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대한해협 승전 70주년…부산서 참전용사 시가행진, 해군함정 사열, 블랙이글스 축하비행까지
  • ▲ 26일 오전 대한해협해전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이 부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독도함 장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날 부산작전기지에 정박 중이 함정들은 만함식으로 함정 전체에 깃발을 내걸고 마스트에는 'REMEMBER' 기류를 게양했다. ⓒ해군 제공.
    ▲ 26일 오전 대한해협해전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이 부산작전기지에 정박 중인 독도함 장병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이날 부산작전기지에 정박 중이 함정들은 만함식으로 함정 전체에 깃발을 내걸고 마스트에는 'REMEMBER' 기류를 게양했다. ⓒ해군 제공.
    1950년 6.25전쟁 발발 직후 첫 승전은 바다에서 있었다. 한국 해군의 첫 전투함 중 하나인 백두산 함이 26일 오전 1시 38분 적함 격침을 기록한 대한해협 해전이다. 26일 이 승전 7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부산에서 거행됐다.

    70년 전 승전의 영웅들, 부산 시내서 카 퍼레이드

    “26일 해군작전사령부(사령관 이종호 중장) 주관으로 부산 일원에서 대한해협 해전 전승행사를 연다”고 밝힌 해군은 “올해는 특별히 카 퍼레이드와 블랙 이글스 축하비행 등을 더해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에게 더 높은 예우를 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해군은 이날 행사에 대한해협 승전 참전 영웅 가운데 생존자 5명과 유가족들을 초청했다. 생존자는 당시 백두산함 갑판사관(소위)이었던 최영섭 예비역 대령(해사 3기, 93세)을 비롯해 조타사였던 최도기 당시 이등병조(91세)와 장학룡 당시 삼등병조(90세), 갑판사였던 최효충 당시 이등수병(91세), 탄약운반수였던 황상영 당시 이등수병(전 한국해군동지회장, 88세) 등이다.

    이외에 백두산함 함장이었던 고 최용남 중령의 장남 최경학 씨(86세), 고 전병익 이등병조의 여동생 전광월 씨(84세) 등 유가족 30여 명도 행사에 초대받았다.

    백두산함 참전 영웅과 유가족들은 지붕이 없는 버스를 타고 부산역을 출발, 해군작전사령부까지 13킬로미터 가량 카 퍼레이드를 벌였다. 해군과 부산경찰이 이들의 행진을 도왔다.

    참전 영웅 “우리 노병들의 소망은 후대의 행복한 삶”
  • ▲ 26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진행된 '제70주년 대한해협해전 전승 기념식'에서 이종호 해군작전사령관(왼쪽)이 최영섭 고문(대한해협해전 당시 백두산함 갑판사관)에게 감사메달을 전달하고 있다. ⓒ해군 제공.
    ▲ 26일 부산작전기지에서 진행된 '제70주년 대한해협해전 전승 기념식'에서 이종호 해군작전사령관(왼쪽)이 최영섭 고문(대한해협해전 당시 백두산함 갑판사관)에게 감사메달을 전달하고 있다. ⓒ해군 제공.
    해군작전사령부에 도착한 참전 영웅과 유가족들은 정박한 해군 함정들을 사열했다. 함정들은 배 전체에 깃발을 내걸고, 갑판 위 기둥(마스트)에는 ‘Remember’라고 적힌 깃발을 게양했다. 70년 전 한국 해군으로써 첫 승전을 올린 영웅들을 기억하겠다는 의미라고 해군 측은 설명했다. 각 함정의 장병들은 함상에서 참전 영웅과 유가족들에게 경례로 존경과 감사를 표했다.

    이어 환영 오찬과 전승 기념식이 열렸다. 대통령 예우와 같은 21발의 예포와 함께 참전 영웅들에 대한 경례로 시작된 기념식은 해군 의장대 시범과 블랙 이글스 비행으로 마무리됐다.

    부석종 해군참모총장은 참전 영웅들을 “살아있는 승전의 역사이며, 우리나라를 구한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이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백두산함 승조원들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필승의 정신을 가슴에 되새겨 ‘필승해군’ ‘선진해군’을 건설해 나가겠다”고 부석종 총장은 다짐했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이에 “해군 장병과 그 가족들이 푼돈을 모아 사온 백두산 함이었다”면서 “이 배가 6월 25일 조국을 지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 참전 용사들은 대한민국 수호 임무를 마치고 거의 다 떠났다”며 “우리 노병들의 소망은 오직 하나 ‘후대들의 행복한 삶’이며, 이제 노병들은 애국 혼으로 무장한, 늠름한 해군 여러분을 믿고 평안히 떠나려 한다”고 답했다. 최 예비역 대령은 최재형 감사원장의 부친이다.

    북한의 후방교란 기도 좌절시킨 대한해협 해전
  • ▲ 26일 오전 부산작전기지에서 진행된 '제70주년 대한해협해전 전승 기념식'에서 독도함 위로 블랙이글스가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 26일 오전 부산작전기지에서 진행된 '제70주년 대한해협해전 전승 기념식'에서 독도함 위로 블랙이글스가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해군 제공.
    대한해협 해전은 1950년 6월 25일 오후 8시 12분부터 6월 26일 오전 1시 38분까지 이어진 전투다. 당시 한국군의 첫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은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부산으로 향하는 괴선박을 발견한다.

    이 선박은 백두산함의 통신에도 불응한 채 계속 남하했다. 확인 결과 북한 육전대(해병대) 400명을 태운 무장수송선이었다. 북한군 무장수송선의 공격으로 교전이 시작됐다. 당시 백두산함의 무장은 3인치(76mm) 포 1정과 기관총 몇 정뿐이었다.

    북한군 무장수송선은 백두산함의 포를 5발이나 맞고도 곧바로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백두산함은 400미터까지 접근해 북한군 무장수송선을 공격했다. 그러자 북한군은 육전대 병력을 보트에 태워 백두산함으로 보내려 했다. 백두산함을 점령하려 한 것이다.

    결국 백두산함 승조원들은 소총까지 들고 나와 적과 싸웠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무장수송선을 격침시켰다. 이 과정에서 적의 공격에 김창학 삼등병조, 전병익 이등병조가 전사했다. 백두산함의 분전에 놀란 북한군은 더 이상 부산으로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덕분에 6.25전쟁 초기 미군과 유엔군이 도착할 때까지 부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정부는 1952년 12월 1일 고 김창학 삼등병조와 고 전병익 이등병조에게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해군은 윤영하급 유도탄 고속함에 이들의 이름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