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윤 대통령-한 위원장 갈등 국면 관망하며 손익 계산 분주윤-한, 어떤 방법으로 봉합 돼도 "신뢰 회복은 어려울 것" 분위기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 갈등 회자…결말은 대선 패배
  • ▲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22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에서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2022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에서 당시 법무부장관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갈등 양상을 보이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손익 계산에 분주하다. 

    민주당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갈등 국면과 현 상황을 비교하며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23일 뉴데일리와 통화에서 "지금은 우리당에 (윤-한 갈등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하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분명한 것은 과거 정권 내 1인자와 2인자가 충돌했을 때 결과가 좋지 못했다는 것이 당의 걱정이 좀 덜어지는 부분"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의 충돌은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총재와의 갈등과 묘하게 닮았다는 것이 야당 내부의 시선이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정권 출범 이후 대법관이던 이 전 총재를 감사원장으로 기용했다. 이 전 총재는 감사원장으로 재직하며 신군부 집권 시절에 논란이 됐던 국방부 율곡 사업과 평화의댐 감사를 진행하며 '대쪽' 이미지를 얻기 시작했다. 김 전 대통령은 같은해 12월 그를 국무총리에 임명하면서 정권 실세로 떠올랐다. 

    윤 대통령이 사법원수원 부원장이던 한 비대위원장을 법무부 장관으로 파격 발탁한 점과 닮았다. 갈등 양상도 유사하다. 특히 김건희 여사 처리 방안을 두고 양측이 이견을 보이는 상황과 YS의 차남 김현철 씨를 두고 상반된 시각을 보였던 김 전 대통령과 이 전 총재의 모습이 겹친다는 것이 민주당 인사들의 시각이다.
  • ▲ 2011년, 서울 영등포구 63시티 주니퍼홀에서 열린 '황장엽 선생 서거 1주기 추도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추모영상을 보고 있다. ⓒ뉴시스
    ▲ 2011년, 서울 영등포구 63시티 주니퍼홀에서 열린 '황장엽 선생 서거 1주기 추도식'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추모영상을 보고 있다. ⓒ뉴시스
    김 전 대통령과 이 전 총재는 수차례 충돌했다. 두 사람은 서로의 헌법상 권한 행사를 두고 갈등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이 전 총리는 이듬해 4월 "허수아비 총리는 하지 않겠다"면서 자진 사퇴했다. 

    갈등은 이 전 총재가 1997년 여당 대표를 맡으면서도 계속됐다. 핵심에는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 씨가 있었다. 현철 씨의 정치권 진출을 지지하던 김 전 대통령과 이 전 총재는 또 다시 충돌했다. 여기에 현철 씨의 개인 비리 의혹이 나왔고, 이 전 총재는 '엄정 대응' 방침을 세웠다. 현철 씨는 1997년 5월 구속 기소됐고, 1999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을 선고 받았다.  

    민주당은 봉합 과정에서 두 사람이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고 신뢰를 회복할 지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비대위원장이 갈등의 폭을 얼마나 좁히는 지가 당장 오는 4월 총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대통령의 가족을 두고 대립하는 최고 권력자와 실세의 모습은 결국 국민들에게 부정적으로 다가갈 수 밖에 없다"면서 "신뢰가 회복되는 모습을 순간적으로 보일 수는 있어도 정치적 갈등으로 틀어진 (신뢰 회복은) 끝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국민들과 야당의 이목도 이 모습에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이 전 총재의 갈등은 결국 좋지 못한 결말을 맞았다. 김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가 된 이 전 총재를 끝내 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쟁자였던 이인제 전 의원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이 전 의원이 국민신당을 만들어 나가자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신당에 합류하고 나섰다. 1997년 대선은 결국 여권이 분열된 '3자 구도'로 흘러가면서 야당 후보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