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자치회가 정부·지자체의 도시, 보건, 안전, 체육, 문화예술교육 계획에 개입읍ㆍ면ㆍ동 공무원 출석, 자료 요구권… 휴대폰ㆍ주민번호 등 주민 개인정보 요구권도헌법 고치지 않고도 지역별 통치 가능해 '연방제 효과'… 국회 무용론까지 나올 판
  • ▲ 국회가 주민자치기본법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지자체의 행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현 기자
    ▲ 국회가 주민자치기본법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법이 지자체의 행정권을 침해하는 위헌적 법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현 기자
    '풀뿌리 주민자치'를 명분으로 주민자치회를 만들어 각종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주민자치법을 두고 비판이 쏟아진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주민자치법이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정책에 관여하고 스스로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제2의 지자체를 만든다는 것이다.

    주민자치법은 지난 1월 김영배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19인의 의원이 발의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양정숙 의원을 빼고는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이 법안은 지난 2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위로 회부된 상태다.

    주민총회가 읍·면·동 예산 편성, 주민투표, 조례 개폐 청구 가능 

    주민자치법은 읍·면·동에 주민총회를 통해 구성한 주민자치회를 두도록 했다. 주민자치회의 운영을 결정하는 주민총회는 읍·면·동 거주자(외국인 포함)와 직장을 두고 있는 자, 소재지 학교 교원 등으로 구성된다. 자신의 직장이 있는 곳에서도, 자신의 거주지에서도 중복해서 주민총회에 참여할 수 있다. 

    주민총회는 읍ㆍ면ㆍ동 주민투표, 조례 개폐 청구, 감사 청구 결정, 예산 편성, 행정사무 평가사항 심의, 주요 정책사업 사전 심의를 할 수 있다. 국회 검토보고서는 이와 같은 주민총회의 권한과 관련 "청구 요건을 법률로 엄격하게 규정한 주민투표, 조례 제정 개폐 청구, 주민 감사 청구를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민총회의 예산 심의와 관련해서도 "지방자치법에 따르면, 지자체의 장이 회계연도마다 예산 편성을 하도록 하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부정적 의견을 냈다.

    핵심은 모든 주민총회의 집행 권한을 위임받은 주민자치회에 있다. 주민자치회는 각종 활동에 필요한 분과를 설치하고 읍·면·동 지역 내 생활권에 분회도 설치할 수 있다. 

    문제는 주민자치회의 권한이 사실상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행정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민자치회 위원은 추첨제로 뽑힌다. 

    주민자치계획 통해 지역 정책 추진, 수정 가능

    주민자치회는 5년마다 주민자치계획(자치계획)을 수립하고 주민총회의 승인을 받는데, 이에 따라 사실상 모든 지역 정책을 스스로 추진하거나 중앙정부·지자체의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 

    예산도 편성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회계연도마다 재정운용계획을 수립하고 기부금 및 수익금을 포함한 예산·결산서와 회계감사보고서를 주민총회에 보고하고 승인받도록 했다. 예산은 국가와 지자체가 예산 편성, 특별회계의 운영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도록 했다. 

    이 법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자치계획과 시행계획의 내용을 각 호의 법령에 따른 지방자치단체의 계획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자치계획을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도록 했다.  

    중앙정부·지자체 공무원 소환, 주민 개인정보 요구 권한도 

    주민자치회가 자치계획을 중앙정부와 지자체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영역은 무궁무진하다.

    법에 따르면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른 도시·군 계획 ▲지역문화진흥법에 따른 지역문화진흥기본계획 ▲사회보장급여의 이용, 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지역사회보장계획 ▲지역 보건법에 따른 지역보건의료계획 ▲교통안전법에 따른 지역 교통안전 기본계획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 개발 촉진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 지역 개발 기본계획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른 체육 진흥 계획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에 따른 지역 문화예술교육 계획 ▲평생교육법에 따른 평생교육 진흥 계획 ▲그 밖에 주민자치회와 지방자치단체가 연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법정 계획 및 공모사업 등 10가지다. 사실상 모든 범위의 행정권에 주민자치회가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할 수 있는 셈이다. 

    게다가 주민자치회는 해당 읍·면·동장 및 읍·면·동 공무원에게 주민총회 출석을 요구할 수 있다. 또 중앙행정기관·지자체 소속 관계 공무원이나 관계 전문가를 주민총회 및 회의에 참석하게 하여 의견을 듣거나, 관계기관·법인·단체 등에 자료 및 의견의 제출 등을 요구할 권한을 가진다.

    여기에 더해 주민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읍·면·동 행정기능 및 예산 수립에 관해 해당 읍·면·동의 장에게 협의를 요구할 수 있다. 또 주민 개인정보까지 모두 합법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주민자치회는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의 장(교육감 포함)에게 주민자치법에 따른 주민의 주민등록번호·주소 및 전화번호(휴대전화 번호 포함) 등 인적사항 정보의 제공을 요청하여 활용할 수 있고, 요청받은 자는 이에 따라야 한다. 

    "위헌적 법률… 개헌 없이 연방제 이루는 효과"

    중앙정부와 지자체도 5년마다 주민자치 활성화를 위한 종합지원계획을 수립·시행하고, 주요 사항을 심의하는 민관 합동 추진위원회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 특히 중앙정부는 주민자치 정책 개발·실행을 위한 전담 부서와 전문 지원기관도 운영해야 한다. 

    주민자치회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한 이 법안에 우려가 크다. 사실상 행정부와 지자체의 권한이 주민자치회로 넘어가면서 헌법을 고치지 않고도 개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태우 자유수호포럼 공동대표는 7일 통화에서 "소련의 국호였던 '소비에트(soviet)'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평의회·대표회의라는 뜻인데, (한국 진보진영이) 국민들에게 듣기 좋게 바꾼 단어가 '풀뿌리 주민자치'"라며 "특히나 분단 현실에 있는 우리나라는 헌법적으로 통일된 정책과 방향을 가지고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읍·면·동부터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행정권을 통제하고 스스로 추진할 수 있다면 지방의원 나아가 국회의원 무용론까지 나올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동환 변호사도 "헌법상 아무런 권한이 없는 주민총회와 주민자치회가 행정부와 지자체의 권한을 통제하고 예산까지 편성할 수 있는 위헌적인 법률"이라며 "가장 작은 행정구역 단위인 읍·면·동을 주민자치회가 모두 통제할 수 있도록 하면서, 헌법을 고치지 않고 사실상 지역별로 자체적으로 통치가 가능한 연방제를 이루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주민의 개인정보를 수집해 주류에 반대하는 주민들에게 위해(문자테러 등)를 가하는 도구로 이용될 것"이라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