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산암모늄 7년간 항만에 보관한 이유 조사… 제각각 종파, 이해관계 엇갈려 '답' 안나와
  • ▲ 기자회견에서 내각 총사퇴를 밝히는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자회견에서 내각 총사퇴를 밝히는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베이루트 항만에서 일어난 대폭발의 여파로 레바논 내각이 총사퇴했다. 대폭발 이후 정부의 부정부패를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지난 9일 3명의 장관이 사임 의사를 표하는 등 레바논 내각 총사퇴는 정해진 수순이었다고 외신들은 평했다. 외신들은 그러나 새로운 총선 이후에도 부정부패 청산은 요원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베이루트 대폭발 일으킨 부정부패에 분노... 내각 총사퇴

    하산 디아브 레바논 총리는 10일 기자회견에서 베이루트 항만 대폭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이 총사퇴 하겠다고 밝혔다. 디아브 총리는 “저는 이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나라의 변화를 위해 시민들과 손잡고 함께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내각 총사퇴를 선언한다. 신께서 레바논을 보호하시기를 기원한다”는 말을 세 차례나 했다고 폭스 뉴스가 전했다.

    폭스 뉴스는 “디아브 총리를 비롯한 레바논 내각 총사퇴는 베이루트 대폭발로 인한 사망자가 220명이 넘은 것으로 집계된 날이었다”고 설명했다. 디아브 총리는 내각 총사퇴 연설 도중 “베이루트 대폭발은 고질적인 부정부패의 결과였다”고 털어 놨다. 그러면서 시민들과 함께 부정부패 척결에 힘쓰겠다고 다짐했다.

    베이루트를 비롯한 레바논 곳곳에서는 지난 8일부터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을 비난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9일에는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로 경찰 1명이 사망하고 230여 명이 부상을 입은 사실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특히 베이루트 시민들은 시내와 맞붙은 항만 창고에 질산암모늄 2450톤이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7년 동안 방치돼 있었고, 이 물질이 위험하다는 수많은 경고를 관계 당국이 무시했던 사실에 분노했다. 베이루트 주지사 마완 아부드는 “대폭발로 인한 사망자가 9일 기준 220명을 넘었고, 110명이 여전히 실종 상태”라고 밝혀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지폈다.
  • ▲ 10일에도 이어진 베이루트 시위.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10일에도 이어진 베이루트 시위. 시위대가 경찰을 향해 폭죽을 쏘고 있다.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디아브 내각이 총사퇴를 했지만 총선을 실시하고 새로운 내각을 구성할 때까지는 임시로 현재 자리를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미 베이루트 항만에 질산암모늄을 쌓아놓은 일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불러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폭스 뉴스는 전했다.

    검찰, 부정부패 수사 나섰지만…혼란 계속될 듯

    국가안보책임자 토니 살리바 중장, 베이루트 세관장과 전임 세관장, 항만 청장 등 20여 명이 이미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명의 전직 장관도 대폭발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폭스 뉴스는 설명했다.

    이렇게 부정부패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향후 사태 수습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레바논의 독특한 정치 지형 때문이다. 레바논은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는 기독교계 64석, 이슬람계 64석으로 의석을 나눈다. 1989년 협약에 따라 대통령과 군 사령관은 마론파 기독교(동방정교회의 일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이슬람 시아파, 국방장관은 이슬람 드루즈파(아브라함을 따르는 이슬람교 일파)가 나눠 갖는다. 1975년부터 시작된 내전을 끝내기 위한 안배였다.

    이런 복잡한 정치 지형 때문에 총선을 실시하더라도 이란의 영향을 받는 시아파, 사우디아라비아가 지원하는 수니파, 기독교 종파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게 일이다. 경제난도 심각하다. 레바논 인구 550만명의 3분의 1이 빈곤층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실업률은 25%에 달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51%로 세계 3위다.

    때문에 미국과 프랑스, 유엔은 베이루트 대폭발 복구에 2억9700만 달러(한화 3520억원)를 지원하겠다면서도 “레바논 정부가 아니라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향후 레바논에 어떤 내각이 들어서더라도 화폐 가치 급락, 높은 실업률과 같은 경제난을 단시일 내에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