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에 깃발 반환한 군함은 두 번째 ‘바랴그’함… 중국 항모로 사용된 ‘바랴그’는 네 번째
  • ▲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러시아를 찾은 송영길 대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러시아를 찾은 송영길 대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일 신임 당 대표로 송영길 의원을 선택했다. 송 신임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 러시아특사를 맡기도 했으며, 이후 북방경제협력위원회를 맡아 러시아·중국과 경제협력을 추진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인천시장 시절 러시아에 ‘바랴그’함의 깃발을 건넸는데, 그런 ‘바랴그’함이 중국으로 건너가 항공모함 ‘랴오닝’함이 됐다”고 주장한다. 

    ‘바랴그(Варяг)’는 슬라브 민족의 뿌리와 관련이 있다. 흑해 일대에서 활동하던 바이킹을 뜻하는 ‘바랴그’는 러시아 슬라브족의 시조 루스칸국의 칸(Khan)이자 노브고로드공국(키예프공국의 전신)의 대공 류리크를 가리킨다. 때문에 러시아에서 ‘바랴그’는 매우 상징적인 단어다.

    러시아제국은 1863년 발틱함대 소속 콜벳함(고속호위함)에 ‘바랴그’라는 이름을 처음 붙였다. 이 이름은 1901년 10월 방호순양함 ‘바랴그’함으로 계승된다. 이 ‘바랴그’함이 러시아제국은 물론 옛소련, 현재 러시아에도 상징적인 배다. 

    1904년 2월8일 인천 제물포항에 정박한 러시아 방호순양함 ‘바랴그’함은 일본 해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러일전쟁의 시작이었다.

    ‘바랴그’함 등은 즉각 탈출하려 했지만 일본 해군 장갑순양함 1척, 방호순양함 5척, 어뢰정 등 14척에 포위됐다. ‘바랴크’함은 끝까지 싸우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31명이 전사하고 19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승조원들은 항복하지 않고 배를 소월미도로 끌고 가 자침시킨다. 생존한 승조원들은 인근에 있던 영국·프랑스 함선들에 구조됐다.

    1904년 침몰→ 1916년 인천에 깃발 보관→ 2010년 러에 깃발 반환

    ‘바랴그’함의 운명이 기구한 것은 그 뒤의 일 때문이다. 일본 해군은 침몰한 ‘바랴그’함을 인양한 뒤 함명을 ‘소야’로 바꿔 9년 동안 훈련함으로 썼다. 

    그러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일본과 러시아는 연합군이 됐다. 러시아는 ‘바랴그’함 반환을 요구했고, 일본은 1916년 4월5일 블라디보스토크항으로 ‘바랴그’함을 반환했다. 하지만 일본은 함선 인양 당시 찾은 깃발은 인천에 보관했다. 

    이들 물품은 1946년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 한동안 잊혀졌던 ‘바랴그’함의 깃발은 2002년 인천시립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다시 발견됐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러시아 측은 반환을 요청했다. 반환이 안 되면 ‘장기임대’라도 해달라고 호소했다.
  •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년 전 러시아에 깃발을 임대해 줬다는 순양함 '바랴그'함. ⓒ1904년 러일전쟁 보도신문 캡쳐-위키피디아 공개.
    ▲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1년 전 러시아에 깃발을 임대해 줬다는 순양함 '바랴그'함. ⓒ1904년 러일전쟁 보도신문 캡쳐-위키피디아 공개.
    송영길, 인천시장 시절 메드베데프 방한 때 ‘바랴그’함 깃발 임대

    이 ‘바랴그’함 깃발이 러시아 품으로 돌아가게 된 계기는 2010년 11월12일 서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였다.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하는 것을 계기로 해서 러시아에 2년간 대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시 인천시는 “바랴그함 깃발은 국가문화재는 아니지만 문화재보호법을 준용해 ‘2년 대여’ 형식으로 돌려주는 것”이라며 “형식은 대여지만 얼마든지 추가 연장이 가능해 사실상 반환”이라고 강조했다. “전시 목적일 경우 2년 내 다시 반입한다는 조건으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으면 반출이 가능하다”는 법 조항을 의미했다. 

    당시 송영길 인천시장은 “올해 한러수교 20주년과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사실상 반환이라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며 “앞으로 학계·문화계·정부와 임대기간 연장을 적극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송영길 당시 인천시장과 인천시가 ‘바랴그’함 깃발을 러시아에 임대했을 때 이명박 정부나 문화재청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빌려간 ‘바랴그’함 깃발을 순회 전시하는 등 애국심 고취에 활용했다. 그리고 2014년 11월 인천시립박물관에 반환했다. 

