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호 교수, 19일 세종연구소 토론회서 한일 원자력협력 강조 "한미 원자력협정 조기 개정해 우라늄 고농축 기술 확보해야" "美日, 1988년 협정 조기개정…韓美 협정 개정 명분 삼아야"
  • ▲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가 19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일 원자력협정 비교 및 시사점'을 주제로 열린 특별정세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섰다. ⓒ세종연구소 제공
    ▲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가 19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일 원자력협정 비교 및 시사점'을 주제로 열린 특별정세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섰다. ⓒ세종연구소 제공

    한국이 북핵 위협에 대응할 '핵잠재력'(nuclear latency)을 확보하려면 현행 '한미(韓美) 원자력협정'을 조기 개정해 우라늄 고농축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권한을 확대하기 위한 '명분'으로 '미일(美日) 원자력협정'을 활용하는 한편, '한일(韓日) 원자력협력체제'를 구축해 한국 원자력활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원자력협정 전문가로 꼽히는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부 교수는 19일 경기도 성남 세종연구소에서 '한미 원자력협정과 미일 원자력협정 비교 및 시사점'을 주제로 열린 특별정세토론회(정성장 세종연 동아시아협력센터장 기획)에서 "북핵 고도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대만을 둘러싼 미중 대립과 갈등 등 악화일로의 한반도 안보상황에서 '핵 비(非)보유'를 전제로 한 핵잠재력 확보를 위해 기초적인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 교수는 "2015년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한국이 사용후핵연료의 건식 재처리(pyroprocessing 기술) '전반부 공정'에 대한 미국의 포괄동의를 얻었고 농축 농도 20% 미만인 '우라늄 저농축'을 미국의 승인을 얻어 추진할 수 있는 경로를 확보하는 데 그치고 있다"며 "우라늄 저농축 기술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조차 빠져 있고 핵잠재력 확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우라늄 고농축과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 등에 대해 여전히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 교수는 "협정 개정과정에서 '한국의 우라늄 고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원칙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온 미국이 한국의 핵잠재력 확보를 승인할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그러나 현행 협정의 유효기간이 만료되는 2035년까지 기다리지 말고 협정을 조기 개정해 우라늄 고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에 대한 한국의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 한미, 미일 원자력협정의 핵잠재력 비교.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보 교수의 발제문
    ▲ 한미, 미일 원자력협정의 핵잠재력 비교. ⓒ전진호 광운대 국제학보 교수의 발제문

    "1988년 美日협정 개정을 韓美협정 조기 개정 명분 삼아야"

    그러면서 전 교수는 1988년에 개정된 미일협정이 한미협정 조기 개정의 명분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찌감치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를 수립했던 일본은 이 개정협정을 통해 ▲고순도 플루토늄을 획득할 수 있는 사용후핵연료 습식 재처리(PUREX 기술)와 ▲20% 미만 우라늄 저농축에 대한 미국의 포괄동의를 얻었을 뿐 아니라 아니라, 미국의 '사전동의' 하에 ▲20% 이상의 우라늄 고농축 ▲플루토늄 저장과 운송 ▲고농축 우라늄 저장까지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처럼 핵연료의 일생을 총칭하는 핵연료주기는 사용후핵연료의 재활용을 위해 핵분열물질인 플루토늄을 분리 처리하지 않고 우라늄과 혼합된 상태로 가공해 재활용하는 일련의 과정을 뜻한다.

    우라늄을 채광해 연료로 만들고 원자로에서 사용하기까지의 과정(우라늄 채광, 정련, 변환·농축, 핵연료제조 등)인 '선행핵연료주기'와 원자로에서 나온 사용후핵연료의 열과 방사능을 감소시켜 자연으로 되돌려보내는 일련의 과정(사용후핵연료의 중간저장, SF처리, 폐기물 밀봉포장, 폐기물 처분 등)인 '후행핵연료주기'로 나뉜다.

    전 교수는 "(외교부가 미국과 협정 개정을 위한 협상에 나섰던 2015년까지도) 한국은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해 명확한 방침이 없었다. 그런데 협상에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결정했고 국가정책이 협상결과를 따라가는 모습이 됐다"고 비판하며 "한국도 핵연료주기를 국가정책 차원에서 확립하고 우라늄 농축이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에 대한 정당한 권한을 미국에 요구한다면 명분이 선다"고 강조했다.

  •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공동기자회견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韓, 2000년 우라늄농축실험에 신뢰저하韓日원자력협력을 '돌파구'로

    그러나 지난 20년간 '핵비확산 모범국가'로 인정받아온 한국에 따라다니는 2000년 '무기급 우라늄 농축실험 파문'이라는 꼬리표는 해결해야 할 문제다. 전 교수는 "2000년에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연구원들이 0.2g의 무기급 우라늄 농축(90%) 실험을 했고, 1982년 미량의 플루토늄 추출실험을 한 것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과정에서 발각됐다"며 "한국은 IAEA의 안전조치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말했다.

