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사도 회사 매출 따라 손배 규모'들쭉날쭉'… 손해액 기준 대기업과 기준도 달라전문가들 "위헌, 이중처벌 등 과잉금지 원칙 위배… 언론피해 구제, 지금도 충분"언론에 징벌적 손배 인정하는 미국도 과잉·적법·위헌 논란… 징벌 손배 퇴조세
  •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미디어특위 위원장)이 지난 6월23일 대표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3배 이상5배 이하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5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이종현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미디어특위 위원장)이 지난 6월23일 대표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범위를 3배 이상5배 이하로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난 5월2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정견발표를 하고 있는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사진. ⓒ 이종현 기자 (사진=공동취재단)
    불공정 거래 방지 등을 위해 한정적으로 적용하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언론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언론 기사로 인한 피해자가 손해배상, 정정보도 요구 등 현행법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음에도 정부·여당이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를 강행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입법부는 2011년에야 징벌적 손배를 골자로 한 법안을 통과시켰을 정도로 징벌적 손배 적용에 신중했다. 이 제도가 다른 법을 통해서도 가해자가 처벌되는 등 이중 처벌의 문제, 헌법상 과잉규제 금지 원칙 위반 등 논란을 일으킬 수 있어서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를 두고 사회적 파장이 커지는 이유다.

    '징벌적 손배 최대 5배' 與 강행 움직임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에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언론중재법)' 16건이 올라와 있다.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6월9일 관련 법 개정안을 처음 대표발의했고, 이어 15건의 개정안이 차례로 나왔다.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를 골자로 하는 이들 개정안에는 손해배상 범위를 3배에서 최대 5배까지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최대 5배' 안은 김용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개정안에 담겼다. 이는 민주당이 지난 6일 법안소위에서 올린 '여당안'에도 그대로 포함됐다.

    언론사를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은 그 언론사의 재산상태, 매출액, 시장점유율 등 '사회적 영향력'이다. 규모가 큰 언론사일수록 손해배상액이 커지는 구조다. 민주당은 이들 개정안을 병합한 여당안을 7월, 늦어도 8월에는 처리할 계획이다.

    공정거래·산업안전 등 목적의 '징벌적 손배'가 언론에?

    여당이 언론에 강제하려는 징벌적 손배는 국내에서 그 역사가 짧다. 1980년대 들어 징벌적 손배 도입과 관련한 논의가 시작됐으나, 우리나라 법 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등의 문제로 2000년대 들어서야 논의가 본격화했다. 그마저 민법 등에 손해배상·명예훼손 등의 규정이 있는 만큼 '이중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에 논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2011년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에 징벌적 손배가 최초로 도입됐다. '공정한 하도급 거래질서 확립'이 목적이었다. 이때도 원사업자의 고의·과실 등으로 손해를 본 자는 원사업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3배 범위 내에서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간 거래, 산업안전 등에 한정적으로 징벌적 손배 조항이 들어간 법안은 그 이후 나왔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 특허법,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 제조물책임법, 환경보건법, 개인정보 보호법, 공익신고자 보호법,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 등 20여 개별 법률과 관련해서였다. 손해배상 범위는 대부분 손해액의 3배였다.
  • ▲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7~8월 국회에서 처리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은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7~8월 국회에서 처리시킬 계획이다. 사진은 국회 본회의장 자료사진. ⓒ이종현 기자
    5배까지 손해액 범위를 넓힌 규정은 2015년 이후 나온 자동차관리법,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이다. 자동차제작자 혹은 부품 제작자가 결함을 알면서도 은폐·축소해 사람의 생명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신용정보회사의 고의·중과실로 인해 신용정보가 누설되는 경우 등 이들 법 역시 안전 문제에 한해 징벌적 손배를 규정했다.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손해액 범위 5배) 역시 안전과 관련한 규정이다.

    정부·여당은 이처럼 공정 거래, 산업 안전 등에 제한됐던 징벌적 손배를 언론에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계뿐 아니라 학계·법조계는 사상 초유의 '언론 징벌적 손배'에 우려를 꾸준히 지적했다.

    손해배상청구, 명예훼손죄… "현행법으로도 구제 가능"

    무엇보다 언론 기사로 인한 피해 구제가 현행법으로도 충분하다는 점이 거론됐다. 형법상 명예훼손죄, 업무방해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 민법상 허위사실공표죄, 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인터넷을 이용한 명예훼손죄 등 현행법으로도 피해 구제는 가능하다.

    언론중재위원회가 지난해 12월17일 비대면으로 진행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에 따른 법적·실무적 쟁점' 토론회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거론됐다. 

    박재영 고등법원 판사는 당시 토론문에서 징벌적 손배 도입이 언론활동을 위축시킨다며 "형사처벌, 행정처분, 과징금·과태료 제도 등 형사 및 행정 절차를 정비해 해결하는 것이 정도(正道)이고, 소액 다수 피해자는 집단소송제 도입으로도 구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판사는 특히 언론을 대상으로 한 징벌적 손배를 인정하는 미국 사례를 거론 "미국의 징벌적 손배가 상당히 퇴조돼 가고 있다는 의견이 많고, 미국에서도 과잉처벌 금지, 적법절차 위반 등 위헌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법정책연구원이 2019년 발간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적정한 운영방안에 관한 연구' 자료에는 ▲징벌적 손배로 인한 소송비용 증가 ▲손해액 산정의 어려움 ▲징벌적 손배의 기준인 '악의성 또는 명백한 고의' 등이 주관적 판단에 의해 이뤄질 수 있는 점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 위반 등 위헌 논란 등이 나열됐다.

    "헌법정신 위반" "'징벌적 손배' 제한적으로만 인정"

    김학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통화에서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배는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뿐 아니라, 공권력이 목적을 달성하려 할 때 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피해 최소성의 원칙'에도 반한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언론 기사로 인한 피해 구제는 언론중재·손해배상청구 등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하다"며 "이 상황에서 헌법상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무색하게 하는 징벌적 손배는 위험한 발상이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고 꼬집었다.

    징벌적 손배의 적용 범위를 언론으로도 확대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강태근 법률사무소 '신록' 변호사는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배를 공정거래·산업안전 문제 등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한다"며 "이러한 징벌적 손배를 언론사에도 적용한다면 헌법상 보장된 언론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게 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