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80억 장, 6.25 때는 40억 장 뿌려… 노무현 정권 때 '삐라 금지' 조치로 민간 대북전단 출현
  •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탈북민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 애쓴다. 여당 의원들은 대북전단을 ‘삐라’라며 폄하한다. 소위 ‘삐라’는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대북전단은 언제 처음 뿌리기 시작했을까.

    ‘삐라’는 영어 ‘Bill(광고지)’의 일본식 발음 ‘비라(ビ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전단’이 한국식 표현이며 ‘삐라’는 북한말이라고 정의한다.
  • 상대방을 비방하거나 자기 편을 선전하기 위한 이런 전단지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적을 대상으로 한 심리전 수단으로 적극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비행기를 전투에 활용하기 시작한 제1차 세계대전부터로 본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뿌려진 삐라는 6500만 장이었다. 삐라를 본격적인 심리전 수단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80억 장의 삐라가 세계 곳곳에 내려앉았다. 

    이때 연합군 삐라는 주로 항복을 권유하는 내용이었던 반면, 일제를 비롯한 추축국 삐라는 탈영을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특히 결혼한 장병들에게 “부인의 침대에 지금 다른 남자가 있다”는 식의 망상을 심어주려 노력했다.
  • 위의 삐라는 6·25전쟁 당시 연합군이 북한군과 중공군을 대상으로 뿌린 삐라다.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을 시작으로 2004년까지 남북한 양측의 ‘삐라전쟁’이 있었다. 6·25전쟁 당시 첫 삐라는 연합군이 뿌렸다. 미군 극동군사령부는 6월28일까지 사흘 동안 삐라 1200만 장을 만들어 전선에 투하했다. 이때부터 연합군과 북한·중공군은 휴전 때까지 약 40억 장의 삐라를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면적으로 계산하면 한반도를 20번 덮을 정도라는 주장까지 있을 정도다.
  • 위의 삐라는 국군을 대상으로 월북을 권유하는 북한의 삐라다. 남북한은 휴전 이후 체제 선전과 상대방 군대의 분열을 조장하기 위해 꾸준히 삐라를 뿌렸다. 강원도 고성군의 DMZ박물관 등에 전시된 삐라는 대부분 1980년대와 1990년대 살포된 것들이다.
  • 남한 또한 북한군의 귀순을 권유하는 삐라를 뿌렸다. 북한과 다른 점은 수영복 차림의 미인들을 주로 내세웠다는 점이다. 귀순할 경우 포상제도를 설명하는 내용을 담거나 달력을 찍어 보내기도 했다. 북한도 이에 질세라 1990년대 들어 한국 연예인 사진을 넣어 월북을 권유하는 삐라를 만들어 뿌렸다.
  • 남북한은 2004년 6월 장성급 군사회담을 열고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선전활동 중지, 선전수단 제거에 합의했다. 이후 양측은 삐라 살포를 중단했다. 민간 대북전단은 그 이후 출현했다.

    당시 노무현 정권은 남북 장성급회담에 따라 대북전단 살포와 대북방송을 모두 중단하고, 이 일에 종사하던 탈북민들을 일시에 모두 해고했다. 그러자 탈북민단체들이 “이대로는 안 된다. 정부가 하지 않는다면 민간에서라도 나서야 한다”며 2005년부터 대북전단 살포에 나섰다. 민간 대북방송 또한 이때부터 시작됐다.
  • 냉전 때부터 2004년 6월까지 남북 모두 삐라를 발견하면 신고하는 것이 의무였다. 그러나 남한 측이 1990년대 초코파이와 라면을 동봉하고, 2005년 이후 민간 대북전단에는 1달러짜리 지폐와 외부 정보를 담은 메모리카드 등을 함께 보내면서, 삐라를 주워도 신고하지 않는 북한 주민이 점차 늘게 됐다. 

    위 사진 속 대북전단은 지난 5월31일 살포했다. 이때 전단과 함께 1달러짜리 지폐, SD카드 등을 담아 보냈다. 나흘 뒤 김여정은 이 대북전단을 빌미로 남한을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 민간 대북전단 살포를 막으려는 정부의 시도는 꽤 오래 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에는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풍선에 1달러짜리를 담아 보내는 것은 남북교류협력법 위반”이라며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검찰은 내사를 종결했다.

    2014년 10월에는 대북전단 풍선이 항공법을 위반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국토교통부는 “조종장치가 없는 풍선은 비행장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놔 문제 없이 넘어갔다.

    그러자 북한도 다시 대남 삐라를 뿌리기 시작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경기·강원 일대에서 수거된 대남 삐라는 3만여 장에 달했다는 국방부 발표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