    2011년에 발효된 한일 원자력협정에서 한일협력보다는 일본의 원자력 수출통제나 핵확산금지조약(NPT), IAEA 안전조치 등 핵비확산 규제가 강조된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한일협정은 우라늄 고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 등은 '서면 동의' 없이 불가능하고 플루토늄과 관련된 민감한 기술은 이전하지 않는다는 등 핵잠재력 확보와 관련한 핵활동을 대부분 금지했다"며 "우리는 일본 기자재 수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협정을 체결했지만, 일본은 한국에 수출한 기자재와 기술이 핵확산에 이용되거나 북한으로 넘어갈까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국제사회에 우리 원자력 활동의 투명성에 대한 신뢰를 높일 수단으로 한일 원자력협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역으로 제언했다. 이어 "북한의 핵능력이 고도화된 상황에서 일본이 한국과의 협력을 통한 자국의 핵잠재력 확보를 거부할 이유는 없다. 한일 원자력협력을 통해 핵잠재력을 확보하고 미국의 승인을 얻기 위한 한일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한일 원자력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IAEA, 핵공급그룹(NSG) 등 핵비확산 체제와의 협력을 강화하려면 IAEA나 NSG에서 한국보다 더 주도적인 위치에 있는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IAEA와의 안전조치기술 협력, NSG의 수출통제 조치 등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주로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협력을 얻어야 하는 부분이 많지만, 한일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한국과 일본에서 핵추진잠수함이나 핵추진항공모함을 건조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지만, 원자력의 군사적 이용은 양국의 대미(對美) 협정과 한일협정 위반"이라며 "핵추진잠수함에 사용하는 원자로와 고농축우라늄 확보를 위한 한일협력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할 수 있도록 한일협정 개정 역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국은 핵추진잠수함에 사용되는 고농축우라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한국은 러시아와 중국 등으로부터 농축우라늄을 50% 정도 수입하고 있어 대(對)러시아 의존도가 높다. 미국도 과거처럼 충분한 농축우라늄 공급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며 농축우라늄 수입선 다변화와 한일 우라늄 수급 협력체제(공동구매와 상호공급)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 2015년 4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원자력협력 협정 가서명식에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협정에 서명을 하고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 2015년 4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원자력협력 협정 가서명식에서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 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협정에 서명을 하고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일본 후쿠시마 제1원전 오염수' 처리과정을 점검하기 위한 한일 협의를 언급하며 경쟁을 협력저해 요소로 꼽았다. 그는 "한국이 오염수 처리시설을 보겠다고 하니 일본이 못 보게 하는 것은 일본이 개발한 다핵종제거설비(ALPS) 등을 보여줄 수는 없다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원전 수출경쟁이 한일, 한일중 원자력 안전협력을 막고 있었다. 원자로가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공유해야 원자력 안전협력이 큰 틀에서 가능하지만, 과점시장인 원전 수출시장 최일선에서 경쟁하는 3국은 서로 이를 공유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핵잠재력, 핵주권을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로 순화해야"

    한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을 맡고 있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핵잠재력'이나 '핵주권' 등의 용어가 아닌,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와 같은 용어를 써야 한다며 '외교적인 조심성'을 당부했다. 그는 "외교에서는 어떤 용어를 사용하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핵주권이나 핵잠재력,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는 일정 지점까지는 동일한 중간목표를 갖고 있다. 그러나 핵주권이나 핵잠재력과 같은 용어로는 우라늄 고농축이라는 목표까지 가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핵파문' 이후 20년간 한국이 핵비확산 모범국가로서 핵문제를 잘 관리해왔기 때문에 지금와서는 국제사회도 (한국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핵추진잠수함은 핵의 평화적 이용권을 넘어선다. 따라서 핵의 평화적 권리를 우리가 제대로 갖고 있지 못한다는 점을 부각하고 일종의 외교적인 조심성을 살려가며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게 좋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최소한 재처리와 농축은 우리가 핵의 평화적 이용권리를 위해 필요하다는 입장을 정확히 가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장도 "10여년 전쯤 '핵주권'이라는 굉장히 강한 표현이 국내에서 나왔다. 우리가 핵주권을 갖고 있고 우리 주기에 맞게 우리가 핵옵션을 결정한다는 것인데 (미국이) 오히려 한국을 불신하게 만드는 작용을 했다"며 "어떤 것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지를 판단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소장은 "호주가 핵추진잠수함을 얻게 된 것은 결국 미국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국은 '핵주권'이라는 표현을 '농축과 재처리 등 핵무기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으므로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핵주권이라는 표현보다는 '한국의 국익에 맞는 원자력 정책을 추진한다'는 입장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