    러시아는 그 사이 ‘바랴그’함 깃발을 대여해준 송 시장에게 큰 감사를 표했다. 송 시장은 2013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초청으로 러시아를 방문해 ‘우호훈장’을 받았다. 러시아가 외국인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격이 높은 훈장이다. 

    이런 인연으로 송 신임 대표와 러시아 간의 친분관계는 확실하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직후 그를 러시아에 특사로 보낸 것, 같은 해 8월 북방경제위원장으로 위촉한 것도 러시아와 친분관계 때문이다.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바랴그’함 깃발과 항공모함 ‘바랴그’함

    그런데 국내 일각에서는 송 대표가 러시아에 깃발을 빌려준 그 ‘바랴그’함과, 중국이 항공모함으로 만든 ‘바랴그’함의 이름이 같다고 지적하며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무관하다. 러시아 해군에 ‘바랴그’라는 함명은 미 해군의 ‘엔터프라이즈’라는 함명과 흡사하다.
  • ▲ 러시아 슬라바급 순양함 '모스크바'함. 6번째 '바랴그'함과 동급 군함이다. ⓒ러시아 국방부 공개사진.
    ▲ 러시아 슬라바급 순양함 '모스크바'함. 6번째 '바랴그'함과 동급 군함이다. ⓒ러시아 국방부 공개사진.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미 해군 ‘엔터프라이즈’는 핵추진 항공모함(CVN-65)이다. 그러나 미 해군이 ‘엔터프라이즈’를 군함 이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775년 5월부터다. 독립전쟁·남북전쟁 등을 거치며 일곱 번째 ‘엔터프라이즈’함으로 항공모함을 선택했다. 

    한국인이 아는 ‘엔터프라이즈’는 이 이름을 여덟 번째 사용한 군함이다. 아홉 번째 ‘엔터프라이즈’함은 2028년 등장할 예정이다. 마찬가지로 ‘바랴그’함도 여러 척이다. 러시아제국 시절의 '바랴그'와 소련 '바랴그'의 공통점은 이름뿐이다.

    송 대표가 깃발을 러시아에 빌려준 ‘바랴그’함은 두 번째다. 그 뒤로 소련이 냉전에 돌입하면서 세 번째와 네 번째 ‘바랴그’함을 만든다. 세 번째 ‘바랴그’함은 만들다 그만뒀고, 네 번째는 킨다급 미사일순양함의 4번함이었다. 

    중국의 항공모함이 된 배는 어드미럴 쿠즈네초프급 항공모함 2번함으로, 다섯 번째 ‘바랴그’함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흑해함대용으로 건조하던 중 소련 붕괴로 미완성으로 남았다. 

    이 항공모함도 핵무기처럼 소련이 붕괴하자 우크라이나 소유가 돼버렸다. 하지만 재정 상황이 안 좋던 우크라이나는 이를 완성할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바랴그’함은 10년 가까이 방치된다.

    한편 해군력 증강을 바라던 중국은 1998년 홍콩의 위장업체를 앞세워 “해상 리조트를 만들겠다”며 우크라이나 당국에 2000만 달러(약 224억원)를 주고 미완성 ‘바랴그’함을 샀다. 

    우크라이나정부는 무장과 관련한 모든 부분을 제거하고 팔았다. 그럼에도 이집트와 터키가 자국 영해와 운하 통행을 반대하면서 운송이 지연됐다. 중국은 배를 구매한 지 3년 뒤인 2001년 말에야 이 항모를 손에 넣게 된다. 중국은 이후 이 배를 ‘랴오닝’함으로 만드는 데 10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다.

    일각에서는 ‘랴오닝’함에 러시아의 첨단 무기 기술이 들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껍데기만 ‘소련제’다. 

    러시아는 중국의 무기기술 절취 때문에 기술이전이나 제휴에는 매우 부정적이다. 특히 엔진과 항공모함 관련 기술은 절대 제공하지 않는다. 중국이 ‘바랴그’함을 ‘랴오닝’함으로 만드는 데 10년이 걸린 이유도 그 내부 체계를 모두 자체개발해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 해군은 현재 여섯 번째 ‘바랴그’함을 운용 중이다. ‘슬라바’급 순양함 3번함이다. 현재의 ‘바랴그’함은 매년 인천으로 와서 깃발의 주인공인 두 번째 ‘바랴그’함을 추모하는 행사에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