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의 실체를 밝힌다> 세미나 열려김용삼 "홍범도 논란 발생 이유는 역대 정부 훈장 수훈 기준 잘못 때문"
  • ▲ <홍범도 정체를 밝힌다>세미나ⓒ뉴데일리TV
    ▲ <홍범도 정체를 밝힌다>세미나ⓒ뉴데일리TV
    <홍범도의 실체를 밝힌다>라는 제목의 세미나가 지난달 25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습니다.
    이날 사회자는 류석춘 전 <연세대학교> 교수가 맡았습니다.
    발제자로 나온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홍범도 흉상 철거 및 이전 논란이 발생한 이유는 이승만 정부를 제외한 역대 정부의 건국 훈장 수훈 기준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건국 훈장 수여기준을 자유민주주의 국가 실현이 아니라 국수적 민족주의에 입각한 반일·항일을 원칙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김용삼 대기자는 지난달 13일 서울대 관악 캠퍼스에서 한국학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역사학회 등 51개 역사단체가 기자회견을 열고 발표한 홍범도 흉상 철거 및 이전 반대 성명서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먼저 자유시참변 사망자를 낳은 무장 해제 책임은 고려혁명군 지휘부에 있고, 홍범도는 무장해제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역사단체의 주장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자유시참변 사망자를 낳은 무장해제 책임은 고려혁명군 지휘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독립군을 적군(러시아 총사령관)의 지휘를 받도록 약속한 이동휘 일파에게 돌아가야 한다.
    무장해제라는 굴욕을 참아가면서 자유시로 이동해 온 홍범도 입장에서 오하묵의 자유대대와 박일리야의 사할린 부대 사이의 반목은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
    홍범도는 양파의 갈등을 조정하여 단결을 이루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이런 흔적으로 보아 홍범도는 자유시참변 유혈사태를 우려했던 것은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통합주도권이 적군 산하 편입을 찬성하는 자유대대 쪽으로 넘어가자, 홍범도와 그의 부대가 자유대대 쪽으로 투항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홍범도·최진동·안무·이정천이 이끌고 자유부대로 투항한 부대는 자유시참변이 발생하기 전 고려혁명군정의회에 소속됐다.
    여기서 300명의 병력이 동원돼 적군과 함께 수라세프카 평원을 포위하고 사할린 부대를 공격하여 사살하고, 제야강에 투신하여 죽도록 만들고, 포로로 잡아 벌목장으로 보내 1700명의 한국 독립군을 소멸시킨 것은 여러 저작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역사학회 성명서 주장대로 홍범도가 사할린 부대 토벌에 앞장서지 않고 수수방관했다면, 레닌 정부가 자신들에게 어떤 도움도 주지 않은 인물을 고려혁명군 제1대대장 및 재판위원으로 임명하고, 세계 공산주의를 이끄는 영도자 레닌이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할애해 면담하고, 돈·군복·권총을 선물하고 기념 촬영을 할 정도로 물렁하고 어리숙한 인물이란 말인가?"

    김 대기자는 "홍범도가 빨치산이었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지만, 빨치산은 비정규군으로 일제강점기 독립군이나 의병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더욱이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에서 홍범도가 이끈 빨치산부대는 3.1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부대였으며 독립전쟁의 주역이었다"라는 역사단체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습니다.

    "빨치산의 어원은 러시아의 파르티잔으로 비정규군 유격전 요원을 뜻한다.
    이것은 어원적 차원의 정의고, 한국에서는 주로 남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 무장 유격대를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이 용어를 의병이나 독립군을 지칭할때는 대부분 공산주의 계열에 사용됐다.
    그것이 빨치산의 용례였다는 사실을 역사학회 소속 학자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역사학회는 봉오동·청산리 전투를 거론하면서도 국수적 민족주의 사학자들이 부추겨온 봉오동·청산리 전투가 대승·대첩이라고 주장하지 못하고 있다.
    발제자는 그동안 여러 차례 유튜브 방송이나 칼럼을 통해, 일본 측 사료나 연구 내용을 토대로 하여 봉오동 전투는 한국 독립군의 패전이었고, 청산리 전투는 간도에 출병한 일본군 2만5000명에게 포위된 한국 독립군이 일본군 포위망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충돌이라고 주장해왔다.
    항일 무장 독립운동 역사상 최고의 금자탑으로 자리매김 되어 온 봉오동· 청산리 전투가 일본 측의 문제 제기에 거의 초토화된 실상을 보면, 나머지 독립운동, 무장투쟁의 성과는 더 이상 언급하기조차 민망할 정도라는 사실이 백일 하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 자리를 통해 한국 독립운동사 학계는 전과를 크게 부풀려 전 국민을 기만해온 봉오동·청산리 대승·대첩에 대해 학자적 양심으로 역사적 사실을 밝혀주길 기대한다."

