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슬리퍼 ②구명조끼 ③부유물 누구 것인지 확인 안 돼… 해경, 슬리퍼 DNA 결과 '쉬쉬'
  • ▲ 정부가 북한군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의 월북 근거로 제시한 슬리퍼.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부가 북한군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씨의 월북 근거로 제시한 슬리퍼. ⓒ연합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부는 북한군에 살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가 월북했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는 ①배에 남겨진 신발(슬리퍼) ②구명조끼 ③배에 있던 부유물을 사용해 북측으로 넘어갔다는 추정 ④월북 의사를 표시했다는 감청첩보 등 4가지다.

    그런데 이 중 3가지인 신발·구명조끼·부유물은 더 이상 월북의 근거라고 주장하기 어렵게 됐다. 이씨가 출근할 때 신었던 신발을 배에서 찾지 못했고, 구명조끼가 사라진 것도 확인하지 못했으며, 배에서 사라진 부유물 또한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합참·해수부 “실족한 사람이 슬리퍼 남겼을 리 없다”며 월북 간주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9월24일 이씨가 북측 해역에서 북한군에 살해됐다고 밝혔다. 이때 합참은 “이씨 신발이 배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면서 이를 월북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해양수산부도 “이씨가 슬리퍼를 가지런히 벗어 놓은 것으로 봐서는 실족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밧줄 사이에 놓인 파란색 슬리퍼 사진을 공개했다.

    “그러나 10월7일까지 이씨가 출근할 때 신었던 신발은 배 어디에도 없었다”고 조선일보가 8일 보도했다. 

    신문은 “이씨가 벗어놓았다는 슬리퍼는 승조원들이 비번이거나 업무시간이 아닐 때 선내에서 신던 슬리퍼였을 뿐”이라며 “이씨가 승선할 때 신은 구두·운동화·안전화(작업 중 착용하는, 투박하고 미끄럼 방지 처리된 구두)는 배 어디에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씨 동료들 “누가 슬리퍼 신고 출근하느냐” 반문

    이씨 동료들에 따르면, 안전화는 당직근무 때 꼭 착용한다. 이씨는 21일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당직이었다. “그런데 배에는 이씨의 안전화나 구두· 운동화가 없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신문은 “승선이 곧 출근인데, 슬리퍼 신고 출근하는 공무원이 어디 있느냐”는 동료 선원들의 말을 전했다.
  • ▲ 목포에 입항해 이씨 실종 관련 조사를 받는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목포에 입항해 이씨 실종 관련 조사를 받는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문에 따르면, 홍문표 의원은 해양수산부로부터 “9월27일 해경이 이씨의 모든 물품을 가져왔지만 승선 당시 신었다고 볼 만한 신발은 없었다. 슬리퍼 한 켤레만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신문은 “해경 조사에서 이씨의 동료 16명 가운데 누구도 ‘밧줄에 놓여 있던 슬리퍼는 이씨 것’이라는 증언을 하지 않았다. 몇몇은 ‘슬리퍼가 다 비슷한데 누구 것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고 전했다.

    “해경은 이씨의 침실에서 찾은 슬리퍼와 밧줄 사이에 있던 슬리퍼의 DNA 감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고, 10월 초 감식 결과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며 “문제는 해경이 감식 결과를 받고도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월북’ 근거 사실상 사라져… ‘비공개 첩보’만 남아

    국과수의 DNA 감식 결과 이씨 슬리퍼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그동안 정부가 내세운 이씨의 월북 근거 4개 가운데 구명조끼·슬리퍼·부유물까지 3개가 신빙성을 잃게 된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일 이씨가 탔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서 구명조끼가 사라진 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무궁화 10호’의 물품대장에 등록된 구명조끼는 29벌이다. 그런데 해수부 조사 결과 배에 실린 구명조끼는 85벌이었다. 낡은 구명조끼를 관리하지 않아서다. 신형 구명조끼 가운데 사라진 것은 없었다. 

    해수부는 이씨가 북한으로 가기 위해 사용했다는 부유물 또한 무엇인지 특정하지 못했다.

    여기에 이씨가 승선할 때 신는 신발도 못 찾고, 개인 선실에서 슬리퍼까지 나옴에 따라 “이씨가 월북을 시도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결국 “그가 북한 경비정에 월북 의사를 밝혔다”는 군의 비공개 첩보가 밝혀지지 않으면 “정부가 이씨의 월북설을 조작했다”는 비난을 받게 됐다.

    한편, 합참 관계자는 이 같은 지적에 “해당 내용은 수사 중인 사안이므로 해경에 문의해보라”고만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