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외교전문가, 학술회의서 "중·러 정보심리전 경계해야""中,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사회를 '자국 이익 극대화'에 악용""중국 해상민병대, 서해에서 어업활동 하며 韓 감시정찰 중"자유무역·교류 강조하는 중국의 이면… "韓 공작 여지 키워""러시아도 문제 심각… 미국 대선 개입에 反이민자 선동까지""공작 인지할 땐 늦어…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 개정안 폐지해야"
  • ▲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지난 2022년 2월 21일로 50주년을 맞았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중국 전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지난 2022년 2월 21일로 50주년을 맞았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전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마오쩌둥 중국 전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AP/뉴시스
    "한국은 권위주의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s) 대응전략'을 개발하고 주도해 나가야 한다."

    허버트 레이먼드 맥마스터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전체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공작 실태 및 우리의 현실'을 주제로 열린 '한국세계지역학회 춘계학술회의' 화상 축사에서 "중국·러시아와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은 사이버 캠페인 등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영향력 공작을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 국무부 대북특사도 축사에서 "중국의 정치전(政治戰) 측면의 영향력 공작은 통일전선(통전) 공작과 중국 공산당(중공)의 선전선동부(중앙선전부와 중앙통전부 등)·대외연락부를 통해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며 "다가오는 미국 대선의 결과에도 영향력을 미치고자 이런 정보를 활용할 것이 우려되는 바, 미국은 이를 매우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회색지대전략'이라고도 불리는 영향력 공작은 군사와 비군사, 평화와 전쟁 사이의 모호한 영역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상대방의 대응을 곤란하게 하고 자신의 정치·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전술이다. 중국 공산당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펼치고 있는 무제한전쟁(초한전) 전술의 하나이기도 하다.
  • ▲ 지난 2012년 9월 16일 중국 저장(浙江)성 샹산(象山)의 스푸(石浦)항에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향해 어선들이 출항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 지난 2012년 9월 16일 중국 저장(浙江)성 샹산(象山)의 스푸(石浦)항에서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향해 어선들이 출항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뉴시스
    서해상 중국 해상민병대도 '영향력 공작' 사례… "어업 하며 한국 감시정찰 중"

    이지용 계명대 인문국제대학 교수(전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영향력 공작은 중국이 한국의 서해와 남해,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대만과 일본·미국 등을 상대로 전개하는 주요 전술"이라며 "중국은 남중국해 해권을 장악하기 위해 군사와 비군사의 모호한 공간을 '살라미 전술'로 파고들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중공 영향력 공작 사례로 ▲민간 어민을 해상민병으로 조직해 실질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동원함으로써 목표지역을 실질적으로 장악한 것 ▲공해(公海)에 인공섬을 조성한 뒤 군사기지로 변경하고 중국의 영해(領海)라고 선포한 것 ▲과학, 어로, 통상 등의 명목으로 해양조사선이나 어선·상선·풍선 등을 동원해 상대국의 군사적 대응을 어렵게 만들면서 해당 목표지역을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점차 자신의 국제법적 지위를 주장하는 것 등을 제시했다.

    이어 이 교수는 "중국에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와 같은 '순수 민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민은 모두 해상민병 조직으로 '준(準)군사조직'에 소속돼 한국 서해·남해 어로와 함께 감시, 정찰, 해안선정보, 해경 및 해군 대응력 테스트 등 실질적인 감시정찰과 정보수집에 중공·인민해방군 지시가 있을 시 동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규 한국국방외교협회 중국센터장도 "서해의 중국 해상민병대는 평시에 어업활동을 하다가 유사시에 군인처럼 동원된다"고 설명했다. 

    조 센터장은 "평시에 어업활동과 감시·정찰·첩보수집활동을 동시에 수행하며 위법과 준법의 경계를 오가는 이들의 행동을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는 틀이 별로 없어서 단속하기가 굉장히 힘들다"며 "이어도가 한중 분쟁수역으로 떠오를 때 가장 먼저 전선에 나설 사람들이 중국 해상민병대"라고 말했다.

    "중국, 국제사회의 자유롭고 개방된 특성을 '자국 이익 극대화'에 악용(惡用)"

    한국세계지역학회장을 맡고 있는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는 "미국·호주·캐나다·유럽 등의 선진국에서는 중국·러시아 등의 영향력 공작을 파헤치는 학술논의를 넘어 단행본 출간과 입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오늘 학술회의가 첫 번째 시도"라고 말했다. 

