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시진핑 역사관이 중국 역사관 지배해""중화제국 대외관계 근간은 종번… 강압·무력행위 정당성 부여 우려""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 시진핑 역사관, 국정교과서 왜곡에서도 드러나
  • ▲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 2017년 11월 11일 오후(현지시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의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문재인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 2017년 11월 11일 오후(현지시각)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린 베트남 다낭의 한 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그릇된 역사관은 중국 대외관계의 오랜 근간이었던 '가부장적 종번(宗藩·조공 및 책봉)관계'에 근거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중국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현재에도 주변국과의 관계를 동등한 국가 대(對) 국가가 아닌 '종주국(宗主國) 대 번속국(藩屬國)', 가부장적인 '대국 대 소국' 위계성에 기초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상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겸 차이나랩 대표는 최근 '왜 한국을 중국 일부라 했나…이제야 드러났다, 시진핑 속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지도자 임기 제한을 없애고 '유일한 존엄'이 된 시진핑의 역사관은 중국의 역사관을 지배한다"며 "중국과 조공책봉(朝貢冊封)의 관계를 가진 주변 국가들을 중국의 일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이 보도는 '로마제국의 부(富)의 교환을 뜻하는 조공(tributary)을 통해 중국의 대외관계를 설명하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쑹녠선(宋念申) 칭화대학 교수의 의견을 인용하며, 조공체제 대신 종번체제란 용어를 쓰자는 움직임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중국 학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유 대표가 쑹녠선과 함께 언급한 왕위안충(王元崇) 미 델라웨어대학 교수는 역사성을 지닌 종번체제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를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종(宗)은 천자(天子)를, 번(藩)은 번봉(藩封)을 받은 혈연관계의 황실 구성원을 뜻하는 종번관계가 황제와 중원 왕조에 조공하는 국가 간의 군신 관계로 확대됐다는 게 왕위안충의 설명이다.

    유 대표는 "왕위안충의 설명대로라면 중화제국의 대외관계 근간은 종번이 된다. 그리고 그 규범은 서주 시대 혈연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가부장적 성격을 띤다. 가부장성을 지닌 종번관계는 혈연에 기초하기에 중국이 주변에 행한 강압적 혹은 무력적 행위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줄 가능성이 있다"며 "이게 단순 기우만은 아니다. 시진핑의 강력한 드라이브에 힘입어 개정된 역사 교과서에 종번관계 용어가 등장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중국 국정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실 제공
    ▲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중국 국정교과서의 한국사 왜곡을 지적했다. ⓒ조경태 의원실 제공
    중국 국정 역사교과서인 '중외역사강요'(中外歷史綱要)는 중국사를 다룬 상권(2019년 8월 발간)과 세계사를 서술한 하권(2020년 2월 발간)으로 구성된다.

    이 교과서는 "경제문화 발전 정도의 차이로 인해 명·청(明·淸) 시기 중국과 주변의 일부 국가들 간에 종번관계라는 일종의 국가관계 체계가 형성됐다. 일부 주변 국가는 명·청의 조정에 공물을 바치며 신하를 칭했고(納貢稱臣), 명·청의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으며 명·청 황제의 연호(年號)를 사용했다. 종주국(宗主國)은 번속국(藩屬國)의 내정에 간섭하지 않았다"며 조선과의 관계를 '종번관계'로 설명한다.

    이어 "이러한 관계는 무력을 통해 형성된 게 아니다. 조선과 유구(琉球, 오키나와), 베트남, 미얀마 등의 나라는 모두 중국과 이러한 관계를 맺었다. 1879년 일본이 유구를 합병한 것을 시작으로 이러한 종번관계는 점차 해체됐다"고 기술한다. 손성욱 선문대 역사영상콘텐츠학부 교수가 '중국이 주변국과의 전통 관계를 가부장적인 대국과 소국의 위계성으로 이해해 현실 문제에 투영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유 대표는 "국가의 의지와 사회주의 핵심 가치를 기초교육 단계에서 체현한 것으로…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중국몽의 실현 등 시진핑의 역사 이념을 직접적으로 반영"해 역사 교과서를 만들었다는 주 편집자인 장하이펑(張海鵬)의 의견에 주목했다.

    결국 이 국정교과서는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鄧小平) 이론, 장쩌민(江澤民)의 3개 대표 중요 사상, 후진타오(胡錦濤)의 과학발전관, 시진핑 신시대중국특색사회주의 사상 등 소위 중국의 '학문적 권위'에 근거해 중국공산당과 시진핑의 입장과 필요에 따라 쓰인 것이다.

    유 대표는 "다른 건 차치하고 우리와 관련된 걸 보면 우려되는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다"라며 "중국사를 서술한 상권의 경우 서한(西漢) 시대부터 원(元)나라 말기까지 수록된 강역도(疆域圖) 12장 가운데 9장에서 북한 지역의 일부 또는 전부를 중국의 영역으로 표시했다. 발해의 경우엔 말갈족이 세운 국가로, 중국사의 일부로 서술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 대표는 "(세계사를 다룬 하권에선) 마치 한국의 역사가 신라 통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처럼 서술되고 있다. '한국 고대사 패싱'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시진핑 집권 이후 나온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의 고대 역사는 사라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지난해 중국 국가박물관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이 제공한 '한국사 연표' 중 일부 내용을 왜 마음대로 삭제했는지를 알려준다"며 중국 국가박물관이 지난해 7월 베이징에서 개최한 '동방길금(東方吉金), 한·중·일 고대 청동기유물전' 행사에서 '기원전 2333년 고조선 건국, 기원전 37년 고구려 건국, 698년 발해 건국'으로 표기한 한국사 연표에서 고조선 존속 기간을 '?~108 B.C.'로 고치고 고구려와 발해를 아예 뺐다고 덧붙였다.

    유 대표는 "중국의 국력이 급격히 신장하며 중국의 눈높이와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와 같은 지극히 비(非)역사적인 발언이 나오기에 이르렀다"며 "한·중 역사 전쟁은 그리 쉬이 끝날 것 같지 않은 모양새다"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