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외환 수사권도, 국내 보안정보 기능도 없애…北에 '간첩 안 잡겠다' 신호 보내""남한서 잘살고 있어라… 임무 없는 잠복요원 급증… 요인 암살, 시설 파괴 노릴 것"
  • ▲ 지난 13일 오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이 법안 통과를 찬성한 의원 명단이다.(공동취재사진)ⓒ뉴시스
    ▲ 지난 13일 오후에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석 187인, 찬성 187인으로 통과되고 있다. 녹색으로 표시된 것은 이 법안 통과를 찬성한 의원 명단이다.(공동취재사진)ⓒ뉴시스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이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윤희숙 의원을 비롯해 이철규·조태용·김웅 의원 등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으로 맞섰지만 역부족이었다. 필리버스터를 강제종료시킨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모두 본회의장에서 나간 상황에서 재적 187명 찬성 187표로 통과시켰다. 

    이 법 통과를 두고 다수의 친여 성향 언론은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갔다"고 전했다. 대공수사 기능이 다른 기관으로 이전된 것일 뿐 기능 자체는 유지될 것이라는 가림막이다. 

    실제로 지난 8월 민주당이 만든 국가정보원법 개정안(김병기 의원안)에는 제안이유에서 "'대공' 등 용어를 삭제하고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여"라며 개정 취지를 밝혔다. 하지만 13일 통과된 법안에는 '경찰'이라는 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정원 직무범위를 정한 규정에서 '대공'이라는 용어만 삭제됐다. 

    "경찰은 대공수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지적이 빗발치자 '경찰로 이관한다'는 개정 취지조차 빼고 국정원의 대공수사권만 없앤 것이다. 이 법 규정대로라면, 국정원은 경찰에 기존 노하우를 공유할 의무도 없고, 경찰이 대공수사력을 강화할 필요도 없다. 국정원이 맡고 있던 대공수사 기능이 공중분해된 것이다.

    '대공수사권 폐지'라는 중대 사안은 은퇴한 전직 정보요원들까지 들고일어나게 했다. 전직 정보요원들의 집단행동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퇴직자라고는 하나 국정원 본부 방침을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대공수사의 특수성 때문에 일반 국민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왈가왈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직 정보요원들은 '국가안보를걱정하는전직국가정보원직원모임'(이하 '전직모임')이라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사안의 엄중함을 알리기 위한 여론전에 나섰다.

    본지는 16일 '전직모임' 결성을 추진한 염돈재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을 만나 새 국정원법이 초래한 안보위기와 향후 대응방향 등의 의견을 들었다. 염 전 원장은 노무현정부에서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냈고, 최근 국정원법 개악을 저지하기 위한 '전직모임' 설립을 추진했다. 
  • ▲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낸 염돈대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16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 국가정보원 제1차장을 지낸 염돈대 전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이 16일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염 전 원장은 인터뷰에서 "정부·여당은 권력기관의 권력 분산과 견제·균형을 위해 이번 법 개정을 추진했다고 하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없앤 것은 그와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염 전 원장은 이어 "이는 더 이상 간첩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낸 것"이라며 "북한은 지하당 구축, 우리나라 요인 암살, 국가 기간시설 파괴 등을 위해 간첩 남파를 본격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염 전 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 13일 통과된 국정원법의 주요 내용은?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다. 내란·외환의 죄 수사권도 폐지했다. 소속 직원의 직무상 범죄에 따른 국정원 자체 수사권도 없앴다. 국내 보안정보 기능도 없앴다. 모두 우리의 대공수사력과 반국가행위 수사력을 크게 약화하는 내용이다. 대공수사는 그동안 국정원 주도 아래 경찰·군사안보지원사령부·해양경찰에 분산돼 있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 기능이 사라짐으로써 기관 간 연계체제도 무너지게 됐다."

    - 핵심조항 시행을 3년 유예했는데.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는 척하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어쩌면 3년 후에도 현 여권이 계속 집권한 상태를 염두에 두고 한 것 같다." 