    주 교수의 언급대로 실제로 중국·러시아의 영향력 공작에 대한 국내적 관심과 경각심은 태부족이다. 주 교수는 "중국이 국제사회와 미국사회의 '자유롭고 개방된 특성'을 '자국만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악용(惡用)해왔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때 국제사회와 약속한 시장 개방 확대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채 개발도상국 지위까지 누리며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를 패권 장악 수단으로 삼아 영향력 공작을 벌여왔고, 영향력 공작은 자유무역과 다자주의라는 미명하에 전세계를 대상으로 별다른 제약 없이 광범위하게 전개돼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1970년대 미·중 관계 정상화를 주도했던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이 국제사회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중국을 두고 1994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가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고 뒤늦게 자조적으로 회고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30년대 이후 미국 외교정책의 최악의 실패 사례는 중국과 관련한 오산(誤算)"이라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평가 역시 닉슨의 회고와 비슷한 맥락에서 나왔다.

    "중국, 자유무역·교류 강조하며 韓 영향력 공작 공간 키우고 있다"

    중국의 영향력 공작을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뒤늦게 자각하게 된 이유는 북한과 중국이 처한 '환경'의 차이를 살펴보면 더욱 명료하다. 

    김진하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이 우리한테 영향력 공작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북한이 우리한테 영향력 공작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은 한국의 자유주의 또는 국제주의를 굉장히 많이 활용한다"며 "중국은 한국이 좀 더 개방화하고 자유무역, 정보와 인적교류를 더 활발히 할수록 영향력 공작을 할 여지가 커지기 때문에 자유무역과 교류를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한국의 민족주의·순혈주의 정서를 활용한다"고 짚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영향력 공작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잘 알려진, 상대국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취약지점을 파악하는 작업부터 착수한다"며 "다원화된 한국사회에는 계급과 계층 이외에도 지역, 세대, 성별, 종교, 교육수준, 취미 및 기호집단(팬카페 등) 세력 간 잠재적 갈등 전선 형성이 가능하다. 정부 조직과 제도에 대한 총체적 불신을 초래하기 위해서는 사회의 다양한 균열 요소를 총동원(반일·탄핵 등)해야 하지만, 특정 정책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위해서는 직접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공작에 집중한다"고 분석했다.
  •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9월 6일(현지시간) '보스토크-2022' 연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AP/뉴시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022년 9월 6일(현지시간) '보스토크-2022' 연합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AP/뉴시스
    "영향력 공작 결말은 군사행동 조지아 침공, 크림반도 합병, 우크라戰"

    전체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공작은 최종 국면에서 무력 동원으로 귀결된다. 러시아의 2008년 조지아 침공,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22년 우크라이나전쟁이 그 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는 중국 손자병법(孫子兵法)을 현대전 차원에서 다시 쓴 중국 인민해방군의 초한전을 두고 전문가들이 경종을 울리는 이유다.

    신범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현대전은 재래식 전력뿐 아니라 사이버공격, 심리전 등을 동원하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바탕으로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신 교수는 이어 "하이브리드 전술은 전면적 공격을 통해 상대방을 패배시키기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비전통·비대칭·간접 군사활동에 치중하고 여론 조작을 비롯해 심리전·정보전·사이버전 등의 각종 전략·전술을 동원해 혼란과 불안정을 초래하고 다양한 에이전트를 통한 대리전(proxy war)을 진행하면서, 분쟁 최종 국면에서 군사행동을 펼친다"고 분석했다. 

    신 교수는 "2014년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을 위해 친(親)러시아 매체를 동원해 '크림반도를 분리해야 한다'는 선전전부터 시작했다. 여론이 무르익자 러시아가 배후조종하는 민간 무장단체들을 투입한 뒤 매수한 정치인·관료 등을 앞세워 군대를 움직이지 않고도 크림반도를 차지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 교수는 "우크라이나전쟁 발발 이전부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주요 시설을 해킹해 데이터를 삭제하기 시작했고, 집단 사이버 공격을 해 우크라이나 정부기관 네트워크를 마비시켰고, 침공 이후에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 위협론' '러시아-우크라이나 하나의 민족론' 등을 통해 러시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미침으로써 여론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인지적 목표를 세웠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미 대선 개입에 '反이민자 선동'… 영국 브렉시트 개입 의혹도"

