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처장협의회 16일 “미래에 필요한 전형, 수능 아닌 학종”… 교육계 "학종이 불평등 심화"
  •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기륭 기자
    전국 대학 입학처장들이 교육부의 대학입시 정시 확대 방침에 반발하고 나섰다.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위주의 정시 확대가 사교육비와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문제풀이식 수업문화로 공교육을 퇴행시킨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교육계 일각에선 "수능보다 학종이 불평등을 더 유발한다"며 "소위 '수시 전형료 장사'가 줄어 대학이 정시 학대를 꺼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대학교입학관련처장협의회'(입학처장협의회)는 16일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대한 대학의 입장'을 발표했다. 입학처장협의회는 전국 4년제 대학 200여 곳의 입학처장 모임이다.

    이들은 "정시 확대는 교육과 입시정책 혼란만 키운다"며 "사회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여론을 교육정책의 근거로 삼지 말고, 초·중·고 학생들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대입정책의 패러다임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시 확대, 교육 불평등 심화·공교육 퇴보”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11월 서울대·고려대·연세대 등 서울 상위권 대학 16개교가 2023년까지 정시모집 선발 비중을 40% 이상 확대하도록 권고했다. 또 2024학년도부터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영역을 축소하고 자기소개서를 폐지하기로 했다.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비리 의혹으로 대입 불공정 논란이 거세지자 이 같은 방향으로 입시제도를 바꾼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협의회는 "교육부가 대입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한 지 1년 만에 다시 대입제도를 바꿔 수험생·학부모·고교·대학이 모두 혼란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교육부 발표 이후 대학이 공식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특히 이들은 "정부는 수능 위주 전형이 사교육비와 교육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각종 분석 자료를 외면했다"며 "과정과 학생참여 중심의 수업 문화가 다시 문제풀이 위주로 돌아가 공교육 문화를 퇴행시킬 우려가 있다"고 했다.

    정시모집이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에는 교육과정평가원의 '2019학년도 수능 성적 결과'를 이유로 들었다. 재수생의 수능 점수가 재학생보다 10점 가량 높고, 서울에서 수능 1·2등급 비율이 가장 많았다는 내용이다. '2018 교육여론조사' 분석 결과, 월 600만원 이상의 고소득층일수록 수능을 선호한 점을 들어 "수능 위주 전형이 특정지역, 특정 소득계층에 유리한 대입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미래사회에 필요한 역량 평가방식과 고교학점제 등 교육부의 교육정책을 종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전형은 수능이 아닌 학종"이라고 강조했다. "학종 비교과활동과 자기소개서 축소·폐지는 학교 내 자율활동이나 독서·토론 교육을 포함한 고교 공교육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도 했다.

    교육계 “수능보다 학종이 더 불평등… 장기 정책 세워야”

    그러나 진보단체를 제외한 교육계 대부분은 "수능보다 학종이 사교육을 더 조장한다"며 입학처장들의 주장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동안 학종이 '깜깜이 전형'으로 불릴 만큼 부모의 경제·사회적 배경이 좋은 학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했고, 이에 따른 교육 불평등이 더 크게 나타났다는 지적이다.

    서울에서 입시컨설팅을 하고 있는 입시전문가 백모 씨는 "수시든 정시든 사교육의 영향력은 거의 비슷하다"며 "오히려 수능 대비반 수업료보다 학종 컨설팅비가 더 고액으로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이종배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 대표는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전형인 수시 학종은 비교과 등 모든 요소에서 사교육을 심화시켰다"며 "정시 확대가 불평등을 조장한다는 입학처장들의 주장은 그 논리적 근거가 빈약하다. 문제풀이식 수업의 경우도 여전히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사안이다"라고 반박했다.

    이 대표는 "대학교육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더 신경 써야 하는 입학처장들이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건 주제 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며 "수시는 원서를 6장 내고 정시는 3장 내는데 전형료에 따른 수입이 줄어들 것을 염려하는 게 아니냐"고 비판했다. 

    아직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은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는 "수시와 정시 비율은 정치인들과 학부모, 대학 등 서로 이해관계가 크게 엇갈리는 문제"라며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된 적이 없다"고 탄식했다.

    사교련은 "모두 자신들의 이해만 내세워 이야기하다 보니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못했다"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하고 교육정책을 세워야 하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