    - 3년이 지나도 경찰의 대공수사력은 그대로인가?
    "3년이 아니라 30년을 유예하더라도 경찰은 고유의 한계 때문에 절대로 국정원 같은 수사능력을 가질 수 없다. 국정원은 대공수사를 잘 할 수 있는 능력과 여건을 갖춘 유일한 기관이다. 간첩 수사를 위해서는 정보 수집과 수사, 해외정보와 국내정보의 긴밀한 연계,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북한 간첩의 90%가 외국을 통해 국내로 침투하는데 경찰은 해외정보망이 없다. 우리가 줄기차게 호소한 것들이다."

    - 경찰은 해외 정보망을 갖는 게 불가능한가?
    "해외 정보망은 물론 간첩 색출에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경찰은 원천적으로 가질 수 없다. 북한 간첩을 색출하려면 북한정보와 국내정보, 인간정보와 기술정보 등을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하며, 외국 정보기관과 협력도 필수다. 이런 다양한 정보 출처를 활용해야 하는데 경찰은 그럴 능력이 없다. 외국 정보기관이 우리나라 경찰과 협조한다는 건 난센스다. 한 국가의 경찰이 타국에서 정보·수사활동을 하는 것은 곧바로 주권침해다. 국내에 파견된 미국 FBI 요원도 그런 활동은 하지 못한다. 또 간첩을 체포하면 그자를 활용해 적의 공작망을 유인하고 조직을 일망타진하거나, 적의 오판을 유도해 공작역량을 소모시키는 역공작이 중요한데, 경찰은 공개조직이라 못한다. 조직 특성상 장기 공작을 할 수도 없다." 

    - 그런데도 굳이 대공수사권을 없앤 이유가 뭘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민주당이 청와대의 강력한 압박을 받지 않았겠나? 또 북한에 뭔가 발목이 잡혀 북한에 약속을 했다든지,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제대로 된 공청회도 한 번 하지 않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입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많은 전문가가 도대체 이유를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다."

    - '전직모임'을 꾸리고 집단행동까지 나섰는데, 활동을 자평한다면?
    "무엇보다 언론이 이 사안을 많이 다루면서 국민의 경각심이 높아졌다. 반대여론이 생각보다 상당히 폭넓게 형성됐다. 국민들한테 안보상황의 변화를 알려주고, 문재인정부가 안보문제와 관련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을 하는지 알리는 데도 기여했다. 우리가 이런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의 활동만으로 법안을 통째로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은 진작부터 했다. 원래 김병기안에는 기관 명칭을 '대외안보정보원'으로 바꾸고, 정보감찰관제를 두고, 감사원의 실질적 감사를 받게 하고, 정보위원회 요구 시 심지어 조직을 공개하게 하는 허황된 규정이 많았다. 이런 독소조항들이 빠진 채 통과됐는데, 이 점만큼은 다행이라고 본다."

    - 김병기안이 독소조항을 여럿 넣은 것은 일종의 '바게닝칩' 아니었을까?
    "대공수사권 폐지를 관철하기 위해 일부러 다른 독소조항을 넣었다는 것인데, 만일 그랬다면 정부·여당의 큰 실책이다.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조항이 많아 위기감을 더욱 키웠고, 개정안이 얼마나 황당한지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정보업무에 무지한 사람들이 정보기관을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

    - 이번 국정원법 통과가 차후 국가안보에 미칠 영향은?
    "간첩활동이 많아질 것이다. 북한에 간첩 수사 의지가 없다는 신호를 줬기 때문이다. 간첩을 양성하는 데 최소한 1~2년은 걸리니, 3년 후 파견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할 것이다. 북한에서 대남공작에 종사하는 인원이 전부 1만5000여 명인데, 이들이 놀고 있겠나. 2000년 이후 지금까지 잡힌 간첩의 45%가 탈북자를 가장해 침투했다. 들어와서 변심할 수 있으니, 북한에 인질이 있는 사람, 그러니까 효심이 깊거나 형제애가 깊은, 그런 사람들을 잠복공작원으로 보낸다."

