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찬,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통해 사퇴 종용"스스로 판단할 능력 없으면 국방 장관 자리에서 퇴진해야" 비난'이승만기념관' 건립 관련해 박민식 장관과 이견으로 대립하기도
  •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8.9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8.9 ⓒ연합뉴스
    김대중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 광복회장이 국가보훈부에 이어 국방부와 마찰을 빚고 있다. 이 회장은 이번에는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자리에서 퇴진하라"고 요구했다. 연일 윤석열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논란을 키우고 있는 모습이다.

    이 회장은 지난 27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최근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된 독립전쟁의 영웅들의 흉상을 제거하기로 귀하가 방침을 결정한 데 대해 몇 가지 충고를 드린다"며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 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이라고 지적했다.

    육사는 지난해 11월부터 교내 기념물 재정비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김좌진·홍범도·지청천·이범석·이회영 선생 등 5개 흉상을 교내 다른 공원 또는 독립기념관 등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범도 장군의 1927년 소련 공산당 입당 전력이 가장 큰 논란이다. 이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서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하느냐는 문제가 제기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회장은 "흉상으로 모신 다섯 분은 우리 독립전쟁의 영웅들"이라며 "귀하(이종섭)가 표현한 대로 '국난 극복의 역사로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분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독립영웅 다섯 분의 흉상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백선엽 장군이나 그런 류의 장군의 흉상으로 대치한다면 우리는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분(백선엽)은 당초 군인의 길을 선택한 것이 애국적인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백 장군이 "일신의 출세와 영달을 위해 일제에 충성하는 길도 마다하지 않고 선택했다"며 "운좋게 민족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는 기회를 틈타 행로를 바꾸고 무공도 세웠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귀하(이종섭)가 반역사적인 결정을 한다면 나와 우리 광복회는 그대로 좌시할 수 없다"며 "이런 민족적 양심을 저버린 귀하는 어느 나라 국방 장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질타했다.

    이 회장은 "스스로 판단할 능력이 없으면 국방 장관 자리에서 퇴진하는 것이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길임을 충고하는 바"라고 글을 맺었다.

    이 회장은 최근 이승만기념관 건립과 관련해 "이승만기념관은 괴물기념관"이라는 망언을 하는 등 보훈부와도 갈등을 빚은 바 있다.

    지난 3일 광복회관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체성 선포식'에서 이 회장은 "대한민국이 1948년에 건국됐다면, 이것은 일본 식의 이야기"라며 "이런 사실을 알고도 주장을 했다면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신종 친일파 민족반역자"라고 언급했다.

    사전에 공개된 인사말에서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을 기화로 또다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신격화해 '독재하는 왕이나 다름없는 대통령'과 같은 모습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지적한 이 회장은 "이런 괴물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우리 광복회는 반대할 것임을 분명하게 말씀드린다"고도 강조했다.

    이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은 국민의 당연한 의무"라고 공언한 박민식 보훈부 장관의 견해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견해다. 보훈단체가 보훈부 지원사업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공공연하게 반대 견해를 밝힌 것이다. 나아가 광복회 회원들이 박 장관 해임을 요구하는 집단서명에 돌입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제78주년 광복절(75주년 건국절)을 맞아 지난 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운동 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 회장에게 이승만대통령기념관 건립사업을 도와 달라는 뜻을 전했고, 이 회장이 "적극 돕겠다"고 답하면서 보훈부와 보훈단체 간 갈등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 회장이 이번에는 국방부를 향해 칼날을 들이대면서 연일 윤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는 모양새다. 

    이 회장은 4선 국회의원(민주정의당 3선, 민주자유당 1선)이자, 김대중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는 사촌지간이다. 윤 대통령의 죽마고우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부친으로 알려져 있다.

    홍범도 흉상과 관련, 국방부는 28일 오후 6시쯤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국방부 입장'을 발표했다.

    국방부는 먼저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등 논란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육사에, 더욱이 사관생도 교육의 상징적 건물인 충무관 중앙현관에 있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논란이 있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18년 흉상 설치 당시부터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음에도 충분한 공감대 형성 없이 강행돼 현재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의 독립운동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소련 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레닌으로부터 권총과 상금 등을 수여받은 점 등을 언급하며 교육기관인 육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인물로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국방부는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갔다"며 "홍범도 장군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기간이 1919~1922년으로 기록돼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 참가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국방부는 "아쉽게도 일각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이념전쟁과 친일행각으로 부추겨 정치 쟁점화시키고 있는 현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육사에서 육사의 정체성에 부합하도록 생도교육을 위한 최선의 방안을 수립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전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공개 서한을 보내 언론의 주목을 끄는 것은 왠지 구태 정치인 모습 같아 참으로 씁쓸하다"며 "대한민국 정체성을 저버린 광복회장이야말로 판단하실 능력이 없으시면 즉각 사퇴하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