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연구가' 조성관이 쓴 유럽 6개 도시 여행기… 영화 속 숨은 명소에 재미난 역사 이야기까지
  • ▲ '천재 연구가'로 통하는 여행작가 조성관. ⓒ촬영=김동오
    ▲ '천재 연구가'로 통하는 여행작가 조성관. ⓒ촬영=김동오
    최근 우한코로나(코로나19) 여파로 방구석에 갇힌 '여행족'들의 '역마살'을 부추기는 도발적인 책이 나왔다. 단, 이 책이 권하는 여행은 낯선 사람들과 떠나는 왁자지껄한 단체 여행이 아니다. 언택트(Untact) 시대가 도래한 만큼 혼자서 또는 둘이서 느긋하게 즐기는 안단테(Andante : 느리게) 여행을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각 도시의 인물·역사·영화와 교감하는 여행

    저자는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를 펴낸 조성관 작가다. 지난 15년 동안 '천재'라는 코드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숱한 이야기들을 수확해 총 9권의 책을 발간한 저자는 그동안 편집 과정에서 부득이 생략할 수밖에 없었던 숨은 이야기들을 따로 모아 한 권의 '여행기'로 펴냈다.

    '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도서출판 댄스토리)'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책은 도시 공간에 남겨진 천재의 흔적을 찾아다닌 저자의 진귀한 경험을 짧은 시간에 맛볼 수 있는 '만나(Manna)'와도 같은 책이다.

    유럽의 대표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그 도시가 키운 인물들을 만나온 저자가 지적 희열을 추구하는 '개인주의 여행자'들을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안단테 여행으로 안내한다.

    혼자서 또는 둘이서 즐기는 안단테 여행

    지금껏 여행한 도시 중 오스트리아의 빈과 체코의 프라하, 그리고 프랑스의 파리를 '가장 좋았던 도시'로 꼽은 저자는 여기에 영국의 런던, 독일의 베를린·라이프치히를 더해 총 6개 도시를 이 한 권에 담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각 도시를 소개하는 방식이다. 보통의 여행기가 익히 잘 알려진 관광 명소를 찾아가는 경로나 저자의 감상평을 수록하는 데 그치고 있는 반면 이 책은 유명 영화의 배경이나 역사의 한 현장이었던 장소를 구체적으로 묘사해 읽는 이로 하여금 이미 그곳을 다녀온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특히 이 책은 '영화 기행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영화 속 공간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탁월하다.

    '언젠가 유럽'에는 각 도시를 대표하는 6편의 영화가 등장한다. '미드나잇 인 파리(Midnight In Paris)' '퐁네프의 연인들(The Lovers On The Bridge)'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미션 임파서블(Mission : Impossible)' '노팅 힐(Notting Hill)'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는 각각 파리·빈·프라하·런던·베를린의 명소를 가장 잘 담아낸 영화들로 꼽혔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주인공처럼 파리를 걷다

    우디 앨런 감독이 연출한 '미드나잇 인 파리'는 작가의 설명대로라면 파리의 정수(精髓)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보고'나 마찬가지다. 주인공 길 펜더가 비를 맞으며 걸어갈 때 옆에 흐르는 강이 파리의 상징으로 불리는 '센강(Seine River)'. 그가 소설가 '헤밍웨이(Ernest Hemingway)'와 처음 마주친 술집은 '브릭톱(Bricktop)'이라는 이름의 클럽이다. 화면에 나오거나 언급되는 장소가 '몽마르트르'나 '생제르맹'처럼 파리 카페의 향기를 맡고 음미할 수 있는 명소들이다.

    영화에 나오는 센강을 설명하던 저자는 돌연 "여기에 놓은 37개의 다리 중 가장 유명한 다리가 바로 '퐁뇌프'"일 것이라며 줄리엣 비노쉬(Juliette Binoche)가 주연한 '퐁네프의 연인들'로 화제를 돌린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가장 유명한 센강 다리는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시에 등장하는 '미라보 다리(Le Pont Mirabeau)'였다고. 저자는 퐁뇌프가 센강에 놓인 최초의 석축교이자 다리 양옆에 건축물이 없는 최초의 다리였다는 디테일한 정보까지 알려준다.

    저자는 파리 여행을 크게 네 가지 주제로 제안한다. 예술가들의 성지 몽마르트르, 파리 지성이 꽃핀 카페, 센강의 다리들, 그리고 묘지 투어. 각각의 장소마다 피카소·보부아르·사르트르·스탕달·발자크·드가·니진스키·보들레르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작가와 예술가들의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가 펼쳐진다.

    신문사 특파원으로 파리에 온 헤밍웨이가 사표를 내고 작가의 꿈을 키우면서 자주 드나들었던 카페 '되 마고'와 '셀렉트', '클로즈리 데 릴라'도 소개된다. 특히 '클로즈리 데 릴라'는 헤밍웨이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전 자주 이용한 공간이었다.

