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 선고 앞두고 무더기 기일 연기유준원·박삼구 선고 줄줄이 지연재판부 변경까지 '시간끌기' 전략 해석도
  • ▲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 ⓒ연합뉴스
    ▲ 유준원 상상인그룹 대표. ⓒ연합뉴스
    오는 19일 법관 인사 이동을 앞두고 이른바 회장님들의 재판 지연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일반인과 달리 기업 총수들의 재판들이 연이어 늦춰지면서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불법대출과 시세조종 의혹 등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유준원 상상인 대표는 지난 1일 변론이 재개되면서 1심 재판부 선고가 연기됐다. 상상인 최대주주인 유 대표는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의 실소유주다.

    유 대표는 지난 2015년 4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9개 코스닥 상장사를 상대로 사실상 고리 담보대출업을 하면서 외관상으로는 합계 623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성공해 투자금을 유치한 것처럼 허위 공시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유 대표에 대한 재판은 수년 동안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지지부진한 상황인데 1심 선고를 코앞에 두고 돌연 변론이 재개되면서 재판이 기약 없이 연기된 것이다.

    유 대표 재판을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는 최근 부장판사가 사직하고 배석판사가 교체되는 등 구성원이 대거 변경될 예정이어서 오는 4월 변론이 재개되더라도 언제 선고가 이뤄질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인은 "(재판을 미루는 것은)판사의 성향이나 재판 진행 과정이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리스크를 줄이려고 할 수도 있고 당장 이벤트를 두고 악재를 피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유 대표를 둘러싼 리스크는 불법대출 의혹뿐만이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019년 상상인그룹의 저축은행들이 영업구역 내 의무대출 비율을 허위로 보고하고 대주주가 전환사채를 저가에 취득할 수 있도록 한 혐의 등을 두고 과징금 15억2100만 원을 부과했다. 유 대표에 대해서도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상상인과 유 대표는 당국의 제재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지만 대법원은 지난해 5월 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금융위는 지난해 8월에는 상상인 계열 2개 저축은행 대주주의 재무상태와 출자능력 등 자격이 충분치 못하다 보고 '대주주 적격성 충족 명령'과 함께 개선을 명령했다. 당국은 같은 해 10월 상상인이 명령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보고 한 달 뒤 상상인 측에 저축은행 지분을 매각해 보유 지분을 10% 이내로 줄이라고 명령했다. 

    상상인은 금융위 처분에 불복해 대주주 적격성 유지 요건 충족 명령 및 주식 처분 명령 취소 소송과 효력 정지를 법원에 신청한 상태다.

    관련 업계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앞으로 진행될 법적 소송들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기존 재판에서 처벌을 받게 될 경우 향후 재판 대응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박삼구 회장 항소심 선고도 연기

    재판이 미뤄진 기업 총수는 비단 유 대표뿐만이 아니다.

    계열사 부당지원과 수천억원대의 횡령 및 배임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에 대한 항소심 선고도 미뤄졌다. 

    서울고법은 항소심이 시작된지 1년4개월여 만인 지난달 25일 선고 공판을 열 예정이었지만 변론 재개가 결정되면서 오는 3월28일부터 재판이 재개될 예정이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22년 8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이후 박 전 회장은 지난해 1월 항소심 도중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 보증금 4억 원과 주거지 변경 시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건으로 석방됐다. 박 전 회장은 지난 2021년 5월에도 구속기소됐다가 만기를 앞두고 11월 보석으로 풀려난 바 있다.

    법원이 박 전 회장 재판과 관련해 변론 재개를 결정하면서 박 전 회장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이어갈 예정이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1945년생으로 78세인 고령의 박 전 회장이 구속을 피하기 위해 재판을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재판부 구성원에 변동이 생기면 새로 꾸려진 재판부는 사건 파악을 위해 공판 갱신 절차 등을 거치기 때문에 선고가 늦어지게 된다"며 "일부 기업 총수들이 재판을 지연시켜 경영상에 미칠 '사법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심리를 충분히 마쳤는데 고의적으로 (재판을)미루는지, 시간이 부족한 것인지 재판부 사정은 알 수 없는 것"이라면서 "심증은 가더라도 말하기 조심스러운 부분"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