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포기한다는 뜻", "내각제 원하는 거물급 향한 손짓","해프닝" 등 해석 분분
  • 지난해 1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뉴데일리DB
    ▲ 지난해 1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소미아 파기 철회, 공수처법 포기,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철회 등을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투쟁을 벌이고 있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뉴데일리DB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22일 "총선 압승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중도보수통합과 공천 논의가 한창인 이때 느닷없이 개헌론을 꺼내든 것이다. 정치권에선 당장 눈앞에 닥친 공천과 총선준비로 황 대표의 개헌 주장에 별다른 반향이 없지만, 일각에선 황교안 대표가 총선 이후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거물급 보수 인사들을 향해 메시지를 던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차명진 "개헌 주장, 대통령 안 하겠다는 뜻… 황 대표가 중도에 포섭됐다"

    이날 차명진 자유한국당 전 의원(경기도당 부천소사 당협위원장)은 "(개헌 추진 선언은) 황교안 대표가 차기 대통령에 뜻이 없음을 고백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차명진 전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황교안 대표가 중도파의 최고 선물인 (내각제) 개헌 독배를 받아 마셨다"고 한탄했다. 

    차 전 의원은 "여의도에 있다 보면 골수 우파로 시작한 사람도 점점 중도로 변질된다"며 "황 대표가 처음에는 스스로를 자유민주주의 전사로 규정하고 (정치를) 시작했겠지만, 달콤한 말과 기민한 행동으로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중도만 눈에 들어왔을 것"이라고 했다. 

    차 전 의원은 또 "내각제는 한물 간 정치인들에게 영광스럽게 정치인생을 마감하도록 보장해주고, 퇴임 이후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훌륭한 퇴물 재활용장치"라고 했다. 차 전 의원의 이런 분석은 황 대표가 내각제 개헌 이후를 염두에 두고 있는 거물급 정치인 등 중도보수 인사를 향해 손을 내민 것이란 뜻이다.  

    차 전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을 향해 "징하게 우려먹는다", 문재인 대통령에겐 "지진아" 등 거친 발언을 여과없이 쏟아내고 거리투쟁에 주저없이 나섰던 정치인으로 소위 '아스팔트 우파'와 가깝다는 평을 듣고 있다. 황 대표가 지난해 말 선거법 개악과 공수처법 제정 등에 맞서 단식투쟁과 거리집회에 나섰을 때 전폭적 지지를 보냈던 인물이 바로 차명진 전 의원이다. 이런 인사가 황교안 대표의 개헌 주장에 '중도세력에 포섭된 결과'란 분석을 내놓은 것은, 향후 황 대표의 행보를 비롯해 황 대표에 대한 '아스팔트 우파' 민심의 향배에 일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창녕 출마 홍준표, 의미심장한 한마디 "총선 이후 야권재편 때 내 역할 있을 것" 

    그동안 황교안 대표와 각을 세워 온 홍준표 전 대표가 최근 황교안 대표를 지원사격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홍 전 대표는 줄곧 '무기력한 야당'이라는 비판을 하면서도, 보수통합에 대해서는 황 대표와 거의 같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홍 전 대표는 최근 며칠 '비대위를 구성하라'던 기존 요구에서 한 발 물러나 보수통합에 대한 요구로 발언을 집중하고 있다. "새보수당하고만 통합하는 것은 소통합이다. 전진당, 우리공화당, 시민사회 보수단체 등 모두와 통합을 해야 한다"는 홍 전 대표의 주장은 황 대표의 입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 홍 전 대표가 이번 총선에 험지로 출마하라는 당 안팎의 요구를 물리치고 고향인 경남 창녕 출마를 고집하며 "총선 이후 야권재편에서 내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수 야권의 리더십에 공백이 생겼을 때, 리더가 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한국당 등 범보수세력 대통합의 종착지가 사실 개헌이 아니냐는 시각도 존재한다. 실제 김형오 한국당 공천관리위원장은 그동안 개헌을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인물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국면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질서 있는 하야'를 요구하며, "반드시 헌법을 개정해 차기 대통령은 새 헌법 체계 하에서 선출하고 새 공화국으로 출범해야 한다"고 개헌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형오 위원장은 지난 2017년 2월에는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장을 맡아 "늦어도 2018년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 때는 국민투표로 개헌이 확정, 발효돼야 한다"며 당시 대선주자들을 향해 개헌로드맵을 밝히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황교안 대표 또한 개헌을 언급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황 대표는 지난해 1월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후 여러 언론을 통해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것이 사실이며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개헌을 시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무총리 재직 시절과 입장이 달라진 것이다. 황 대표가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권력구조 개편을 얘기한 것은 그때부터 이미 개헌론자들과 접촉해왔던 게 아니냐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황교안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제가 문제"… 일각에선 "문재인 퇴진투쟁에 찬물" 비판

    황 대표는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 자유한국당 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개헌론을 재점화했다. 황 대표는 "대한민국이 정치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는 법적 기반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개헌의사를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황 대표는 특정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제가 문제'란 취지로 발언을 이어갔다. 황 대표는 기자들을 향해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는 잘 알 거라 믿는다"며 "대통령제냐 내각제냐 큰 틀의 문제도 있지만 어떤 특정인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며 국민과 야당을 무시하는, 그런 국정농단을 저지할 헌법 개정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일종의 면죄부이자 문재인 정권 퇴진투쟁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겉으로 드러나는 정치권의 분위기는 개헌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모습이다. 유승민 새로운보수당 의원은 23일 본지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황 대표의 개헌 주장에 대한 견해를 묻자 "왜 그런 말씀을 꺼내셨는지 전혀 맥락을 모르겠다"며 "한국당 내에서 따로 마련한 개헌안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유승민 의원은 이어 "총선 공약으로 내세우겠단 것인지 (잘 모르겠다)"라며 관심을 두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유 의원은 개헌에 대한 본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다"고 짧게 답했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 제도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개헌을 역설한 것이란 시각도 있다. 김상일 수원대 객원교수는 이날 SBS 방송에 출연해 이같이 주장하며 "그러나 개헌을 했을 때 국민의 삶과 정치사회 체계가 어떻게 나아지는지에 대한 비전 제시도 없었다"며 "그런 구체성이 없어 진정성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TK지역에 지역구를 둔 한 재선 국회의원은 "정치권의 관심은 개헌 이전에 총선"이라며 황 대표의 '개헌' 발언이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이 국회의원은 "그저 얘기만 꺼냈을 뿐 어떤 개헌인지는 내용이 없지 않느냐"며 "정치권에 있는 내각제 세력을 겨냥해 이들과 대통합 바퀴를 잘 돌리기 위한 윤활유로 생각한 것 같지만 별로 효과는 없을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게 공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선 압승한다고 개헌 가능?… "개헌론, 국민을 다시 광기로 몰 수 있어"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지금의 개헌 논의가 자칫 또 다른 광기를 불러 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강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직후 어마어마한 권력과 압도적인 국민 지지 속에서도 개헌을 하지 못했다"며 "아무리 총선에서 압승한다고 해도, 힘 없는 야당이 과연 개헌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는 이어 "개헌 같은 거대담론을 제시하는 게 총선승리를 위한 새로운 돌파구라는 고려가 있을 순 있겠다"면서도 "국민을 더 흥분시키는 주제인 개헌을 얘기하기 전에, 광기에 휩싸여있는 우리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