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센카쿠·쿠릴 日 영유권 주장 '상호모순'日, 독도 분쟁에 美 관여 기대 불가하자국제사법재판소 회부 위해 '분쟁지역화' 시도한일 ACSA 체결 필요…영토관리 3원칙 합의해야
  • ▲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 개최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22일(현지시간)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 개최지인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나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일본 외무상이 정기국회 연례 외교연설에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억지 주장을 편 지 올해로 11년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의 날'을 제정하고 행사를 개최한 지 10년째다.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의도가 짙게 깔려 있다.

    독도, 센카쿠열도, 쿠릴열도를 대하는 일본의 모순된 논리

    일본은 한국과는 독도, 중국과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러시아와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 4개도)를 놓고 각각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독도를 실효 지배하듯 일본도 센카쿠 열도를 실효 지배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면 센카쿠 열도에 대한 자국의 영유권도 부정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독도와 쿠릴열도를 무력으로 점령하면 센카쿠열도에 대한 중국의 무력점령을 허용하는 빌미를 줄 수 있다. 3개 지역에 대한 일본의 논리는 상호 모순적이지만, 분쟁의 양상은 일본의 국제‧국내 정치적 환경과 이익에 따라 다르게 전개됐다.

    쿠릴열도: 日, 미국의 대소 봉쇄전략 직면…러시아에 '공동경제활동' 제시

    1945년 9월 패전한 일본은 이후 쿠릴열도를 실효 지배하게 된 소련(러시아)에 '2도 우선 반환론'을 제시했다. 쿠릴열도 4개 도서 중 하보마이‧시코탄 2개 도서를 먼저 반환한 뒤 에토로후‧쿠나시리 2개 도서 반환을 협의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일소공동선언' 직전인 1956년 10월 이른바 '댈러스 위협 사건'이 발생했다. 소련 봉쇄전략을 펴오던 미국이 '쿠릴열도 영유권을 소련이 가질 경우 미국은 오키나와를 영구히 보유할 수 있다'고 일본을 압박한 것이다.

    냉전체제 속 일본과 소련의 협상은 이 상태로 교착됐다. 국내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일본은 2도 우선반환론에서 '4도 일괄타결론'으로 회귀했다. 2016년 12월 일본은 4도 반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쿠릴 4개 섬에서의 '공동경제활동'이라는 '새로운 접근법'을 러시아에 제시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에 따르면 일본의 목표는 "공동경제활동 추진과정에서 제기될 제도상 문제를 빌미로 양국 법률과는 다른 특수한 제도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4개 섬을 '특수한 지역'으로 만들어 영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하고, 궁극적으로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가 일본과의 평화조약 협상 재개는 쿠릴열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일본이 추진한 새로운 접근법은 '동상이몽'으로 교착됐다.

    센카쿠 열도: 日, 中 억제 위한 미국의 적극적 개입 유도

    일본은 1895년 센카쿠열도를 무주지로 영토에 복속하고 실효 지배해왔다. 중국이 1971년까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의 영유권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이 일본의 주장이다. 일본과 중국은 1972년 미중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 국교를 정상화하며 센카쿠 영유권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센카쿠열도 분쟁이 재부상한 것은 일본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한 2010년 9월이었다.

    우준희 박사의 '동북아 영토분쟁과 일본의 선택' 논문에 의하면 일본은 미일동맹을 강화하고 미국의 적극적 개입을 유도하는 데 센카쿠를 이용했다. 센카쿠에 대한 중국의 적극적 태도는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지역 해상 활동과 연계되는 만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증폭시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독도: 美, 한미동맹 의식해 독도 국제분쟁화 전략으로 선회

    일본은 2000년대 중후반까지 쿠릴열도와 센카쿠열도와 분쟁을 억제해왔지만 독도에 대해서는 2005년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등 본격적인 분쟁지역화에 나섰다. 일본은 독도 관련 국제 홍보비를 책정하고,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에 대한 억지주장을 무려 11개 언어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반면 쿠릴열도 영유권 주장은 일본어로만 돼 있다. 쿠릴열도나 센카쿠열도 문제와는 달리, 일본은 독도 문제에 있어서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를 기대할 수 없었다. 미국은 일본의 동맹국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동맹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론 센카쿠열도와 쿠릴열도에 비해 자국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독도 문제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국내용 목적도 있었다.
  • ▲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전망대에서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e영상역사관
    ▲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해 전망대에서 해안을 둘러보고 있다. ⓒe영상역사관
    ACSA 체결도 필요하지만…독도 마찰 격화→한일 양국 국익에 악영향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할 것을 한국 정부에 제안해왔다. 그러나 한국 정부로서는 독도가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영토이므로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2012년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광복절을 닷새 앞두고 한국 대통령 최초로 독도를 방문한 것은 좌우 양 진영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친인척 비리 의혹과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체결 추진에 따른 지지율 부진을 타개하고자 '독도 방문 퍼포먼스'를 벌였다는 지적이다. 그 후 반일·반한 감정은 악화했고 당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던 지소미아와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악사) 체결은 결국 무산됐다.

    최근 일본 싱크탱크인 일본국제문제연구소(JIIA)가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악사) 체결을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일 군사·안보협력을 위해서는 한국이 일본을 비롯한 35개국과 체결한 지소미아뿐 아니라 한일 악사도 체결할 필요가 있다. 한국전쟁과 같은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유엔군사령부(유엔사)가 한국의 유엔군사령부를 지원하는 후방기지 역할을 원활히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한국은 미국·태국·뉴질랜드·터키·필리핀·이스라엘·호주·캐나다·싱가포르·인도네시아·캄보디아·스페인·영국·몽골·독일·아랍에미리트(UAE) 등과, 일본은 미국·호주·영국·캐나다·프랑스·인도·독일 등과 악사를 체결했다. 그러나 일본과의 악사 체결 과정은 지소미아 체결 과정보다 국내에서 더 거센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일 관계 전문가인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일 관계에서 독도, 과거사 마찰이 격화되면 될수록 실효성 있는 해법이 제시되기는커녕 양국 간 국민감정의 충돌만을 초래해 양국 관계 전반에 악영향이 파급되는 사태를 막을 수 없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다"고 지적한다.

    이 교수는 2005년 '한일 과거사 갈등의 구조와 해법 모색'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역사 마찰의 발생을 예방적 조치를 통해서 가능한 한 억제하고, 만약 마찰이 불가피하게 발생한 경우에는 마찰이 양국 관계에 가져올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며 "역사 마찰을 합리적으로 관리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 지도자 간의 암묵적인 합의와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 바 있다. 18여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의 지적은 유효하다.

    전문가 "'영토 관리 3원칙' 합의로 영토 마찰 관리" 제언

    이러한 현실에서 한일 정상은 '영토 관리 3원칙'에 합의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박철희 국립외교원장은 과거 한 포럼에서 영유권 분쟁을 해결할 방안으로 ▲서로에 대한 자극적인 언동을 피할 것 ▲상대에게 위기감을 주는 현상 변경을 시도하지 않을 것 ▲위기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진정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할 것 등 '영토 관리 3원칙'을 세워 한일중 3국 정상이 합의할 것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