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올해 마이스터고 시작으로 2025년 전면 시행… 정부 정시 확대 기조와도 엇박자
  • ▲ 수도권 유치원·초·중·고등학교 등교수업이 재개된 지난달 21일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 수도권 유치원·초·중·고등학교 등교수업이 재개된 지난달 21일 서울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권창회 기자
    원하는 수업을 선택해서 듣는 '고교학점제'가 2025년 모든 고등학교에 전면 시행될 예정이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고교학점제와 어울리는 대입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내신 상대평가 방식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수업방식만 바뀌는 건 의미가 없다며 고교학점제 도입 전 대입제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는 올해 마이스터고를 시작으로 2022년에는 특성화고·일반고 등에 부분 도입되고, 2025년에는 전체 고교에 전면 시행될 예정이다. 현재 전국 51개 마이스터고에서 고교학점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특성화고 등 직업계고 208개교와 일반고 524개교는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로 운영 중이다.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희망과 진로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골라서 이수하고, 일정 학점이 쌓이면 졸업하는 제도다. 학생들의 과목 선택권을 늘려 다양한 특성과 소질을 기르게 한다는 취지다. 코로나19로 활성화된 원격수업이나 학교·지역간 협동수업도 가능하다.

    "어차피 줄 세우기로 대학 진학"… 고교학점제 과도기 문제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고교학점제에 대한 거부감이 크다. 대학입시제도와 내신 상대평가 방식이 그대로인데 반해 수업방식만 바뀐다는 점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당장 내년도 고교학점제 연구·선도학교 입학을 꺼리는 학생들도 있다.

    경기도 내 중학교 2학년생인 박모 군은 "직접 시간표를 짜는 건 흥미로운 부분이지만, 진짜로 원하는 수업을 들으면서 학점을 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수업 분위기만 자유로워질 뿐이지 어차피 대학은 줄 세우기로 점수에 맞춰 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특히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되면 이 제도의 적용을 받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 논의가 필수적이다. 지금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나 고교 내신이 상대평가인 체제에서는 고교학점제 취지를 제대로 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제도 전면 시행 원년인 2025년 입학할 학생들부터는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성취평가제) 등이 새롭게 적용될 예정이지만, 이전 입학생들은 그렇지 않다. 2028학년도 수능 체제 개편은 2024년, 성취평가제는 2023년에나 계획이 발표될 예정이다. 

    결국 2025년 고1이 되는 현 초5 이하가 아니라면 고교학점제에 맞는 평가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2022~2024년 입학하는 현 초6~중2 학생들의 경우 일부 고교는 기존 수업방식, 또 일부 고교는 고교학점제로 수업을 듣는 과도기가 발생한다.

    내신 절대평가·대입 개편 필요… 수능 확대 기조와 엇박자

    교사들 사이에서도 대입 평가 개편 없이 고교학점제를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지난 7월 공개한 고교 교원들의 고교학점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사 54.9%가 과목 선택권 확대에 반대했다.

    반대 의견은 "대입제도 개선이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될 수 없다"는 이유가 31.25%로 가장 많았다. "진로가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학생들이 많고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응답이 25.6%였다.

    또 교육부가 2023학년도 대입에서 서울 주요 16개 대학이 수능 위주의 정시 비중을 40%까지 늘리도록 하는 등 정시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고교학점제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4년제 교육학과의 한 교수는 "고교학점제는 수능의 영향력이 줄어야 취지에 맞게 구현되는데, 현 상황에서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면 학생들이 수업 외 시간에 수능 준비를 위해 학원을 가는 상황이 벌어진다. 즉 정시 확대 기조를 가져가면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구의 한 고교 교사는 "현재 우리나라 고교는 진로를 찾고 학업을 성취하는 곳보다는 대학을 가기 위한 전 단계로 보는 시선이 짙다"며 "수능으로 대학을 가야 하는 학생들은 제도의 취지와는 반대로 학점이 잘 나오고 대입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