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알바니아 공개회의 요청… 절차투표 없이 성사한미일 등 52개국·EU, 회의 '빈손' 종료에 별도성명 발표
  • ▲ 지난 2022년 1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 지난 2022년 11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와 관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6년 만에 개최한 북한 인권 공개회의는 대북 규탄 성명이나 추가 제재 결의안 채택 등 공식 대응 없이 '빈손'으로 끝났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 이사국은 불법 무기개발로 이어지고 있는 북한의 인권유린을 규탄했다.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이날 회의에서 "여전히 안보리는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국가가 자행하는 인권 유린을 포함해 여러 인권 침해에 침묵하고 있다"면서 "북한 인권 문제는 안보리가 주목해야 할 국제 평화 및 안보 이슈에 해당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 정권의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사회통제, 인권과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부정은 북한 정권이 대중의 반대 없이 불법적인 대량살상무기(WMD)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막대한 공공 자원을 투입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며 "안보리 결의를 여러 차례 위반한 바 있는 이 '전쟁 기계'는 억압과 잔혹함으로 힘을 키워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무대책은 용납할 수 없다"며 "특히 약 10년 전 북한 정권에 의한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잔인한 인권 침해'를 밝힌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가 나온 이후에도 북한 내 인권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황준국 유엔 주재 한국 대사는 "북한 정부의 인권 유린은 북한 주민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의 중대한 국가안보 문제"라며 "북한 인권과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매우 실질적으로 서로 얽혀 있다"고 꼬집었다.

    황 대사는 "자원을 전용하고 자국민의 안녕을 희생하면서까지 대량살상무기에 집중하는 것은 모든 정치적 반대를 짓밟는 국가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감시 아래 이뤄지는 국내외 강제노동은 북한 정권의 불법 무기 프로그램의 주요 자금원 중 하나"라며 "인권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면 핵 문제 해결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시카네 기미히로 유엔 주재 일본 대사는 "인권 침해 문제가 국제 평화 및 안보 문제와 얽혀 있는 것은 북한보다 더 분명한 사례가 없을 것"이며 "국제 납치 행위는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고 시민의 안녕과 안전을 위태롭게 함으로써 국제사회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했다.

    한미일과 함께 이날 북한 인권 문제 안건을 공동 발의한 알바니아의 페리트 호자 대사는 자신도 북한 정권과 같은 통치 체제 아래에서 살았다고 소회를 밝히면서 "북한 정권은 반복되는 국제법 위반과 인권 침해 행위에 대해 방어만 할 게 아니라 책임을 져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북한 측 대표는 불참한 가운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안보리에서 인권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며 대북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겅솽 주유엔 중국 부대사는 발언을 신청해 "유엔 안보리의 주요 책임은 인권 문제 해결이 아니라 국제 평화와 안보 유지"이며 "북한의 인권 상황은 국제 평화와 안보에 위협을 제기하지 않는다"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했다.

    드미트리 폴랸스키 러시아 차석대사는 "북한에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이라며 "미국과 일본,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과 미국, 일본, 알바니아의 요청으로 소집된 이번 회의에서 북한 인권 안건은 절차투표 없이 곧바로 의제로 채택됐다. 회의 개최에 필요한 9개국 이상의 찬성표가 확보되면서, 안보리의 북한 인권 관련 공개회의 개최에 반대해온 중국과 러시아는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았다.
  • ▲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공개토의에서 탈북민 김일혁씨가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 17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개최한 북한인권 공개토의에서 탈북민 김일혁씨가 발언하고 있다. ⓒAP/뉴시스
    시민사회 대표로 참석한 탈북민 김일혁씨는 "북한 정부는 우리의 피와 땀을 지도층을 위한 사치품으로 바꾸고 우리의 고역을 미사일로 날려버린다"며 "북한이 미사일 단 한 발에 사용하는 돈으로 우리를 세 달간 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부는 이를 신경 쓰지 않고, 권력 유지와 핵무기 개발과 이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한 선전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한국어로 "독재는 영원할 수 없다. 더 이상 죄를 짓지 말고 이제라도 인간다운 행동을 하시기 바란다. 우리 북한 사람들도 인간다운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들이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안보리 회의가 '빈손'으로 종료되자 한미일 등 52개국과 유럽연합(EU)은 유엔본부에서 열린 약식 회견에서 별도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해 안보리의 관심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