 부처까지 조사 대상에 포함된 것은 단순한 내부 감찰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반의 안정성에 대한 신호로 읽힐 수 있다. 정부의 행정조치가 정치적 의미로 해석되면, 외교 파트너들은 한국의 정책 일관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며 "특히 안보 의사결정 라인에 대한 광범위한 행정조사는 외교 리스크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