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권 때 '적폐청산 광풍'에 쫓겨난 대표적 피해자"'회사가 망해간다'는 후배들 부탁, 거절키 어려웠다"
  • ▲ 고대영 전 KBS 사장. ⓒ이종현 기자
    ▲ 고대영 전 KBS 사장. ⓒ이종현 기자
    제22대 한국방송공사 사장(2015~2018년)을 지낸 고대영 전 사장이 KBS 보궐사장 공모에 지원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번에 선임되는 26대 사장은 해임된 김의철 전 사장의 잔여 임기(~2024년 12월 9일)까지만 KBS 사장직을 맡게 된다.

    고 전 사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방송장악 문건' 여파로 방송계에서 축출됐던 대표적 인사다. 2017년 8월 민주당 전문위원실이 만든 '문건'대로 '공영방송 사장 퇴진 운동'이 거세게 일면서 일순간에 '적폐인사'가 된 고 전 사장은 결국 임기 종료를 10개월 앞두고 해임됐다.

    그러나 지난 6월 문재인 전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종 승소하면서 명예를 회복했다.

    "'원포인트 릴리프' 역할 마다하지 않겠다"


    KBS 수장 자리에 올라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고 전 사장이 다시 도전장을 내민 이유는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몰린 '전 직장'의 상황을 더 이상 두고만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25일 "제26대 KBS 사장 지원에 응모했다"는 입장문을 배포한 고 전 사장은 "이미 한 번 사장을 한 사람이 왜 또 나서냐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봐도 민망한 일"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고 전 사장은 "그럼에도 불고하고 제가 오늘 지원한 이유는 많은 후배들의 요청을 뿌리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며 "몇 달 전부터 많은 후배들이 저에게 다시 사장을 하라는 말을 많이 했다"는 저간의 사정을 밝혔다.

    "저는 여러 차례 단호한 거부의 입장을 밝혔다"며 "5년 간의 해임무효소송에 지쳤고, 이제 저도 손녀 돌봐주고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길 원했다"고 토로한 고 전 사장은 "그런데 최근 들어 후배들의 요청이 더욱 많아지고 더 간곡해졌다. '회사가 망해간다'며 나서달라는 부탁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이사회의 선택을 받아 보기로 했다"고 마음을 돌린 이유를 설명했다.

    이어 "KBS에 당면한 위기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라며 사장 도전에 나선 두 번째 이유를 밝힌 고 전 사장은 "수신료 분리징수가 현실화되기 전인데도 회사는 재정파탄으로 몰리고 있다"며 "수신료 분리징수의 효과가 현실화되면 언제 문을 닫아도 모를 지경"이라고 우려했다.

    고 전 사장은 "KBS는 201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3896억원의 사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제가 취임하기 전 5년 간 1971억원의 사업적자가 발생했고, 제가 해임된 이후 5년 반 동안 2053억원의 사업적자가 발생했다"며 "제가 재임하던 2017년 대규모 이익이 발생한 것은 일부 파업의 영향도 있었만, 파업과 무관한 이익도 절반 정도는 된다"고 주장했다.

    "지금 KBS가 겪는 위기는 시스템적 위기"라며 "저는 시스템적 혁신을 통해 회사의 효율성을 높였다"고 자평한 고 전 사장은 "이전과 위기의 원인과 강도가 같지 않아 저도 장담을 못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 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원포인트 릴리프'의 역할이라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차기 사장 공모 과정서 안타까운 소식 들려"

    고 전 사장은 "셋째, 사장 공모 과정에서 안타까운 소식만 전해저 마음이 괴로웠다"며 "30년 이상을 근무하고 저의 모든 것을 바쳤던 KBS가 이렇게 추락하는 것을 그냥 볼 수는 없었다"고 마지막 지원 동기를 밝혔다.

    고 전 사장은 "저를 사장으로 뽑아달라고 설득하고 호소할 생각이 없다"며 "이렇게 지원서를 내는 것은 저에게 KBS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고, KBS의 위기를 극복할 역량 있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점을 알리고 싶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제가 아니라도 역량있는 분이 사장으로 오신다면 저는 그를 환영할 것"이라고 밝힌 고 전 사장은 "KBS가 작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다시 국가기간방송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로 입장문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