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국가우주개발국 현지 지도' 이후 공개 행보 없어한미·한일 정상회담에도 무력도발 없이 김여정 성명만 덩그러니전문가 "식량 사정 매우 어려운 北, 모든 업무 모내기로 초점"
  • ▲ 지난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과 그의 딸 김주애. ⓒ연합뉴스
    ▲ 지난 18일 국가우주개발국을 방문한 북한 김정은과 그의 딸 김주애. ⓒ연합뉴스
    '김정은이 사라졌다?'

    15일 노동신문은 농업 관련 기사로 채워졌다. 1면에는 <들끓는 포전에서 작전하고 지휘하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배치됐다. 머리글은 "사회주의 전야가 모내기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였으며 "올해 농사의 운명이 걸린 모내기를 성과적으로 결속해야 김매기를 비롯한 다음 영농공정들을 활기 있게 진척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1면의 옆과 아래로 <전야에 차 넘치는 혁명적 열정과 기백 : 동부지구 농촌들에서> <농촌 당조직들 현장 정치사업 강력히 전개>라는 제목의 농업 관련 기사가 삽입됐다. <안악군 굴산농장에서>라는 농부들이 모내기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도 게시됐다. 

    노동당 총비서인 김정은의 모습은 이날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김정은은 지난 4월19일 1면에 실린 국가우주개발국 시찰 이후 한 달 가까이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등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제작 완료된 군사정찰위성 1호기의 시일 내 발사"를 공언한 김정은은 이날 이후 공개행보를 멈추고 '잠행'에 들어간 모습이다. 

    김정은이 자취를 감춘 동안 윤석열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부르며 한미동맹을 견고히 했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방한해 현충원 앞에서 참배하는 등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지고 있다.

    북한에 충분히 위협적인 상황이었음에도 반응은 미지근했다. 지난 4월28일 '워싱턴선언' 발표 당시 북한은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명의의 성명만 발표했을 뿐 예상됐던 무력도발은 일절 없었다.

    김여정은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늙은이", 윤석열 대통령은 "못난 인간"이라고 표현하면서 비난했다. 지난달 16일 한일 정상회담에 반발해 동해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한 직전 사례와 비교하면 하찮은 수준이다.

    직접 국가우주개발국을 시찰하며 군사정찰위성에 큰 비중을 뒀던 김정은이 돌연 공개 행보를 멈추고 비공개로 돌아선 까닭은 현재 명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북한으로서는 4~5월이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점에서 김정은의 갑작스러운 은둔과 연이은 정상회담에 따른 북한의 미적지근한 대응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시즌 영향이 상당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관측했다. 홍 실장은 "지금이 모내기 시즌이기 때문에 북한은 모든 업무를 모내기 쪽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한미·한일 정상회담에도 특별히 행동으로 반응하지 않은 부분 역시 이 같은 시즌에 좌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심각한 식량문제에 초점을 맞춘 발언이다. 

    미국의소리(VOA)는 지난 4일 미국 해양대기청(NOAA) 위성자료를 분석, 올해 북한의 봄 가뭄이 지난해보다 심해졌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각 지방은 4월부터 식량이 떨어지면서 하루 두 끼를 겨우 먹는 주민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바 보릿고개 문제다.

    홍 실장은 "김정은의 공개되지 않는 활동이 15% 정도 더 있다고 보면 된다. 노동신문에 공개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활동이 중단됐다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며 "내부적으로 식량 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몇 년 동안 이야기해왔기 때문에 지금 모내기 시즌에 최대한 집중적으로 관리하려는 취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실장은 이어 "대외적으로도 한미와 한일, G7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회담과 함께 중국과 러시아 등을 향한 각국의 메시지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전체적인 결론이 어떻게 나오는지 최종 확인하고 난 뒤 공세를 퍼붓지 않을까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위성 발사 준비 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입에서 나온 "시일 내 위성 발사"가 지켜지지 않은 상황인 만큼, 발사 준비 과정에서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 홍 실장은 "북한이 위성 발사와 관련해 어떤 규격화된 틀을 갖고 있는 국가였다면 발사 지연이 큰 문제이겠지만, 북한은 사실상 첫 (위성) 발사나 다름없다. 북한의 광명성은 실제로 가동이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여러 시행착오는 통상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김정은)이 공표·공언한 말을 준비하는 과정에 깊숙이 몰두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