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전·현직 등, 피해자에 "확실한 증거 없으면 힘들 것" 압박… "진실규명 두려워하나" 비난 거세
  • ▲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인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 ▲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피해자 측인 한국여성의전화 등이 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성원 기자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 측이 피해사실을 밝힌 후 서울시로부터 회유·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추가 의혹이 공개되자 서울시는 피해자 측 제안을 대폭 수용해 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여전히 서울시가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하다는 비난이 일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 전화는 16일 성명을 내고 서울시 측이 A씨에게 '2차 가해'를 한 정황을 공개했다. 

    이들에 따르면, A씨는 8일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사실이 알려진 이후 서울시 일부 공무원들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이들은 "전·현직 고위공무원, 별정직, 임기제 정무보좌관, 비서관 가운데 피해자에게 연락을 취한 이들이 있다"면서 "책임을 느끼거나 사과를 한 경우는 극히 일부였다"고 전했다.

    서울시, 피해자 측에 연락해 회유·압박… "사과는 거의 안 해"

    A씨 측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서울시는 A씨에게 회유 또는 압박성 메시지를 전했다. '지지한다면서 정치적 진영론에, 여성단체에 휩쓸리지 말라' '힘들겠다고 위로하며 기자회견은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잘 밝혀져야 한다면서,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힘들 거야' 등의 내용이었다.

    이들은 A씨에게 2차 가해를 한 일부 서울시 공무원들을 향해 "안희정·오거돈 사건에서처럼 책임을 회피하고 축소·은폐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고, 2차 피해와 퇴행적 인식을 확산하는 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또 "현재 이런 상황을 보면 서울시가 15일 내놓은 대책을 통해서는 본 사건을 제대로 규명할 수도 없고, 할 의지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 등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구체적으로 △경찰에는 수사 지속과 서울시청 6층의  증거보전과 수사자료 확보 △서울시·더불어민주당·여성가족부 등 책임기관에는 '피해 호소인' 호칭 등 퇴행적 대응 중단 및 적극적 성폭력 문제 해결을 주문했다. 

    또 △서울시 관계자에게는 일방적 주장 발표 중단과 인터뷰 시 직급과 부서 공개를 요구했으며 △언론에는 대안 제시 및 해당 사안을 발생시킨 구조의 문제 분석 등을 요구했다.
  • ▲ 15일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인권전문가·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제공
    ▲ 15일 황인식 서울시 대변인은 여성단체·인권전문가·법률전문가 등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 제공
    A씨 측의 추가 의혹 공개 이후 서울시는 "피해자 측의 제안을 대폭 수용할 것"이라는 방침을 강조했다. 서울시는 같은 날 '여성단체 발표에 대한 서울시 입장'이라는 자료를 통해 추가 공개한 의혹과 관련해서도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해 다루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는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가 13일 기자회견을 통해 요구한 민관합동조사단 구성·운영을 결정했다"며 "16일 입장 발표를 통해 요구한 제안사항도 대폭 수용해 조사단 구성에 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피해자 측 제안 대폭 수용"… 뒷북 대응에 비난

    다만 "조사단 구성을 위한 제안을 2회에 걸쳐 공문으로 보냈지만 현재까지 회신이 없는 상태"라며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는 조사단 구성을 위한 서울시 제안해 조속히 응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가 여전히 문제를 덮으려고만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김정희 바른인권여성연합 공동대표는 "서울시 내부문제를 감싸고 넘어가려 하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라며 "서울시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는 데만 급급한 것 아닌가"라고 질타했다.

    김 대표는 이어 "또 다른 의혹이 폭로되자 더이상 감출 수 없고 막을 수 없으니 조사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제대로 조사하겠다는 의견은 환영하지만 원래 했어야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서울시라는 관료조직이 가진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그들의 잘못이 밝혀지면 더 큰 책임을 져야 하니 말을 빼거나 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평론가는  "서울시마저 진실을 규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관료주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 실망을 금할 수 없다"며 이번 사건에 따른 정확하고 충분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서울시는 15일 여성단체·인권단체·법률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꾸려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럼에도 서울시가 A씨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 직원'이라 지칭하고, 성추행 진상규명에 나서겠다는 등의 구체적 조사방향은 제시하지 않으면서 객관성·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