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율성 문제” 외교부 거부… 반중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가는 논의도 못해
  • ▲ 지난 14일 화상으로 열린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에서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가운데)이 자료를 읽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14일 화상으로 열린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에서 이태호 외교부 제2차관(가운데)이 자료를 읽고 있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이 미국의 반중전선 동참 요청을 사실상 거부했다. 화웨이 등 중국 IT 기업 장비 퇴출에 동참해달라는 요청에 “그건 기업의 자율성 문제”라며 외면했다.

    14일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서 ‘클린 네트워크’ 화두로 떠올라

    외교부는 14일 오전 8시부터 미국과 제5차 한미고위급경제협의회(SED)를 가졌다고 밝혔다. 화상으로 진행된 이번 협의회에는 이태호 제2차관을 수석대표로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기획재정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여성가족부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미국 측은 키이스 클라크 국무부 경제담당 차관을 수석대표로 국무부·재무부·보건부 등 관계자 4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뒤 외교부 관계자는 “미국 측이 ‘클린 네트워크에 대한 기존 입장을 설명했고, 우리도 우리 입장을 밝혔다”면서 “구체적으로 우리가 무엇을 배제한다든가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배제하라는 등의 협의는 이뤄진 게 없다”고 밝혔다. ’클린 네트워크‘ 참여 여부와 관련, 이 관계자는 “관계부처들이 아직 검토 단계에 있다”고 밝혔다.

    ‘클린 네트워크’란 지난 8월5일(현지시간) 미국이 밝힌 개념이다. 화웨이·ZTE 등 중국산 IT 장비·부품·프로그램을 배제한 통신망을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5G 통신망부터 휴대전화 어플리케이션, 클라우드서비스, 해저 케이블까지 사실상 모든 IT 서비스에서 중국 공산당 관련 기업을 퇴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외교부 “화웨이 등 중국 장비 사용 여부는 기업의 자율”

    미국은 이후 ‘클린 네트워크’를 설명하면서 5G 통신망에 화웨이·ZTE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 SK텔레콤과 KT를 ‘깨끗한 통신사’ 사례로 들었다. 미국은 LG유플러스에는 현재 사용 중인 화웨이의 5G 통신 중계장비 퇴출을 촉구했다.

    미국은 이번 협의회에서도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국민의 사생활과 기업 기밀 등 국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클린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게 좋다”는 취지로 우리 측에 설명했다. 

    외교부는 이에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것은 기업의 자율성 문제여서 정부의 개입이 어렵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5G 통신망의 보안문제는 미국과 협의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한다.

    ‘클린 네트워크’부터 논의가 잘 안 돼서인지 반중 경제협의체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참가 관련 논의는 아예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 경제협력 파트너십 중요성 재차 확인했다”는 외교부
      
    미국의 요청을 거부했다고 밝힌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 협의를 통해 한미동맹의 핵심 축 가운데 하나로서 한미 경제협력 파트너십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교부 안팎에서는 한미 간 대화가 잘 이뤄졌는지 의구심을 갖는다. 한국이 ‘기업의 자율성’ 운운 하며 ‘클린 네트워크’ 참여를 사실상 거부한 것을 두고 중국의 압박 때문이라는 풀이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최근 중국이 ‘클린 네트워크’에 맞서기 위해 내놓은 ‘글로벌 데이터 안보 이니셔티브’에 가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이날 외교부뿐만 아니라 국방부에서도 한미 간 냉기류가 포착됐다.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연례안보협의회의(SCM) 이후 양국 국방장관은 예정됐던 기자회견을 취소했다. 국방부는 “미국 측이 피치 못할 일정문제로 회견 취소를 먼저 요청해왔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