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싸우고 싶으나 세계의 원조 구하러 나섰다“…“미국 등 36개국 참전 결정, 민주주의 세계대전 승리“
  • ▲ 6.25직후 피난길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무초 대사등과 대책회의를 하는 모습.(자료사진)
    ▲ 6.25직후 피난길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무초 대사등과 대책회의를 하는 모습.(자료사진)
    70년 전 6월25일 일요일 새벽, 소련과 중공·북한의 연합군이 기습적으로 전면 남침을 자행하자 피난길에 올랐던 이승만 대통령이 7월4일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을 향한 특별담화를 발표한 내용이 발견돼 전문을 게재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국난을 맞은 심경과 이번 전쟁의 목적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일찍이 공산주의에 대한 유화정책은 전쟁을 부른다는 것,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결판은 전쟁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이 대통령은 예견했던 공산군의 침략 전쟁을 절호의 통일 기회로 작정, “이 전쟁은 남북통일 완수의 시작”이라고 선언하고 국민을 독려했다.
    “40년 동안 우리가 남에게 원조를 주지도 못하고 남의 원조를 받지도 못하고 지내다가…”라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독립운동시절 미국에 임시정부 승인을 계속 촉구하며 ‘무기대여법’에 따른 무기 원조를 받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끝내 거부했던 미국이 그로부터 10년이 흘러 미국의 잘못된 정택 탓으로 전쟁이 일어나자 자유세계를 이끌고 참전하게된 역사적 비국을 맞이하여 75세 대통령의 심정은 분노와 안도의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담화를 통하여 자신이 피난해야 하는 이유와 그때까지의 전투상황을 설명하고 미국 등 자유세계 36개국이 참전과 원조를 제공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알려 국민의 단합된 전투태세를 촉구하고 있다. 동시에 민족의 반역자 공산도배들을 무찔러 남북통일을 기필코 이룩하자는 결의를 특별히 강조한다.

    ◆전쟁 경과에 대해 대국민 특별방송(이승만 대통령,1950. 7. 4)

    공산군이 서울을 침입하게 된 것을 생각할수록 통분해서 차라리 죽어서 모르고 싶습니다. 다만 잠시라도 이 난역배(亂逆輩)들이 우리 수도에 들어오기에 이른 것은 우리의 씻을 수 없는 수욕(羞辱)입니다. 내 한 몸이 국군의 앞에 서서 죽음으로써 싸워야 옳을 것인데 피하여 나온 것은 구차히 목숨을 위해서 할 것이 결코 아니오. 첫째는 성중(城中:서울)에 있으면 군경 전투 상에 도리어 곤란을 당하겠다는 것이 한 가지 이유요. 또는 내가 나와 앉아서 세계에 호소해서 공론이 일어나야 할 것을 각오한 것이 두 번째의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 국군 각처 해명과 육지에서 엄연히 싸워서 적은 수효로 많은 무리를 대적하며 부족한 무장으로 우수한 병기를 항거에서 조금도 퇴축(退縮)이 없었으나 의정부 방면에는 탱크와 장총을 막을 것이 없어서 국군이 어찌할 수 없이 퇴보한 것인데 공포해서 곤란상태를 이룬 것이 조금도 없었고 정제(整濟)히 물러간 것입니다. 적군이 입성한 후에도 군경과 청년단이 시내 각처에서 결사투쟁한 것은 더구나 감복치 않을 수 없으며, 지금에도 계속 사수하여 쉬지 않고 싸우는 고로 연합군이 더욱 흥분해서 하루바삐 서울을 회복하기로 군기군물과 육해공군이 시시로 모여들어 수원을 향하여 올라가는 중이니, 우리 반도강산에 공산 반역배들의 운명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소련의 강포무도한 세력이 불구(不久) 뭇소리니 히틀러와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한강철교를 끊은 것은 적국이 남방으로 오기에 장해를 만들자는 계획인데, 군기군물을 상당히 준비한 후는 몇 시 안에 다시 고쳐서 쓸 수 있도록 만든 것이오, 적군이 항공에 불화한 일기를 이용해서 대포와 장총으로 한강 남변에 국군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뗏목과 선박으로 탱크를 실어서 한강 상류에서 물결을 따라 내려와서 건너온 것인데, 국군이 격렬히 싸워서 영등포와 김포와 시흥, 수원 각지에 오늘까지 완전히 찍혀 있으며, 동시에 미육군이 서울 이북으로 비행장과 기타 군용기지를 연속 폭격하여 소련비행기를 다 파쇄시킨 것이 어제까지 합 100여 대에 달하였다 하며, 오늘날에 얼마나 파쇄하였는지는 아직 보고가 없습니다.