    - 잠복공작원은 어떤 활동을 하나?
    "이들은 평소에는 그저 남한사회에 정착해 잘살고 있으라는 것이 임무다. 총기나 폭발물을 어딘가에 은닉해둔 채로 말이다. 원인 모를 화재나 폭발사고는 의심해야 한다. 2018년 아현동 KT빌딩 지하에서 불이 났는데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의심스럽다. 만일 간첩이 정유공장 같은 기간시설 서너 번만 폭파해버리면 큰 혼란이 온다. 예를 들어 고속철이나 지하철에 원격조종하는 폭발물을 설치해 실제로 폭파하거나, 그렇게 할 것이라는 소문만 돌아도 아무도 열차 안 탈 것이다. 지금 코로나 상황처럼 마비된다. 잠복공작원이 열 명만 들어와도 끔찍하다. 조선소·정유공장·항공시설을 한 달 간격으로 열 번만 폭파하면 나라는 끝난다. 태영호·지성호·이애란·박상학 이런 사람들을 본보기로 암살할 수 있다. 김정은이 '태영호가 저렇게 날뛰는데 뭐하고 있느냐'고 질책했다.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 경찰 경호 등도 있어 암살이 쉽지 않을 텐데.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것처럼 바로 옆에서 쏘는데 경호가 무슨 소용인가. 독이 든 앰플을 입에 물고 총을 쏜 뒤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이러면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도 못 밝히고 영구미제 사건이 된다. 과거 KAL기 폭파사건 때 김현희 옆에 있던 70대 나이의 공작원은 앰플을 깨물고 즉사했다. 김현희 씨는 수사관이 간신히 앰플을 빼내 살았다. 북한은 이런 자살조를 보낼 것이다. 경찰은 요즘 시대에는 간첩을 잡았다고 특진하는 것도 아니고, 인권침해 논란이라도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데, 누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나. 명예도, 의무감도, 혜택도 없는데 누가 하겠나. 정보요원도 20년은 해야 간첩 잡는데, 경찰은 이들을 못 잡는다."
  • ▲ 지난 4일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 기자회견 모습. 퇴직한 정보요원들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항의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
    ▲ 지난 4일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 기자회견 모습. 퇴직한 정보요원들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에 항의하며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
    - 북한 간첩과 종북·주사파 세력의 천국이 되나?
    "지금 민주당 이규민·김홍걸 의원 등이 찬양고무죄 폐지를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제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죄까지 폐지되면 교사들이 어떻게 가르치겠나. 김일성은 민족주의자, 이승만·박정희는 독재자라고 서슴없이 가르칠 수 있다. 찬양고무죄가 사문화됐다고는 하나 범법행위라는 의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국내 요인을 포섭하기도 쉬워졌다. 중국에서 북한 간첩과 만나면 이제 누가 이것을 잡아낼까? 아무도 못한다. 고급 공작이 바로 이와 같은 정치공작이다. 지하당을 만들고, 동조세력 규합하고, 정치인·기업인 포섭하고, 이런 일들. 하지만 국내에서 하면 발각될 수 있으니, 나라 밖에서 쉽게 하게 될 것이다."

    -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뭔가.
    "정권교체가 특히 중요해졌다. 명목상이지만 3년의 시간을 벌어놨기 때문에 정권을 교체해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 '전직모임' 활동은 계속되는가?
    "국정원 전직들이 60년 기관 역사 이래 처음으로 본부 방침에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원들 모두에게 대단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어쨌든 현직과 전직 사이에 불화가 생기면 그것도 국가안보 위해요소다. 잘못하면 후배들을 어렵게 하고, 부담을 주고, 인간관계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럼 당연히 선배들의 경험과 노하우도 그만큼 배우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또 자칫 정치운동이라고 폄훼될 수도 있고. 정치인들에게 이용될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출발했다. 일단 현 집행부는 이달 31일부로 임기가 끝나는 것으로 애초부터 회칙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안보위기가 커진 상황을 외면하고 해체할 수는 없다는 것이 많은 전직의 생각이다. 우리 전직들은 모두 평생을 국가를 위해 헌신한 정보요원들로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눈감는 것은 체질상 안 된다. 싸움은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직들이 많다. 나라의 문제일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명예도 걸렸다. 모든 것은 회원들의 뜻에 따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