    헤밍웨이는 아침 일찍 숙소에서 노트를 들고 나와 이 카페 야외 테라스 한쪽 모퉁이에서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미친 듯 글을 썼다. 그는 글을 쓰는 자신을 가리켜 "눈먼 돼지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1926년 발표한 그의 데뷔작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는 이곳 테라스에서 6주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미지의 도시 프라하를 널리 알린 '미션 임파서블'


    저자는 '톰 크루즈(Tom Cruise)'가 주연한 '미션 임파서블'이 아직 미지의 도시였던 프라하를 세상에 알린 영화였다고 평한다. 러닝 타임 110분 중 50분까지의 배경이 프라하다. 프라하 주재 미국 대사관과 호텔을 주 무대로 설정하고 카메라는 프라하의 구석구석을 비춘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프라하성과 카를교와 블타바강이 한 컷으로 잡힌다. IMF 팀의 비밀 사무실은 카를교가 보이는 블타바강변의 건물에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곳에서 짐 펠프스(존 보이트 분)는 이선 헌트를 비롯한 요원들에게 작전을 지시한다.

    이후 등장하는 곳은 말라 스트라나(성 아랫마을), 구시가, 구시가 광장 등이다. 모두 중세 이전에 형성된 공간이다.

    저자는 그중에서도 구시가 광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공간이라고 단언한다. 손바닥만한 공간에 기막힌 이야기들이 숨어 있고, 개성 있고 역사적인 건축물들이 모여 있으며, 무엇보다 수많은 인물들이 거쳐간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곳은 '카프카(Franz Kafka)'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카프카는 이곳에서 태어나(마이슬로바 2번지) 학교(독일어소년학교와 왕립 김나지움)를 다녔고, 직장(산업재해보험공단)에 다니면서 문학 살롱을 드나들었다. 대표작 중 하나인 성(城)을 쓴 곳도 오펠트 하우스였다.

    그의 41년 생애가 생가에서 반경 1킬로미터 이내에서 이뤄졌으며, 그 중심은 구시가 광장이었다는 이야기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비포 선라이즈' 개봉 후 빈 관광객 급증


    저자는 '비포 선라이즈'가 개봉한 1995년 전후로 세계인의 빈 여행의 흐름이 나뉜다고 말한다. 그만큼 영화 개봉 이후 빈을 찾는 여행객이 급증했다는 이야기다.

    프랑스 여자 셀린(줄리 델피 분)과 미국 남자 제시(이선 호크 분)는 우연히 기차 안에서 만난다. 여자의 목적지는 파리, 남자의 목적지는 빈. 두 사람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서로 잘 통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열차를 타기 전까지 전혀 모르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하룻밤을 보낸 뒤 빈 중앙역에서 6개월 후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두 사람이 다음 날 해가 뜰 때까지 빈 시내를 다니며 커피도 마시고 공원 잔디밭에서 가벼운 키스를 나누는 게 전부다. 그러는 과정에서 빈의 여러 모습이 등장한다.

    첫 번째 장면은 빈 중심가를 관통하는 도나우(Donau) 운하다. 이어 링슈트라세, 즉 환상(環狀) 도로를 순환하는 전차가 나온다. 두 사람은 트램(Tram : 노면전차)의 맨 뒷좌석에 앉아 진실게임을 하고 서로에 대한 경계를 허물며 시간을 뛰어넘어 내면에 다가가려 한다.

    유리창 뒤로 환상도로와 도로변의 여러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고딕식 시청 청사도 스쳐 지나가고, 말 두 필이 끄는 마차 피아커(Fiaker)도 보이고, 두 사람이 탄 전차 뒤를 따르는 다른 전차가 방향을 바꾸는 모습도 나온다.

    빈을 대표하는 카페도 두 곳 등장한다. 그중 한 곳이 '클라이네스(Kleines) 카페'다. 때는 밤 시간. 두 사람은 이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점쟁이 여자에게 손금을 보기도 한다.

    ◆ 저자 소개

    조성관 :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월간조선' 기자를 거쳐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15년 전 오스트리아 빈을 여행하던 중 모차르트와 교감을 나누는 진귀한 경험을 하면서 도시 공간에 남겨진 천재의 흔적을 찾아다니는 여행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첫 책 '빈이 사랑한 천재들'이다. 이때부터 프라하, 파리, 런던, 페테르부르크, 독일, 뉴욕, 도쿄 등을 여행하며 '도시가 사랑한 천재들' 시리즈를 펴냈다. 2010년 '프라하가 사랑한 천재들'로 체코 정부로부터 공훈 메달을 수상했다. '뉴스1'에 '조성관의 세계인문기행'을 연재하고 있다.
  • ▲ '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겉표지. ⓒ도서출판 댄스토리
    ▲ '언젠가 유럽 - 도시와 공간, 그리고 사람을 만나는 여행' 겉표지. ⓒ도서출판 댄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