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관 '靑캐비닛 문건, 정치보복수단 사례' 지적… 법조계 "대법, 직권남용 기준 제시 못해"
  • ▲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첫 판단이 1월 30일 나왔다. ⓒ정상윤 기자
    ▲ '직권남용죄'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첫 판단이 1월 30일 나왔다. ⓒ정상윤 기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이하 직권남용죄)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첫 판단이 나왔다. 그동안 대법원 소부에서만 내려졌던 직권남용죄 관련 법적 판단은 '모호성'으로 인해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문재인 정권이 '적폐'로 지목한 박근혜 정부 인사들을 이 죄명으로 옭아맬 때, 법조계에서 '정치적 보복'이라는 의견이 많았던 것도 그래서다. 본지는 2회에 걸쳐 '직권남용죄'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 의미와 향후 재판에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살펴봤다. <편집자 주>

    "공무원이 직권남용 행위를 한 경우에도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처벌되지 않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30일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상고심을 열고 이들의 직권남용죄와 관련, 일부 무죄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등 직권남용에 해당하지만, 공무원 등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는지는 관계법령에 따라 개별적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한 행정기관이 다른 공무원, 유관기관 등과 협조해 의사결정·집행하는 행위는 '통상적'이라는 설명도 보탰다.

    직권남용죄 관련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직권남용죄는 대법원 소부의 판례만 있었다. "공무원이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해 직권을 행사해, 이로 인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위법·부당한 행위를 한 경우에 (죄가) 성립한다" "직무가 남용될 경우 상대방에게 법률상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정당한 권리행사를 방해하기에 충분한 것이면 된다" 등의 판단(2013도2444 등)이었다. 이마저 해석이 불분명해 직권남용죄 논란이 이어졌다.

    전합 첫 판단 나왔지만… 직권남용 '기준' 여전히 모호

    논란의 직권남용죄 근거조항은 형법 123조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 이 조항이 적용된다. 죄가 성립하려면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했는지'가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상대방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상대방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행위 등, 둘 중 하나가 더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두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이) 헌법과 법률에 위배돼 '직권의 남용'에 해당한다는 원심을 확정했고, '의무 없는 일'에 대한 의미를 구체적으로 판시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직권남용의 기준이 여전히 모호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직권남용죄가 '정치보복수단'이 될 부작용도 여전하다. '모호한 법 규정'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법'이라는 것이 이유다.

    현직 대법관도 이 같은 우려를 인정했다. 조희대 대법관은 소수의견을 통해 '청와대 캐비닛 문건'의 불법성을 지적하며 '정치보복수단화'를 우려했다. 조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대통령비서실 직원들이 청와대 문건을 특별검사에게 제공했다"며 "이들 증거는 (전 정부 인사들이) 유죄 판결을 받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증거를 수집한 것"이라고 봤다. 이어 "이 같은 행위를 허용하면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나 고위공직자들을 처벌하는 데 악용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도 2006년 직권남용죄 관련 위헌소송에서 "(직권남용죄는) 자의적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긴다"며 "정권교체 시 전임 정부의 실정과 비리를 들추거나 정치적 보복을 위해 전 정부 고위공직자들 처벌을 위해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고 의무 없는 일 역시 의미가 명확하다고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정치적 보복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 있다"

    학계에서는 일찍부터 직권남용죄의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완규 변호사는 한국범죄방지재단이 지난해 5월17일 학술강연회에서 "직권이나 의무의 개념보다 더 문제인 것은 '남용'이라는 문언으로 보인다"며 "어떤 정도의 권한행사가 남용에 이르는 것인지 해석의 기준이 모호해, 판단자의 자의가 개입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공무원의 모든 직권을 포함해 해석하면 결과적으로 부당한 직권행사를 모두 처벌 대상으로 포섭해, 공무수행에 대한 형벌권 행사가 자의적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권을 잡은 세력이 사법권력까지 장악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공무원을 정쟁의 희생물로 만들 위험이 있다"고도 설명했다.

    '정치적 보복 수단 악용' '불분명한 조항 내용' 등 우려에, 직권남용죄를 협소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직권남용죄 피고인에 대한 형사처벌 대신 손해배상 등 민사로 처벌하자는 의견도 있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공무원 본인이 하는 업무범위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어 직권남용죄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며 "직권남용죄 판단 시 명확하게 법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같은 '위법성'을 본 이후 직권남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 교수는 "사법부가 '명확성의 원칙'을 지키지 않다보니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법치주의가 보존되지 않으면 마녀사냥이 있을 가능성이 생긴다"는 말도 보탰다.

    해외 사례는… "직권남용죄 협소하게 적용하고 형사처벌 부적절"

    해외에서는 실제로 직권남용죄를 협소하게 적용한다. 스위스는 '공무원 본인이나 제3자에게 불법한 이익을 얻게 하거나 타인에게 불이익을 부과하기 위해 직권을 남용한 때'로 한정한다. 독일 역시 '폭행 또는 협박에 의한 직권남용'으로 제한적 해석을 한다. 일본만 우리의 직권남용 요건과 같다.

    이완규 변호사는 "직권남용죄의 적용범위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는 직권남용죄가 적용되는 공무원의 직권의 범위를 제한하고 개인적 법익보호의 측면을 고려해 개인의 의사 억압을 할 수 있는 강제력을 수반하는 직무로 한정해 해석해야 한다"며 "남용행위를 해석할 때에도 주관적 요소에 중점적 기준을 두고 오로지 사익적 목적을 추구하는 경우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또 "공적 목적에 따른 정책을 수립하고 그 정책 추진을 위한 것이었다면 사후에 그 정책이 부당하거나 위법한 것으로 확인돼도 행정소송이나 손해배상 등의 영역에서 처리하고, 직권남용의 형사처벌 대상으로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한편 현재 '국정농단'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 '사법농단' 의혹을 받는 양승태(71·2기) 전 대법원장 등이 직권남용죄 혐의로 재판받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