    우리 정부는 다 임시주재소에 모여서 시행할 수 있는 정무는 시행하고 있으며 각 사회와 애국단체 지도자들은 각처에서 전재민구호와 민심 정돈시키는 등 사업에 주야근무하고 있으며, 일반 민중은 전란지역과 전재민 피난자 외에는 조금도 요동이 없고 각각 직업을 여상(如常)이 지켜 나가는 고로 내외국인 이목에 가장 담대하고 평온한 상태를 보이게 되니 다행입니다. 우리 마음이 지금부터는 민주전쟁의 내란정도를 지나고 세계전쟁으로 되어서 오늘까지 36나라가 가담되는 연합국 총 사령장관인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고 그 부하로는 전에 우리나라의 군정장관으로 있던 우리 친우인 딘 소장이 와서 처치 소장과 합동하여 작전계획을 준비하는 중이니 준비가 된 후는 서울로 올라갈 것입니다.
    연합군이 지나가는 곳이나 주둔하고 있는 데서나 우리 동포들이 극히 환영하는 뜻을 표시하여 국기를 날려 만세를 불러 친선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만국적십자 총본부의 대표로 동경에 있는 빼리 박사가 금일에 와서 우리와 협의하고 즉시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이번 전쟁에 부상한자들과 전재민들을 위하여 각종 약품과 의사와 간호부와 그 외에 식품과 의복 등 물품이 계속 들어올 것이니, 악독한 반역분자들의 손에 피해를 당한 남녀는 속절없이 악화를 당했지마는 난리 중에 부상을 하고 병원에서 둔음(吨吟)하거나 가옥, 의복, 식물을 다 빼앗기고 죽게 된 동포들은 세계의 모든 동정한 나라들의 자선심으로 보내는 구제로 많은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40년 동안 우리가 남에게 원조를 주지도 못하고 남의 원조를 받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지금에 처음으로 대대적 자선물자를 받게 된 것은 크게 위로도 되며 깊이 감사하는 바입니다. 소련은 전부터 이 전쟁을 준비했고 미국은 평화를 주지하는 중에 졸지에 이 전쟁을 시작하니 처음은 어찌할 수 없었으나, 지금은 전적으로 민심이 일어나서 싸워야 할 것을 결정하였으니 군기, 군물, 군인을 운반하기에도 시간이 걸리고 또 준비하기에도 시간이 필요함으로 처음의 곤란이 없지 아니하나 미국은 싸움을 한 번 작정하면 끝내고 말 것입니다.
    우리 문제는 이 중에서 다 해결되고 말 것이니 이것이 남북통일이 완수될 시작입니다.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전쟁으로만 결말짓고 말 것이니 지금 그 전쟁이 시작되고 민주주의의 성공은 이미 다 판단된 것이며, 무죄한 동포들이 난역배(亂逆輩)의 손에 피해당하는 것과 모든 곤란을 당하는 것이지마는 우리가 서로 인내하며 서로 구제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분투하여 나갈 것이니 그대로 절실히 양해하고 끝까지 붙들어 나갈 것을 부탁합니다. [출전] 『만주신보』1950.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