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거치지 않아도 합의 효력정지 가능… 부처 의견 종합해 최종 결정軍 "9·19 합의로 취약성 확대… 북한 행동에 대응, 필요한 조치 취할 것"
  •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북한 김정은에게 판문점 회담 기념 메달과 북미정상회담 기념주화를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9월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북한 김정은에게 판문점 회담 기념 메달과 북미정상회담 기념주화를 선물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설정된 한반도 군사분계선(MDL) 인근 해상·공중 완충구역을 대상으로 효력을 정지하기로 결론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14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최근 정부는 MDL 일대에 설정된 지상·해상·공중 완충구역 중에서 해상과 공중을 대상으로 '부분적 효력정지' 방침을 정하고 절차를 밟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정찰위성을 발사할 경우에 대응해 이를 실행에 옮길 것으로 파악됐다.

    국방부는 "9·19 군사합의로 인해 취약성이 확대되고 있어 효력정지의 필요성을 유관부서에 전달한 바 있다"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북한의 행동을 고려하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3차 군사정찰위성 발사를 공언한 만큼, 우리 군도 국가 방위를 위한 해군 함정의 해상기동훈련과 공군의 전투기·헬기·드론 실탄사격 및 전술훈련을 정상적으로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 등은 북한의 핵·미사일 등 군사적 위협이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9·19군사합의가 대북 감시 등 대비태세 유지에 제약을 주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군은 최근 이스라엘을 공습한 하마스의 사례에 주목하면서 북한 역시 '휴일 야간, 대규모 로켓 발사, 패러글라이딩 공중 침투' 등과 같은 하마스식 기습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력이 월등히 앞서는 이스라엘이 정찰·감시에 방심해 큰 피해를 입은 만큼, 한미가 보유한 정찰·감시자산을 적극 활용해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군사합의에 따라 설정된 비행금지구역에서 고정익(전투기)·회전익(헬기)·무인(드론)항공기의 실탄사격 및 전술훈련이 금지되면서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행금지구역은 고정익항공기(전투기)는 MDL 기준으로 동부지역 40㎞(서부 20㎞), 회전익항공기(헬기)는 10㎞, 무인기(드론)는 동부지역 15㎞(서부 10㎞)로 정해져 있다. 접경지역에서 공군 전력은 사실상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의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군사합의 위반 역시 정부의 이번 '부분적 효력정지' 결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2022 국방백서'에 따르면, 북한은 군사합의 이후 약 1년 만인 2019년 11월23일 창린도 일대에서 해상완충구역 내 해안포 사격을 시작으로 지난해 연말까지 17회나 위반했다.

    이 중에는 우리 GP에 총격(2020년 5월3일)을 가하거나, 동해 NLL 이남 해상완충구역 내 미사일 낙탄(2022년 11월2일), 무인기 침투(2022년 12월26일) 등 잘 알려진 사건들도 포함돼 있다.

    신원식 국방부장관은 지난 10월27일 진행된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북한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게 9·19합의를 위반했다"면서 "(군사합의에 포함된) 완충구역 내 북한의 포사격 위반은 110여 회,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조치 위반이 3400여 회, 문수로 따지면 6900문 정도"라고 강조했다.

    9·19군사합의 효력정지는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남북관계법 제23조 제3항에 따른 국회 체결·비준 동의를 받지 않은 남북 합의서이기 때문이다. 유관부처들의 의견을 종합해 정부가 최종 결정하면 된다. 

    9·19군사합의가 위반 시 제약이나 처벌을 하는 '스냅백(Snap back)' 조항이 없다는 명백한 한계가 존재하는 만큼, 일각에서는 무용론까지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역시 우리나라의 이 같은 방침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주한미군을 통해 우리나라와 함께 북한을 감시·정찰하고 있으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연합연습을 실시하는 등 군사합의 부분에서 영향을 받고 있다.

    이에 신 장관은 제55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를 위해 방한한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에게 9·19군사합의의 효력정지 필요성 등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13일 SCM 개최 이후 가진 한미 공동기자회견에서 "9·19군사합의와 관련해 한미 양국이 의견을 나눴고,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나갈 것인지 긴밀하게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편, 2018년 합의한 9·19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남북은 한반도 군사분계선(MDL) 일대 지상·해상·공중 완충구역을 설정하고 각종 군사연습을 중지하기로 했다.

    합의 내용에는 △MDL 5㎞ 이내 포병 사격훈련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전면 중지 △서해 덕적도~북측 초도 수역, 동해 속초시~북측 통천군 수역에서 포사격 및 해상기동훈련 중지 ·해안포·함포 포구 포신 덮개 설치 및 포문 폐쇄 ·MDL 기준으로 비행금지구역 설정 및 고정익·회전익·무인항공기의 실탄사격 및 전술훈련 금지 등이 포함됐다.

    이를 통해 남북은 한반도에서의 군사적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