    전체주의 국가들의 영향력 공작 대상은 이웃 국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신 교수는 "2017년 러시아는 사이버 트롤링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Native_Americans_United_)을 만들고 '미국의 인종차별주의자 여러분, 자동차는 일본산, 맥주는 독일산, 전자제품은 대만산, 패션은 프랑스산, 기름은 사우디아라비아산, 보드카는 러시아산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살고 있는 땅은 내 것이라는 점을 절대 잊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이미지를 공유함으로써 미국 원주민 내에 반(反)이민자 정서를 불러일으켰다"고 조목조목 제시했다.

    신 교수는 "러시아 해킹 단체 'APT29'는 2015년 여름 '스피어피싱'(표적공격) 기법으로 미국 정당 관계자의 계정에 멀웨어(malware)를 심고 정당 내부에서 주고받은 이메일 내용을 들여다봤다. 민주당 경선 관리가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조성한 당내 모의가 구시퍼 2.0(Guccifer 2.0)이라는 해커와 '위키리크스' 등을 통해 폭로됐고, 버니 샌더스 후보 지지자들이 클린턴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어 대선 본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신 교수는 "2016년 러시아어 트위터 계정 15만6252개가 유럽연합(EU)을 비난하고 브렉시트를 부추기는 게시글을 영어로 올렸다. 투표 직전까지 관련 활동이 거의 없던 이 계정들은 '6월23일을 영국의 독립기념일로 만들자'는 등 브렉시트와 관련한 4만8000건의 글을 올렸고, 투표 결과 발표일인 6월24일에도 3만9000건의 글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 ▲ 김진표 국회의장 등 참석 의원들이 지난 2022년 12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한중의원연맹 창립총회 및 창립기념 세미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 공식출범한 한중의원연맹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59명, 국민의힘 의원 35명, 정의당 의원 3명 등 약 100명이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린 반면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뒤늦게 '한미의원연맹' 창설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진표 국회의장 등 참석 의원들이 지난 2022년 12월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한중의원연맹 창립총회 및 창립기념 세미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2일 공식출범한 한중의원연맹에는 더불어민주당 의원 59명, 국민의힘 의원 35명, 정의당 의원 3명 등 약 100명이 창립 멤버로 이름을 올린 반면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이한 올해 뒤늦게 '한미의원연맹' 창설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인지할 땐 늦어… 국정원 대공수사권 박탈하는 '국정원법 개정안' 폐지해야"

    신 교수는 "정보심리전은 보이지 않게 수행되며 우리가 이를 인지했을 때 이미 대다수의 심리는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미 조작돼 상대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기에 유리한 상태가 돼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이러한 진화한 정보심리전 위협에 대비하려면) 긴밀한 한미동맹을 축으로 대북·대중국 인지전 핵심 내러티브 개발과 인지전 전략 개발, 작전능력 함양 등 실제 수행 역량 등을 갖추고  '사이버안보' 관련 법 보완을 비롯한 제정을 더이상 미루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조 센터장도 "국가정보원과 국군 방첩사의 대공수사·방첩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상대 국가 및 정당의 정치 침투 행위 반대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고 대항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영향력 공작하에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침투'에 대해 국민 개개인이 인식하고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국제관계연구실장은 "중국이 최근에 기존 '반(反)간첩법'을 더 강하게 개정했다. 7월1일부터 시행에 들어가는데 현지 기업가·외교관·학자·유학생 등이 위축되고 조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반간첩법도 없고 국가보안법조차 제대로 역량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 돼가는데 올해 말에 국정원 대공수사권이 폐지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 교수는 "중공이 한국에 전개해오고 있는 해외통일전선공작전에 대응하기 위해 법적·제도적·조직적 기반을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며 "한국 국내 친중(親中)단체, 재한(在韓) 중국인 중공 통전조직, 재한 중국인유학생들의 조직적인 국내정치 개입을 차단하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무관용 원칙으로 강력히 처벌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2023년 말에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폐지하는 '국정원법 개정안'은 즉시 폐기돼야 한다"며 "대한민국 자유체제를 사수하는 국정원의 국내 방첩 수사권을 무력화한 것은 '중국과 북한의 침탈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국가자살행위'라는 점을 대한민국 입법부·사법부·행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