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의 음악이론서 '악서고존' 최초의 해설·비판서기자 출신 저자 "실제에 적용할 수 없는 빗나간 악론"
  • '조선 최고의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집필한 음악이론서 '악서고존(樂書孤存)'을 두고 "음악적으로는 정약용이 틀렸다"며 "음악 실용서로만 본다면 악서고존은 무가치한 저술"이라고 비판하는 발칙한 책이 나왔다.

    '정약용의 음악이론(도서출판 민속원 刊)'은 삼대(三代)부터 근세까지 동아시아의 육률(六律)·오성(五聲)·팔음(八音)을 아우르고 비판하는 정약용 필생의 노작이자 '다산 경학(茶山經學)'의 마침표를 찍는 악률서(樂律書) '악서고존'을 세부 주제별로 해설하고 비판까지 한 책이다.

    저자는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다 '한국음악학'과 '미학' 연구자로 전환한 김세중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객원연구원이다.

    2018년 여름부터 5년 동안 학술회의 한 번과 학술지에 다섯 번, 악서고존을 비판적으로 검토한 연구논문을 발표한 저자는 "기존 '악률론(樂律論)'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은 그 근거가 틀렸거나, 일리가 있더라도 지나친 감이 있다"며 "정약용이 제시한 악률 체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그가 제시한 악기 치수는 감히 말하건대 허무맹랑하다"고 쏘아붙인다.

    정약용, 율려·오음 체계 고안‥ 악기 16종 제원 제안

    전남 강진 유배 시절 원문(한문) 약 9만 3천 자에 이르는 12권짜리 '악서고존'을 펴낸 정약용은 이 책에서 역대 거의 모든 '악률(樂律)' 관련 논의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스스로 악률 체계를 고안하고, 이를 바탕으로 여러 악기의 치수까지 제시했다.

    서경(書經) 이래 청(淸) 초까지 2천 년 넘는 동아시아의 음악 논의를 '악률' 중심으로 총정리한 정약용은 자기 스스로 '율려(律呂)'와 '오음(五音)' 체계를 만들고, 그에 맞춰 16종에 이르는 악기의 제원을 제안했다.

    '악서고존'의 전모가 음악학계와 철학계에 온전히 알려진 적은 없었고, '실학자' 정약용이라는 후광 때문에 '악서고존이 역대 음악의 제도를 치밀하게 고증하고 과학적으로 비판해 오류를 바로잡았다'는 막연한 인식이 한국음악학계에 퍼져 있었다.

    그러나 저자는 '악서고존'이 음악적으로는 틀렸다는 것은 1990년대 초부터 음악학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고 말한다.

    급기야 철학 연구자들로부터 "음악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틀렸다는 것인가?"라는 공개질문이 제기됐고, 그에 답하기 위해 5년간 연구 끝에 이 책을 썼다고 저자는 밝힌다.

    "정약용의 악기들, 그가 의도한 소리 낼 수 없어"


    음악적으론 정약용이 틀렸다고 단언한 저자는 "우선 '악서고존'은 그저 음악의 여러 이론을 총망라한 책이 아니라, 철저하게 음악의 표준 음높이인 '육률(실제는 십이율려를 통칭)', 상대 음높이인 '오성(五聲, 오음)', 이 소리들을 실현할 악기인 '팔음'에 집중한 저술"이라고 강조한다.

    저술의 체계도 먼저 정약용 자신의 음악이론적 전제들을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2천 년 악률론을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스스로 새로운 악률 체계를 고안하고, 이를 악기 제원과 치수에 적용하는 순서로 치밀하게 구성됐다는 것이다.

    원저에 없는 도해와 쪽악보를 보충해 가며 이상을 소개하고 정리한 저자는 "정약용의 악기들은 그가 의도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객관적 사실부터 출발해, 기존 악률론들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과 그가 세운 전제들은 타당한가를 '아래로부터' 비판해 나간다.

    결론적으로 "'악서고존'은 '음양(陰陽)과 삼천양지(參天兩地, 하늘은 3, 땅은 2)와 구구 팔십일'이라는 단 하나의 원리 위에 악률론을 구축하려는 형이상학적 저술이며, 음악 실제에 전혀 적용할 수 없는, 빗나간 '위로부터의' 악론(樂論)"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 대신 '악서고존'을 표면만 보고 음악이론서라고만 여길 것이 아니라, 음양의 역학(易學) 저술을 겸하는 것으로 보고, 다산 경학이라는 더 큰 틀 안에 자리매김할 것을 다시 철학 연구자들에게 역제안한다.

    성리학의 태두 주자(주희)가 전통 악률론을 폭넓게 받아들였는데도 그를 '내 편'으로 여겨 비판하지 않은 점, 명(明) 주재육(朱載堉)이 세계 최초로 고안한 평균율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점, 거문고를 비롯한 동시대 조선 음악에 대한 철저한 무시와 비하로 일관한 점 등, 정약용의 저술 태도에 대한 비판도 눈길을 끈다.

    그래도 '악서고존'을 읽어야 하는 이유

    하지만 앞서 간 어떤 학자의 저술 하나가 틀렸다는 이야기를 위해 책 한 권을 쓸 가치가 있을까? 정약용이라면, 더구나 '악서고존'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청 초까지 중국 역대 악률 이론이 그 한계와 함께 '악서고존' 한 권에 총망라되다시피 했다"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서다. 저자는 '악서고존' 전문 완역과 함께 해설과 비판을 조목조목 제공하는 가칭 '악서고존 평석'을 준비 중이다.

    당장 해설서로서 쓰임을 높이기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530쪽 분량의 '악서고존' 필사본을 축소 영인하고 처음으로 쪽마다 번호를 달아 책 부록으로 실었다. 'C D E'와 '도레미'만 이해하면 따라잡을 수 있도록, 책 단계별로 전통 악률이론을 쪽악보와 계산식 등과 함께 해설했다. 정약용이 글로만 서술한 악기 치수가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주요 악기의 개념도를 그려 치수와 함께 제시했다.

    ◆ 저자 소개

    지은이 김세중(金世仲)은 서울대학교 공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음악과(이론전공) 석사과정을 중퇴했다. 조선일보 생활부, 편집부 기자를 하다 학교로 돌아와 국악이론전공으로 음악학석사학위를 받고 협동과정한국음악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9년 전업강사 생활을 시작했고 현재 서울대 동양음악연구소 객원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단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정간보로 읽는 옛 노래(2005)', '두길 천자문(2023)', 논문으로 '미완의 르네상스(1999)', '가곡과 시조창의 노랫말 공유 경위 가설(2022)', '정약용 악서고존의 음악이론적 쟁점(2022)'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