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 허드렛일, 향수병, 수술… 朴 전 대통령이 광주시 공무원으로 채용정신적 고통 심해 병원 치료받다 탈진… 현재 주 3회 병원 청소하며 '생계' "연평해전 전사자 추모, 법인단체 만드는 중…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줬으면""2002월드컵 감독·선수 1~2등급, 전사자는 3~4등급… 참전용사 예우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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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다 데려갈 거야."2015년 개봉한 영화 <연평해전>에서 고(故) 한상국 상사 역을 맡은 배우 진구가 마지막까지 조타실을 지키면서 전사하는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머릿속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있을 무렵 수수한 옷차림의 한 여성이 나타나 "서 기자님 맞으세요?"라고 수줍게 말을 건넸다. 그는 눈이 동그래진 기자를 보고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연평해전과 남편을 기억해 주시고 찾아와 주셔서 감사하다"며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고 난 후에야 자리에 앉았다.2002년 6월29일, 연평해전이 발발한 지 21년. 뉴데일리는 지난 7일 고 한 상사의 배우자 김한나 씨를 만나 근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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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 전사자 추모 위한 법인단체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는데."네 맞아요. 많은 분이 연평해전과 관련해 재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아무것도 없어요. 최근 최윤희 전 합창의장님이 총대를 메고 사단법인을 만들어 현재 홈페이지 제작, 인원 모집 등 시작하는 과정이에요. 정말 감사한 분이죠.지금껏 혼자 이겨냈지만, 많은 사람이 함께하면 좀 더 파급력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돼요. 기존에 했던 글짓기 대회 같은 것부터 시작해 연평해전 참전 용사들을 추모하기 위해 저희가 할 수 있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해보려고요. 많은 분이 함께해 주셨으면 해요."-故 한상국 상사는 어떤 남편이었나요?"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아요. 남편이 배를 타고 나간 적도 많고, 당직도 많이 서다 보니 결혼생활 동안 얼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싸웠죠. 함께 찍은 사진도 별로 없어 다음에 꼭 사진이라도 찍자고도 했거든요.남편의 성격은 영화에서 나오는 진구 씨와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해요.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았죠. 영화를 볼 때 진짜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 같이 느껴져 펑펑 울었어요. 시사회 때 진구 씨를 만나 남편을 너무 잘 표현해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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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해전이 있고 3년 후인 2005년 갑자기 미국으로 가신 이유는 뭔가요?"연평해전 이후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이 있었어요. 취직도 안 되고, 전사자 보상문제가 언론으로부터 와전되면서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많이 받았죠. 그래서 연고도 없는 미국에서 3년 살았어요. 뉴욕에서 설거지·청소·빨래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했고, 영어가 안 되다 보니 더 힘들었어요.미국에서 느낀 것은 군인에 대한 예우가 한국과 정말 달랐다는 거예요. 우스터라는 곳이 있는데, 전쟁 전사자들을 기리는 유니온광장이 있어요. 6·25전쟁 기념비도 세워진 곳이죠. 그쪽 관계자들과 미국 가기 전부터 인연이 있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분들께서 남편을 포함한 연평해전 전사자 여섯 분의 이름을 기념벽돌에 새겨 주는 등 저희를 정말 많이 생각해 주셨어요. 뿐만 아니라 작은 마을만 가도 희생자들을 위한 비석을 세워 놓은 것을 보며 '이곳 사람들이 군인을 정말 위해 주는구나' 하고 느꼈죠.미국에서 돌아온 이유는 향수병 때문이에요. 미국에 산 지 3년이 지났을 무렵 '내가 여기서 뭘 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가족도 보고 싶었죠. 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도 힘들었어요. 계약직으로 전쟁기념관에서 잠시 일하며 생활했지만 건강이 안 좋아져 담낭제거수술을 받았어요."-2013년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광주시 9급 공무원 자리를 받았다고 들었어요."정말 감사하게도 대통령께서 좋은 자리를 내 주셨죠. 하지만 민원 접수업무 등을 맡으며 많은 사람의 성격을 맞춰야 하다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종종 다니던 정신과도 매일 다닐 만큼 번아웃이 심하게 왔죠. 또 공무원은 연평해전 추모활동을 하는 데 제약도 많았고요. 2019년 그만두고 현재는 한 병원에서 주 3일 정도 청소를 하고 있어요."-연평해전과 관련해 남은 과제는 무엇이 있나요?"서해교전의 '해전' 명칭 변경, 참수리호 용산 전쟁기념관 실물모형 전시, 연평해전 부상자 국가유공자 예우, 남편의 상사 추서 진급은 어렵게 이룰 수 있었어요.훈장 등급에 관해서만 아직 미완성 상태죠. 대한민국 훈장은 1등급인 태극무공훈장부터 을지, 충무, 화랑, 인헌무공훈장까지 총 5 등급으로 나눠요. 2002년 연평해전 전사자 여섯 분은 3~4등급의 중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어요. (충무-윤영하 소령·박동혁 병장, 화랑-한상국 상사·조천형 중사·황도현 중사·서후원 중사)하지만 2002년 월드컵으로 히딩크 감독은 1등급인 태극무공훈장을, 선수들은 2등급을 받았어요. 선수들의 공로를 낮추려는 의도가 아니라, 국가를 위해 돌아가신 참전용사들에게 걸맞은 예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에 대해서 형평성에 맞게 줘야 한다고 봐요."-사람들에게 연평해전이 어떻게 기억되기 바라나요?"망각은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하잖아요. 잊혀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래도 기억해 주시면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