    "일제강점기에 공산주의는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고,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운동 세력은 소련에 기대하는 바가 컸다. 그러기에 이승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통령도 외무차장 이희경을 모스크바에 파견했다. 홍범도는 1922년 모스크바의 원동민족혁명단체회의에 참석하면서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입국 목적과 희망은 고려독립이라고 썼다. 그는 1927년 59세 나이로 소련공산당에 입당했으나 1937년 스탈린에 의해 강제로 이주됐다. 중앙아시아의 척박한 이주지에서 홍범도는 한인사회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버팀목이었다"라는 역사학회의 주장에 대해 김용삼 대기자는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현되면 국가는 자연히 소멸한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국가란 인민을 착취·수탈하는 도구이므로 계급의 원수로 적대한다.
    때문에 진정한 공산주의자라면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실현된 뒤 해체될 국가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투쟁해야 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공산주의자들의 반일 활동은 대부분 노동쟁의, 소작투쟁, 독서회 사건에 집중됐다.
    그들은 항일 독립투쟁이라는 구호 아래 계급해방운동에 전력투구한 것이다.
    1922년 이승만 대통령은 이희경을 임정 전권대표로 임명하여 모스크바에 파견했다.
    그러나 레닌 정부는 임정을 부르주아 정부라고 불신했고, 어떠한 지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임정 전권 대표단은 이동휘 일파와 달리 빈손으로 귀국했다.
    레닌 정부는 공산주의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자금을 지원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홍범도가 1922년 모스크바 입국신고서에 직업은 의병, 입국 목적과 희망은 고려독립이라고 쓴 것에 대해,그것이 홍범도가 한국 독립군을 몰살하는 편에 가담하고 그가 소련공산당에 입당하여 자랑스런 공산주의자가 되고, 소련에 정착하여 그 땅에서 죽음을 맞은 것에 대한 면죄부라도 된다는 뜻인가?"

    김용삼 대기자는 마지막으로 국수적 민족주의에 함몰되면 안되고, 독립운동의 정의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이렇게 힘줘 말했습니다.

    "소련 당국이 내걸었던 '약소민족 해방' 구호는 약소민족을 자신들의 위기 극복에 동원하기 위한 사탕발림 전술 ·전략 가운데 하나였다.
    한국의 독립군들이 소련 공산주의자들의 입 발린 약속을 신뢰한 이유는 마르크스-레닌주의 핵심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학문적 성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율성·홍범도 논란에서 깊게 짚어봐야 하는 점은 한국 사회가 국수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무엇을 위한 독립운동이었던가'를 묻거나 따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독립운동의 정의를 바로잡아야 한다.
    자유·인권·법치에 기반을 둔 자유민주국가 건국에 공헌한 사람에 한해 기념사업을 하고 건국훈장을 수여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어진 토론시간에 나온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 이주천 전 <원광대> 교수, 한민호 <파로호 포럼> 대표도 김용삼 대기자에 동조하며 좌파와 역사 전쟁을 해야 한다고 이렇게 목소리 높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에 대한 온정적인 접근은 항일운동을 빌미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좌익민족주의사관, 다른 백년론과 이어져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거짓과 진실의 전쟁은 대한민국의 숙명이다.
    북한이 해방되기 전까지는 이 역사전쟁이 계속됨을 이해하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국가보안법 상 반국가단체인 북한 공산집단이 미화, 찬양하는 공산주의자 홍범도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무분별하게 떠 받드는 행위는 국가보안법 제7조 위배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 공산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다 희생한 국군장병과 순국 선열 앞에 자유 대한민국은 무슨 낯짝으로 대할 것인가?

    항일운동가의 공산주의 활동을 현재의 관점에서 재단하지 말자고 주문하는 것은 당시 치열했던 노선과 이념 투쟁의 진상을 묻고 가자는 것과 다름 없다.
    그들의 성분과 이념적 성향을 묻지 말고 항일운동 자체를 높이 평가하라며 항일운동을 절대선으로 설정하는데, 이는 한국처럼 공산주의와 대치한 분단국가에서 잘 납득되지 않는다.

    역사전쟁에서 패배하면 치명적이다.
    정부와 시민사회가 힘을 모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진용을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실에 교육문화수석을 부활시킬 것을 제안한다.
    그 아래 교육, 문화비서관, 그리고 교육부와 문체부 장·차관을 제대로 된 사람들로 채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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